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하늘의 명을 아는 사람
주역에 나오는 이상적 인간상은 군자, 대인, 현인賢人, 성인聖人, 인자(仁者, 어진 사람), 지자(知者, 지혜로운 사람), 후(后, 임금) 등이다. 크게 혼용해서 사용할 수도 있고, 엄격하게 구분하여 쓸 수도 있다. 여기서는 크게 구별하지 않고 서로 교체하면서 쓸 것이다. 우선 군자는 도덕 수양을 본질로 하는 인격적인 존재를 나타낸다.
- “천체의 운행은 건실하다. 군자는 그것으로 스스로 쉬지 않고 힘쓴다.”
-“땅의 형세는 곤이다. 군자는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싣는다.”
- “군자는 윗사람과 사귀어도 아첨하지 않고 아랫사람과 사귀어도 업신여기지 않는다.” 이에 반해 소인小人은 “어질지 아니함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불의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익을 보지 않으면 힘쓰지 않고, 무서운 상황을 만나지 않으면 혼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이런 인격적인 군자가 점서占筮를 친다고 주장한다. 주역이 본래 점서에 관한 책이라면 주역 속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군자가, 점서와 어떤 방식으로 연관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중국이나 한국의 유학자들이 점을 쳤다는 사례는 수없이 발견된다. 『난중일기』에 보면 군자이면서 장군이었던 이순신도 점괘를 보았다는 기록이 17회나 나온다. 아들의 병이 걱정이 되었을 때나 전투를 앞두고 직접 점을 쳐서 길흉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군자는 왜 점을 쳤을까?
주역은 천지의 변화에 관한 책이다. “역은 하늘과 땅과 더불어 수준을 같이 한다. 그러므로 천지의 도를 망라한다. 위로 우러러 천문을 관찰하고, 아래로 구부려 지리를 살핀다. 이 때문에 은밀하여 드러나지 않는 세계와 밝게 드러나는 세계의 근원을 안다. 처음 시작되는 것을 살펴 마치는 이치를 돌이켜 보기 때문에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알 수 있다. 정밀한 기운은 엉기어 물체가 되고, 떠도는 혼은 변하여 흩어진다. 이런 까닭에 귀신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천지와 더불어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어긋나지 않는다. 지혜가 만물에 두루 미치고 도가 천하를 구제하기 때문에 허물이 생기지 않는다.” 군자가 사는 세상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군자가 그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여 올바르게 처신하기 위해서는 변화의 법칙에 관한 책인 주역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주역에 나오는 군자는 끊임없이 역학의 이치를 배우고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 “군자가 한가히 거처하면서 살펴야 하는 것은 역에 대한 서술이고, 즐기면서 완미해야 하는 것은 효사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편안하게 거처할 때는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의미를 살피고 그 괘사와 효사를 보며, 일이 있어 움직일 때는 변하는 것을 살피고, 점괘를 완미한다.” 이것은 군자가 역리를 잘 이해할 뿐만 아니라, 일이 생길 때에는 실제로 점을 쳐서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 점이 지시하는 내용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군자는 스스로 인격을 닦을 뿐만 아니라, 그 닦은 인격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켜야 한다. 그래서 성인은 천도에 밝고 민정을 잘 살펴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신비로운 서법筮法과 귀복龜卜으로 점을 쳐서 백성들이 고통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성인은 이 괘와 효의 내용을 가지고 마음의 욕심을 씻어내고, 가만히 물러나 마음 속 은밀한 곳에 역의 진리를 간직한다. 그러다가 길한 상황과 흉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백성과 함께 근심한다. 신묘한 능력으로 미래의 일을 알고, 지혜로운 마음으로 과거의 일을 간직한다. 그 누가 이러한 일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이런 수기와 치인을 잘 하기 위해서 군자는 천명天命을 자각해야 한다. 사람은 자기의 천명에 따라서 행위 하면 길하게 되고 천명을 어기면 흉함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군자는 자기의 천명을 어떻게 자각할 수 있을까? 그 한 방법이 점서를 보는 것이다. 점서란 신명神明의 상태에 들어가서 신 또는 천지의 명을 듣고자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점서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정한 인격자만이 할 수 있는 행위이다. 여기서 군자의 성덕론과 점서의 종교적 신성성의 극치가 연결된다. 지극한 덕을 쌓은 인격자만이 점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성인이 역을 사용하는 방법에는 네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사辭와 변變과 상象과 점占이 그것이다. “역에는 성인의 도가 넷이 있다. 즉 역으로써 의론할 경우 괘사와 효사를 중시하고, 행동할 경우 괘효의 변화를 중시하고, 기물을 만들 경우 괘상을 중시하고, 점을 칠 경우 점의 결과를 중시한다.” 주역은 본래 점서이기 때문에, 점을 친 경우에는 점의 결과를 중시해야 한다.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바꾸거나 아전인수 격으로 곡해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괘사와 효사의 의미를 재해석하여 자기주장을 수립하는 근거로 삼았기 때문에, 의론할 경우에는 괘사와 효사를 중시해야 한다. 그리고 역상易象에서 본을 취하여 행위에 응용하였기 때문에, 행동할 경우에는 괘효의 변화를 중시해야 한다. 그리고 기물을 만들 경우에는 괘상을 중시해야 한다. 이 점은「계사 하」에 잘 나타나있다. “옛날 복희씨가 천하를 다스릴 적에 우러러 천상을 관찰하고, 아래로 땅의 법칙을 관찰하고, 새와 짐승의 모습과 지상의 식물들을 관찰하고, 가까이 자기 신체를 관찰하고, 멀리 각종 기물을 관찰하여, 법칙을 발견하고, 여덟 가지로 분류하여, 마침내 8괘를 창작했다. 그 8괘의 상象으로써 자연계의 신비를 해석하고, 만물의 진상을 유형화할 수 있었다. (---) 복희씨가 죽은 이후 신농씨가 흥기하여 나무를 깎아 쟁기자루를 만들고, 나무를 휘어 쟁기날을 만들어서 이런 쟁기의 이로움을 바탕으로 천하를 교화했는데, 익괘益卦에서 원리를 취했을 것이다.”
덕을 쌓고 점을 쳐서 천명을 자각한 군자가 해야 할 다른 중요한 과제는 거업居業(광업廣業)이다. 거업이란 천지 안에서 인간이 할 일에 힘쓰는 것이다. “대체 역은 성인이 도덕을 숭상하고, 사업을 광대하기 위한 것이다.” 덕이 내적으로 도와 합일이라면, 거업은 외적으로 자기의 할 일에 힘쓰는 것을 일컫는다. 그래서 덕과 업은 체體와 용用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덕이 날로 새로워진다고 하여 시간상으로 말한 것이라면, 업은 보다 많은 사람과 넓은 지역에 미치기 때문에 공간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래서 군자가 행할 사업이란 그가 터득한 진리를 공간적으로 온 인류에게 시행함을 의미한다. “군자가 종일토록 노력하여 저녁때까지 애태운다” 이런 사업의 효과가 천하에 미칠 때 이를 일러 대업大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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