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계층적 세계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물질론에 기초하여 대답하려 할 때 가장 난감한 부분은, 인간 대뇌의 고차적인 정신 활동일 것이다. 생각, 회상, 사랑 등 사고와 감정이 어떻게 물질의 물성이나 화학 반응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확실히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이것을 물질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생명 기계론은 성립하지 못한다. 따라서 앞으로 분자 생물학의 가장 큰 과제는 이 ‘마음’의 분석일 것이다.
서양 철학에서 마음에 관한 중요한 논의들은 데카르트로부터 기원한다. 그가 제시한 이원론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그것은 존재론적 입장이 대체로 같은 두 개의 상호 배타적인 특수자의 영역을 그리고 있다. 그중 하나인 정신적 존재자는 사유라는 속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인 물리적 개별자는 연장延長이라는 속성을 소유하고 있다. 이리하여 우리는 형이상학적으로 독립적인 두 영역이라는, 두 갈래로 나뉜 실재의 그림을 갖게 된다. 모든 구체적인 개별자는 두 영역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해 있게 되며, 어느 것도 두 영역 속에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대에 오면, 데카르트가 제시한 두 갈래로 나뉜 세계의 그림은 계층적 세계로 대체된다. 말하자면 실재들과 그것들의 특징적 속성의 서열이나 단계가 계층적 구조를 이룬 세계의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밑바닥 단계는 모든 물질들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물리적 입자들(양자, 중성자, 쿼크 등)로서 구성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입자들은 어떤 근본적인 물질적 속성과 관계들(질량, 운동량 등)에 의해서 특징지어진다.
우리가 한층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갈수록 한층 더 낮은 단계에 속하는 실재들로 구성된 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더욱이 어떤 주어진 단계의 실재들은 그 단계에 독특한 속성의 집합에 의해서 특징지어지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리하여 어떤 단계에서 우리는 투명성과 설탕, 소금을 녹일 수 있는 힘과 특징적인 밀도와 점도 등과 같은 속성을 갖고 있는 물의 분자 덩어리를 발견한다. 한층 더 높은 단계에서 우리는 ‘생명적’ 속성을 가진 세포와 유기체를 발견하며, 더욱 올라가면 의식과 지향성을 가진 유기체를 발견한다. 이런 것들 외에 유기체들의 사회적 집단이 존재하며, 아마도 그런 집단으로 구성된 집단들도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새로운 그림으로 그려진 세계는 단계들의 배열로서 구성되어 있고, 각 단계는 두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그 단계의 특수자들의 영역을 구성하는 실재들의 집합이고, 다른 하나는 이 영역을 특징짓는 속성들의 집합이다. 이런 배열 구조를 제공하는 것은 전체의 부분이라는 부분 전체론적 관계이다. 즉 어떤 주어진 계층에 속하는 실재들은 부분 전체론적으로 좀 더 낮은 단계에 속하는 실재들로 구성되며, 이 관계는 단계의 계층적 순서를 낳는다는 것이다.
이런 모형에 의하면 화학적이며 생물학적인 속성이 단순한 물리적 입자들로 구성된 복잡한 구조에 귀속되듯이, 정신적 속성은 한결 복잡한 물리적 구조에 귀속된다. 생물학적 유기체는 바로 생물학적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복잡한 물리적 구조이다. 비슷하게 심리학적 생물들이나 정신 작용과 의식을 가진 생물들은 바로 유기체적 복잡성의 단계에 있는 생물학적 구조이다. 그러므로 비물리적 실체로서의 정신의 부정은 자연스럽게 실재에 관한 이런 계층적 견해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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