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루아흐
이렇게 창조된 인간은 네페쉬nfsh(혼魂)와 바사르basar(육肉)라는 두 요소로 이루어진 단일 유기체이다. 본래 목구멍을 뜻하는 네페쉬는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인간 속에 있는 생명의 원리를 가리킨다. 히브리 성서에서 결국 이 말은 ‘인간의 내적 존재’ ‘살아 있는 존재’를 의미하게 되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으시니 ‘네페쉬’가 되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네페쉬’는 의식의 중심, 생명력의 중심으로서 생기 있는 활동을 하게 되는 구체적인 인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다음으로 몸, 육, 육신, 육체를 뜻하는 ‘바사르’는 네페쉬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결코 혼에 대치하는 개념이 아니다. 사람은 바사르를 통해 영혼을 알게 된다. 바사르는 인간과 동물이 다 같이 소유한다. 그러나 그 일차적인 의미는 인간의 몸을 지칭하며, 무한하신 하나님과 구별되는 연약하고 덧없는 존재로서의 제한된 인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적 인간 이해는 헬라적 관점과는 달리 이른바 영과 육이라는 이원론적 긴장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런 영육 복합체에 지속성을 주는 것이 ‘루아흐ruah(움직이는 공기, 바람, 입김, 숨결, 영)’이다. 루아흐가 없다면 네페쉬바사르란 복합체는 살 수 없고 그 존재를 지속할 수 없다. 이 용어는 하나님과 인간 모두에 사용된다. 하나님의 루아흐는 세상에서 일하시며(사사기 40장 7절), 생명을 창조하시고 지탱케 하신다(시편 33편 6절, 104편 24~30절). 인간의 루아흐는 살아 있는 존재를 지탱시켜 주는 활력으로 위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러므로 루아흐는 인간이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생활의 원천이 된다. 히브리인들은 앓는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에는 오직 루아흐의 많고 적은 차이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병은 죽음의 시작이라고 여겼다. 죽음은 이 루아흐, 즉 숨결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죽을 때는 루아흐가 최대한으로 빠져나가 마치 혼자서 서 있을 수 없는 빈 자루처럼 된다.
성경의 부활에 대한 착상은 이와 같은 인간학적인 전망 속에서 이루어졌다. 고성소古聖所인 ‘셔올sheol’에서 인간은 생활력이 거의 다 상실된 희미한 삶을 산다. 그렇지만 이들도 네페쉬이다. 이러한 네페쉬의 지속되는 존재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이 루아흐를 불어넣어 주시고 그를 당신의 영으로 다시 채우실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부활이 주장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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