14-5. 삼층적 두뇌
세 부분으로 된 두뇌의 모형은 너무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나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생활에서 의식적이며 위계적인 측면은 파충류의 복합 구조(reptilian complex)에 의하여 강한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 부위는 먼 옛날의 파충류와 같은 기능을 나누어 갖고 있다. 림빅 시스템은 포유 동물이 보여 주듯이 애타적인 행동, 감정적인 행동, 집단 행동의 형성, 우애 관계, 적대 관계, 그리고 공동체 유대감 형성의 특징을 갖고 있다. 신피질은 인간이 행하고 있는 고등 동물적 기능인 언어 사용, 수학, 기호 사용, 종합 분석 능력, 예측력과 판단력을 수행하는 두뇌이다.
이 세 개의 두뇌에 대한 가설이 옳다면, 이것은 인간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해 준다. 우선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양면적이기보다는 더욱 복잡하다는 것이다. 삼층적인 두뇌 모형을 연상케 해주는 심리학설은 프로이트가 구분한 원본능, 자아, 초자의 이론이나 혹은 플라톤이 구분한 이성, 기개, 정욕의 이론이다. 그러나 많은 점에서 프로이트가 나눈 정신 분석이나 플라톤이 나눈 영혼의 구별과 세 개의 두뇌 모형은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이론들 간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이론들이 나누어진 세 부분들 간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다.
인간은 진화하면서 얻은 파충류와 그 이전의 신경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이 부분은 아직도 인간에게 있어서 기초적인 생명 유지 능력을 수행하며, 주위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데 기본적인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파충류는 서로 마주치게 되면 몸짓을 통하여 자기 과시를 하며, 성적인 몸짓과 운동을 통하여 상대방에게 자신의 모습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인간에게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행동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퍽 흥미로운 일이다. 이 부분이 프로이트가 말하는 성性이나 오스트리아 출신의 동물심리학자 콘라드 로렌츠Konrad Lorenz가 말하는 공격의 본능처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을 관장하는 부분이라면, 그것은 제거의 대상이기보다는 바람직하게 승화시켜야 할 대상이다. 그런 본능이 가져올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면이 두려워 무조건 막으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마치 물주전자를 뜨거운 난로 위에 놓고 뚜껑을 막으려는 노력처럼 어리석은 일이다. 결국 물주전자가 터지듯이 원초적 본능은 조절되지 않고 파괴적인 행동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로렌츠는 인간의 자멸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공격적 본능이 사회 구성원의 감정적 결속이나 연대감을 통해 파괴적으로 발산되는 것을 막는 길이라고 말한다. 인간들이 연대감을 형성하지 않고 불신감이 만연되면 사람은 파괴적인 행동을 거리낌 없이 자행한다. 더 나아가 인간과 인간, 계층과 계층, 사회 각 부분간에 유대감이 없으면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며, 그런 행동을 자행하면서도 인간은 하등의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병적인 형태로 진전하게 된다.
집단생활에 필요한 애타적 행동과 우정적 행동을 조절하는 곳이 포유 동물의 두뇌이다. 여기에서 감정적인 표현인 기쁨과 슬픔, 즐거움과 괴로움, 열정과 고통 등이 일어난다. 이 감정적인 요소는 두뇌의 사고 작용 및 연상 작용과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므로 감정적인 요소는 사고 작용과 주어진 정보를 선택할 때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나 지식이라도 우리의 감정과 상치될 때는 받아들여질 수 없으며, 심지어는 그 아이디어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생각이나 지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사전에 감정적으로 그러한 것을 용납할 수 있는 분위기의 조성이 문제되는 것이다.
