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3-2-2. 스스로 움직이는 도

이효범 2021. 11. 6. 19:20

3-2-2. 스스로 움직이는 도

 

장자가 이런 생활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그의 자연관에 기초한다. 그러면 그가 보는 자연은 무엇인가? 장자가 펼친 자연론自然論의 주축을 이루는 개념은 천과 도와 자연이다. 이들의 함의涵義는 매우 크다. 그러므로 이들 사이의 경계선을 분명히 긋기가 쉽지 않다.

?장자?에 나오는 자의 용례들을 검토해 보면 천공天空천지天地천연天然의 의미로 쓰이는 것으로 대별할 수 있다.

천공의 천은 창공蒼空처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며, 천지의 천은 우주 전체를 가리키며, 천연의 천은 자연과 동의어이다. 이 가운데서 천지는 당시의 일반적인 용례에 따른 것이니, 장자의 고유한 개념은 아니다. 곽상郭象천지는 만물의 총명總名이다라고 하였다. 그 천지는 우주 전체를 가리키며 일체 만물은 그 속에 포괄된다. 이 광대하며 일체를 포괄하고 있는 천지를 성립유지전개시키는 것은 이다.

 

도는 진실로 믿을 수 있는 것으로 행위도 없고 형체도 없다. 그것은 마음으로 체험할 수 있지만 입으로는 전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지만 눈으로는 볼 수 없다. 그것은 스스로 본원이 되고 스스로 뿌리가 되어 천지가 있기 이전 옛날부터 이미 존재하였다. 그것은 귀신과 상제를 낳았으며 하늘과 땅을 낳았다. …… 그것은 천지에 앞서 존재했지만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알 수 없고, 까마득한 옛날부터 있어 왔지만 얼마나 늙었는지 알 수 없다.

 

도는 개별적인 어떤 사물이 아니라 모든 개별자들의 근거이다. 이러한 도를 장자는 물물자物物者 또는 형형자形形者 또는 생생자生生者 등의 말로 표현하였다. 물물자는 천지 만물로 하여금 천지 만물이 되게끔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형형자는 형체 있는 것들로 하여금 형체를 지니게 하는 것을 뜻하고, 생생자는 생명 있는 것들로 하여금 생명을 가지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도가 모든 존재자들로 하여금 존재하게 하는 근본적 실체임을 뜻한다.

이로써 보면 도는 모든 존재와 힘의 근거이다. 천지 만물이 존재하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도가 그 근거로서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도가 존재하고 움직이기 위하여 그 이외의 어떤 존재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도는 자본 자근自本自根한다고 표현된다. 자본 자근하는 도는 그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를 무대無待라고 한다. 이 점에서 도는 현상계의 모든 사물과 뚜렷이 구별된다. 현상계의 온갖 사물과 사건은 다른 것에 의존한다. 그들은 피와 차가 대대對待하니, 서로 대립하면서 동시에 의존한 채 존재한다. 피는 차를 불러일으키며, 차는 피를 불러일으킨다. 피 없이 차가 있을 수 없고, 차 없이 피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도는 어떤 사물이 아니다. 천지 만물의 본체인 도는 피도 아니고 차도 아니며, 와 비며 생과 사를 초절超絶하여 있다. 그래서 장자는 도를 도추道樞라고 하였다

 

와 시가 그 짝을 얻을 수 없으니 그것을 도추道樞라고 한다.

 

이는 도가 절대자임을 뜻한다. 이러한 의미의 도를 장자는 이라고도 표현하였다. 노자도 이를 홀로 존재함(독립獨立)’이라고 하였다.

이런 도는 천지 만물 어디에나 통한다.

 

천지에 통하는 것은 덕이며 만물에 유행流行하는 것은 도이다.

 

천지 만물에 두루 통할 수 있는 도는 또한 천지 만물 모두를 포함한다. 이는 마치 물이 물고기 몸 속에 있으면서 물고기는 또한 물 안에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동곽자東郭子의 물음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장자는 도의 존재를 자극적으로 말하고 있다.

