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3-1-5. 세 가지 보물

이효범 2021. 11. 3. 16:35

3-1-5. 세 가지 보물

 

노자가 묘사하고 있는 성인의 모습은 어떠한 욕심에도 얽매이지 않고, 하늘이 부여한 순수함 그 자체를 가지고 도에 따라 살아간다. 그러기 위해서 노자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소유욕所有慾과 명예욕名譽慾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소유욕과 명예욕을 버려야만 진정한 자유인인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자는 무엇이나 조금 덜 찬 것, 조금 부족한 듯한 것, 겸허한 것, 그런 것이 좋다고 말한다. 사람은 어느 정도의 한계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하며, 조금은 부족한 듯한 위치에 머물러야 하며, 물러가야 할 시기에 미련 없이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이로써 마음은 항상 겸허한 것이 좋고, 더 나아가 근심하고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소유하고 욕심을 부리되 그것에 매달리지 않는다.

 

지니고서 그것을 가득 채우는 것은 그만두는 것만 못하고, 헤아리면서 날카롭게 하면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금과 보석이 집에 가득하다 해도 지킬 수 없으며, 부귀한 위치에서 교만하면 스스로 허물을 남길 뿐이다.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나는 세 가지 보물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잘 지키고 보존한다. 첫째는 자애로움이고 둘째는 검약함이며 셋째는 감히 세상을 위하여 앞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사 큰 공을 세웠다 해도 그 대가로서 상을 바라고 요구한다면 오히려 상이 아니라 화를 입게 된다. 이는 한나라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던 한신韓信이 결국은 비참한 말로를 겪게 되는 것에서 잘 입증된다. 그래서 조용히 물러났던 장량張良이 후세에는 지인智人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깊은 원한은 화해하더라도 반드시 남는 원한이 있게 된다. 이를 어찌 잘 했다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인은 왼손에 문서를 쥐고서도 빚을 갚으라고 재촉하지 않지만, 덕이 없는 자는 갚을 것을 독촉한다. 하늘의 도는 편애하는 일이 없이 그저 착한 사람에겐 반드시 부여해 준다.

 

남을 화해시키고도 원한을 남기는 것은 자신에게 향하는 원한을 남기는 것이니 이는 그 대가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인은 물러나 가만히 있으면서도 하늘로부터 그 대가를 반드시 받게 되어 있다. 이렇게 소유하고 욕심을 부리되 그것에 매달리지 않는 모습, 이것이 노자가 바라는 진정한 소유욕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명예욕은 소유욕보다 더 버리기 힘든 욕구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아 얻게 되는 명예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특히 명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동양 사회에서는 목숨을 바쳐 명예를 지키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노자는 명예란 목숨과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명예와 몸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친근하며, 몸과 이익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하겠느냐? 얻는 것과 잃는 것 어느 것이 더 큰 관심거리이겠느냐? 그러므로 지나치게 좋아하면 반드시 크게 허비하고, 많이 간직하면 반드시 크게 잃는다. 적당할 때 만족할 줄 알아야만 욕되지 않고, 중지할 줄 알아야만 위태하지 않으며, 그래야만 장구하게 된다.

 

소유욕에 집착하는 것만큼이나 명예를 추구하는 병폐는 크다. 그래서 노자는 삶 자체와 비교하여 어느 것이 더 소중한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노자는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은 오히려 명예를 잃는다고 역설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곤두발을 서는 사람은 오래 서 있지 못하고, 걸음을 크게 걷는 자는 오래 걸을 수 없다. 스스로 드러내는 자는 밝지 못하고, 자기만이 옳다고 치우치게 고집하는 자는 빛나지 못하며, 스스로 뽐내는 자는 공이 없고, 스스로 자만하는 자는 뛰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도에 있어서 음식의 찌꺼기나 군더더기에 이르고 세상은 그것을 혐오할 것이다. 그러므로 도가 있는 사람은 여기에 거처하지 않는다.

 

그래서 잘 싸우는 명장은 오히려 전쟁을 하지 않고서 이기듯이, 경쟁을 하지 않아야 명예가 더욱 드높여진다.

 

훌륭한 무사는 무력을 쓰지 않는다. 잘 싸우는 자는 노여워하지 않는다. 적을 잘 이기는 자는 경쟁하지 않는다. 사람을 잘 쓰는 자는 자기를 잘 낮춘다. 이것을 일컬어 경쟁하지 않는 덕이라 말하며, 이를 일컬어 사람을 쓰는 힘이라고 한다. 이는 하늘의 이치에 가장 합당하다고 일컫는다.

 

명예로움을 알면서도 추구하지 않을 때, 오히려 불명예를 택할 때, 그래서 갓난아이처럼 순수함을 잃지 않을 때, 그리고 소박함을 잃지 않을 때 오히려 명예에 이르고,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임무까지 부여된다. 이것이 노자의 역설이다.

 

수컷됨을 알고서도 암컷됨을 지키므로 천하의 계곡이 된다. 천하의 계곡이 되기 때문에 상덕常德이 떠나질 않고 다시 갓난아기로 되돌아간다. 그 밝음을 알면서도 어두움을 지키기 때문에 천하의 법칙이 된다. 천하의 법칙이 되기에 상덕이 어긋나지 않아서 다시 무극無極으로 되돌아간다. 그 영예를 알면서도 오욕五辱을 지키면 천하의 계곡이 된다. 천하의 계곡이 되기에 상덕이 이에 족하니 다시 소박함으로 되돌아간다. 소박함이 흩어지면 그릇이 된다. 성인이 이를 써서 천하의 관장官長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크게 다스림은 잘라 내지 않는 것이다.

 

노자는 명예를 그리 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명예를 무조건 버리라고도 하지 않는다. 명예를 추구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의 방법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법과 정반대로 하면 명예가 드높여질 것이라고 가르친다. 즉 명예를 추구하지 않을 때, 명예에 매달리지 않을 때 오히려 명예롭게 된다. 명예에 구속되지 않는 삶, 명예로부터 자유로울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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