삼층적인 두뇌의 한 부분이 신피질이다. 이곳에서 인간의 고등 정신 기능이 발생한다. 고등 정신 기능 위에 세워진 현대 문명은 그러므로 신피질의 문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프롬E.Fromm도 현대를 ‘대뇌 피질화(cerebration) 시대’라고까지 특징짓고 있다. 그런데 대뇌 피질이 홍수같이 쏟아지는 현대의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하부의 두뇌를 견제하고 통제해야 한다. 왜냐하면 현대인이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이 감정이나 충동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은 관찰자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느낌을 배제해야 한다. 감정과는 단절된 채 사물의 지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현대인은 감정은 감정대로 지식은 지식대로 분리하여 사용할 수밖에 없는 분열적인 문화 풍토 속에서 생활하여 적응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감정과 사고의 괴리가 빚어내는 자기 모순적 행동, 더 나아가 정신 분열적 행동을 하기가 쉽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세 가지 종류의 두뇌가 갖고 있는 구조와 기능을 알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것들 사이에 유기적인 관계를 마련해 주며 또 그것들 각자가 갖고 있는 독자적인 성격을 잘 발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인간의 기본적 본성에 맞도록 문화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대는 대뇌 피질만 너무 이용하면서 다른 부분의 잠재된 능력과 기능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인간적이면서 가장 동물적인 측면에 충실할 수 있는 문화의 재구성은 새롭고 풍부한 문화를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과 의사인 사이몬즈Simeons는 대뇌 피질 문화의 어두운 미래를 지적하고 있다.
문명은 그래서 가공물이며 생물적 현상이 아니다. 문명이 인간에게 가져다 준 유일한 생리적 결과는, 정신적인 병이 신체적인 장애로 나타나는 정신신체병을 출현시킨 것이다. 문명은 새 기관이나 새 기능을 산출할 수 없다. 문명은 도피의 인공적인 수단을 완성시켜 주는 방법일 뿐이다. 문명은 이제 그 도가 지나쳐서 도시 사람들이 진화적으로나 생리적으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위험에 대응하는 것을 전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현대인은 그들의 대뇌 피질적 업적에 너무 압도되어 자신의 신체가 아직도 문화의 동이 트기 전의 정상적인 수준에서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신체의 포유 동물적인 반응은 이미 대뇌 피질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반응이며, 그것을 병이라고까지 잘못 해석하고 있고, 현대인은 그들의 행동 형태를 설정해 놓음으로써 결국에 가서는 인간에게 정신 신체적 고통을 받게끔 인도하고 있다. 인간의 문화적 진화는 대뇌 피질의 학습 능력을 더욱 더 잘 훈련시킴으로써 이루어졌다. 인간은 자연적 진화에 종식을 가져온 유일하게 살아 있는 생명체이다. 인간은 환경에 그의 신체를 적응하는 것을 그쳤다. 이제 인간은 환경을 자신들의 신체에 맞게 조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인간이나 초인간적인 종이 이 지구상에 나타나리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새로운 종은 자연 선택에 의해서만 산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읽을거리
▪송준만, ?마음과 두뇌?, 교문사, 1992.
▪Carl Sagan, 김명자 역, ?에덴의 용?, 전파과학사, 1981.
▪J. C. Eccles 박찬웅 역, ?뇌의 진화?, 민음사, 1998.
▪Konrad Lorenz, 송준만 역, ?공격성에 관하여?, 이대출판부, 1986.
▪M. C. Wittrock, 고영희 역, ?인간의 뇌와 교육?, 중앙적성출판사, 1986.
▪Mark R. Rosenzweig & Arnold L. Leiman, 장현갑 역, ?생리심리학?, 교육과학사, 1986.
▪Richard F. Thompson, 김기석 역, ?뇌?, 성원사, 1989.
▪Richard Restak, 박소현 역, ?마인드?, 이론과 실천, 1996.
▪W. Ritchie Russell, 소현수 역, ?두뇌란 무엇인가??, 종로서적, 1975.
▪데이비드 바드르, 김한영역, ?생각은 어떻게 행동이 되는가?, 해나무, 2022.
▪승현준, 신상규역, ?커넥톰, 뇌의 지도?, 김영사, 2014.
▪박문호, ?뇌과학 공부?, 김영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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