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3-1-3. 무위

이효범 2021. 11. 1. 08:30

3-1-3. 무위

 

노자는 무위無爲를 우주의 본원인 도의 근본 법칙이며 도의 덕성德性, 즉 현덕玄德의 중요한 내용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여기에서 자연自然이란 무위를 가리킨다. 무위란 목적도, 의식도, 작위도, 그리고 욕망도 없음을 뜻한다.

 

무위無爲란 곧 위의 부정이 아니라 위의 긍정이다. 무위無爲는 인간의 욕망과 분별과 허위 의식과 교만 의식과 거공居功의 집착에서 나오는 작은 위가 아니라, 그러한 모든 유위有爲를 넘어서는 커다란 위(대위大爲)인 것이다. 그것은 위의 부정으로서의 무위無爲가 아니라, 곧 무적無的인 위인 것이다. 가 사라진 순수 위인 것이다.

 

도는 무위하여 자연에 순응한다. 도가 무위하기 때문에 만물은 비로소 자연적으로 생장할 수 있다. 말하자면 도는 아무것도 하는 바가 없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바가 없다(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

노자에 의하면 도의 덕성은 무위이다. 인간으로서 최고의 덕성을 갖추고 있는 성인은 바로 이런 도의 덕성을 체현한 자이다. 그러기 때문에 성인은 무위로서 행하고 또 통치한다.

 

성인은 무위로서 일을 처리하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가르침을 행한다.

 

그러나 노자가 말한 무위로서 다스린다는 것은 유가, 묵가, 법가가 제시한 유위有爲의 정치에 반대해서 나온 말이다. 유가는 예로 다스릴 것과 인한 정치를, 묵가는 현인을 숭상하는(상현尙賢) 정치를, 그리고 법가는 법으로 다스릴 것을 주장하였다. 노자에 따르면 이러한 것은 모두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에 어긋나는 인위人爲의 정치이다. 이러한 인위 정치로 말미암아 백성은 원초적인 순박성을 잃고 교활한 백성이 되었다. 노자가 자연의 본성에 순응하는 무위의 정치를 내세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어진 사람을 받들지 않으면 백성이 다투지 않는다. 얻기 어려운 재화을 귀하게 하지 않으면 백성이 도둑이 되지 않는다. 욕망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을 내보이지 않으면 백성의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인의 통치는 백성의 마음을 비우게 만들고 배를 채워 주며, 백성의 기개를 약하게 만들고 골격을 강하게 한다. 항상 백성이 지식과 욕망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 총명한 사람이 감히 나서서 행하지 못하게 한다. 함이 없음을 실천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노자는 무위를 실천하면 다스려지지 않음(불치不治)이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자의 철학은 다스림을 거부하는 철학이 아니다. 바로 치세의 철학인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무위를 실천할 때 비로소 완벽하게 질서 잡힌 사회가 된다고 주장한다.

 

노자의 무위無爲는 결코 소극적 은둔이나 피세의 철학이 아니라 적극적 치세의 행동 철학이요, 유위有爲의 세계를 무위적無爲的으로 개변하려는 혁명의 철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노자의 무위 정치는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을 암시한다. 즉 통치자는 겸허한 태도를 지니고, 언제나 겸손한 위치에 처하며,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이나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낮은 곳에 잘 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백성 위에 서려면 반드시 말을 겸허하게 낮추고, 백성 앞에 서려면 반드시 자신을 백성보다 뒤처지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이 위에 있어도 백성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앞에 있어도 백성은 그를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천하 백성은 즐거이 그를 받들고 싫어하지 않는다. 그는 다투지 않기 때문에 천하의 아무도 그와 다투려 하지 않는다.

 

통치자가 겸손하게 사람들을 대할 때에만 비로소 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고, 오직 예로써 아랫사람을 대우해야만 비로소 사람을 얻어 쓸 수 있다. 당연히 자기가 어디서든 겸허하게 사람을 대해야만 다른 사람과 경쟁을 벌이거나 다투지 않게 된다. 또 그럴 때 사람들도 그와 서로 다투지 않게 된다. 이것이 곧 성인의 미덕이며, 아무것도 하는 바가 없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바가 없는 그러한 도리이다.

노자는 근본적으로 무위를 강조하지만 명시적으로 유위有爲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이 유위는 작은 행위(소위小爲)가 모여 큰일을 이뤄 낼 수 있음을 가리킨다. 노자에 따르면 이 유위는 무위의 원칙을 위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위 사상을 보충하는 한 가지 중요한 부분이다.

 

어려운 일을 해결하고자 하면 마땅히 쉬운 일부터 해야 하고, 큰일을 하고자 하면 작은 일부터 해야 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부터 시작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까닭으로 성인은 언제나 큰일을 하는 법이 없으면서도 늘 큰일을 성취할 수 있다.

 

안정된 것은 유지하기 쉽고, 아직 변화의 조짐이 없는 것은 처리하기 쉽다. 연약한 것은 부서지기 쉽고 작은 것은 흩어지기 쉽다. 아직 일이 생기기 전에 예방하고, 혼란스러워지기 전에 다스린다.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 같은 싹에서 생겨나고, 아홉 층 높은 누각도 한 줌 흙에서 일어나며,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억지로 일을 하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여기에서 노자는 무위를 실행하여 천하를 잘 다스리고자 한다면 통치자는 어떤 일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 곧 노자 무위 사상 속의 적극적 유위 사상의 한 측면이다. 쉽게 할 수 있을 때에 하면 작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요점은 발생하기 전에 하고, 혼란스러워지기 전에 다스린다는 데에 있다. 이렇게 할 때에만 비로소 작은 행위로 커다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성인은 결코 큰일을 하지 않지만 결국에는 오히려 큰일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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