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72, 아니, 꽃 지는 듯이 말해요)
o 아니, 꽃 지는 듯이 말해요
구녕 이효범
오늘은 비오는 날
빗소리를 들으며 가만 가만히 말해요.
옆 집 그 선량한 빵가게 아저씨도
코로나로 얼굴이 얼음처럼 굳어졌어요.
월드컵 경기하는 날이 아니잖아요.
악마의 입으로 고함치지 말아요.
부부싸움도 더러운 성질 죽이고
애들 앞이라고 말해요.
우리가 이 땅에 살려고 왔지
죽으러 온 것이 아니잖아요.
아기 볼에 입맞춤하듯
부디 잘 되라고 말해요.
말은 크게 할수록 울림은 작아지고
당신만 강가에 빈 배처럼 홀로 남아요.
조그만 예배당에서 혼자 드리는 기도가
높은 하늘에 닿아요.
둘이서 먼 길을 오래 걷기 위해서는
우리, 꽃피는 듯이 말해요.
아니, 꽃 지는 듯이 말해요.
후기:
말이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빈 말만 무성할 뿐, 들어볼만한 알찬 말은 보이지 않는다. 홍수처럼 말들은 범람하는데 먹을 수 있는 정갈한 말이 없으니 우리의 영혼은 몹시 목마르다. 깊고 위대한 영혼에서 흘러나와 우리의 가난한 영혼을 흔드는 말들은 무슨 말일까. 시는 그런 말일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런 시를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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