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77, 지뢰밭)

이효범 2021. 7. 31. 06:05

o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77, 지뢰밭)

 

o 지뢰밭

 

구녕 이효범

 

나이든 사람에게는 온통 세상이 지뢰밭이다.

 

계단이 그렇고, 버스가 그렇고,

심지어 자고 일어난 침대나 화장실 바닥이 그렇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오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그렇고,

당신이 무심코 한 말과 표정이 그렇고,

젊은 날 즐겨 먹던 인절미가 그렇다.

 

지뢰에 터지는 젊은 병사야 현충원에 눈물로 안치되지만

유효기간이 지난 몸은 불에 던져진 헌옷이다.

 

후기:

젊을 때는 모릅니다. 나이가 들면 우리 육체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나는 젊은 시절 대학에서 강의할 때는 4층에 있는 오래된 건물의 연구실에서 걸어 내려와, 캠퍼스 잔디밭 옆 오래된 나무 밑을 70m 지나, 맞은 편 건물 3층에 있는 학과 전용 강의실에 가서 수업을 하였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똑같은 길을 거꾸로 해서 연구실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하루에 몇 번씩 이 길을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우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은 힘들었지만, 오가는 걸음걸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강의실 3층을 한 번에 걸어올라가기가 숨이 찼습니다. , 나도 이제 떠날 때가 되었구나, 슬프게도 물러나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선배 교수들처럼, 계단 중간에 서서 호흡을 가다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하였습니다. 다행이 그런 모습을 보이기 전에 퇴임을 한 것에 나는 감사드립니다.

노화야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지만 어떤 모습으로 노화를 맞이할 것인지는 우리 각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꽃이 지는 것도 아름다울 수 있듯이, 멋진 노화란 참으로 어렵고 위대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