 

동곽자가 장자에게 묻기를 이른바 도가 어디에 있습니까하니 장자는 없는 곳이 없소라고 했다. 동곽자는 또 어디에 있는지 지시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자 장자는 청개구리나 개미에게도 있소하였다. 이에 동곽자는 “‘어찌 그리 하등한 것들에만 있소”’ 하자 장자는 기장이나 피에게도 있소하였다. 동곽자는 어째서 더 하등의 것으로 내려가오하므로 장자는 기왓장이나 벽돌에도 있소하였다. 그래서 동곽자는 다시 어째서 더욱 더 하등의 것으로 내려가오하므로 장자는 똥이나 오줌에도 있소하였다.

 

또한 도는 그 짝이나 대상이 없는 절대絶對의 존재이므로 주체와 대상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감각사려감정 등이 없다. 즉 도는 어떤 대상을 보거나 듣지 않으며, 사유하거나 욕구하지 않으며,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아울러 도는 무엇에 대하여 말하지도 않고, 어떤 것을 만들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도는 무위無爲하다.

도는 무위일 뿐 아니라 자연自然. 그 자연은 스스로 그러함을 뜻한다. 도는 사물과 달리 그 이외의 어떤 존재에 의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곽상이 지적한 것처럼 자연의 반대어는 사연使然이다. ‘사연은 시켜서 그러한 것이다. 자연이 주동적능동적이라면, 사연은 피동적수동적이다. 도는 절대이며 유일하며 전체이기 때문에 그 위에서 시키는 어떤 존재가 있을 수 없다. 도는 그 자신 이외의 어떤 것에 의하여 존재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존재를 성립시키며 저절로 움직인다.

도의 움직임은 사물의 움직임과 판이하게 다르다. 사물은 어떤 힘이 가해지면 그 힘이 가해진 만큼 움직이다가 정지한다. 그러나 도는 어떤 존재가 가한 힘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영원히 움직인다. 장자는 도의 이러한 성격을 자연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하였다.

흔히 자연이라고 하면 물질적인 것만을 가리키고 정신적인 것은 그로부터 배제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연과학자들은 자연을 대상화하여 관찰하고 실험하고 측정하여 양으로 환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각 기관에 잡히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물自然物이다. 그리고 장자는 감각 기관은 자연의 참모습을 아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남해의 제왕은 숙이라 부르고 북해의 제왕은 홀이라 부르며, 중앙의 제왕은 혼돈渾沌이라 부른다. 숙과 홀이 때때로 혼돈의 나라에서 만나니 혼돈은 그들을 매우 잘 대접하였다. 숙과 홀이 혼돈에게 진 신세를 갚고자 상의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일곱 구멍이 있어서 보며 들으며 숨쉬는데, 유독 혼돈만이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시험삼아 그에게 뚫어 주자!” 이리하여 하루에 한 구멍씩 뚫으니 이레째 되는 날 일곱 구멍이 모두 뚫렸으나, 혼돈은 도리어 죽고 말았다.

 

여기에 나오는 혼돈은 자연을 비유한 것이며 일곱 구멍은 귀입 등 감각 기관을 가리킨다. 만약 자연을 감각 기관으로 인식하려면 그 자연은 시각청각 등에 나타나는 감각 자료들로 분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분할된 자연은 그 생명력을 잃고 말 것이다.

장자는 노자의 도를 더욱 발전시켜, 만물은 형상이 있는 구체적 존재물이므로 그 스스로 유를 발생할 수 없고 반드시 무유無有에서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무유는 도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형상이 없는 것은 물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광요가 무유에게 물었다. “당신은 있는 거요, 없는 거요?” 무유는 대답하지 않았다. 광요는 다시 물을 수가 없어 그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득하고 텅비어 있었다. 온종일 바라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보아도 들리지 않으며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광요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최고의 경지로구나. 누가 이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나는 무의 경지에까지는 이를 수가 있지만 무마저 없는(無無)경지에는 미칠 수가 없다.”

 

여기에서 무무의 경지란 바로 무유의 도의 경지이다. 이 경지는 무의 경지를 초월하여 단순히 형체가 없는 것을 떠나 공무空無, 즉 무소유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장자가 노자의 도를 무유 혹은 무무라고 해석한 것은 그가 추구하는 인생의 목적, 즉 소요유 사상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만약 개인의 정신이 최고의 도의 경지인 무무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면, 그러한 개인은 이 절대 허무의 고요하고 편안한 경지에 처하여 정신을 간섭하는 모든 요소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의 절대적인 자유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장자 철학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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