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콩트(5. 4주간의 외도)
구녕 이효범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아내는 비장한 얼굴로 통장들을 내밀었다. 그 중에는 처음 보는 통장도 있었다. “이게 웬 떡(돈)이야.” 기쁜 마음으로 반기자, 학교에 근무하는 아내는 “그동안 당신한테 싫은 소리 들으면서 힘들게 모은 거예요. 제가 없는 동안에 찾아서 술값으로는 절대로 쓰지 말고 오히려 더 늘려 놓으세요.” 명령하고, 아내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교육청에서 보내주는 4주간의 어학연수를 떠났다.
아내가 자기 발전을 위해 국가의 돈으로 영어 공부하러 간다는 데, 소위 대학에 근무하는 남편으로서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약간의 해방감도 든 나는 웃으면서 아내를 보냈지만, 밖에서만 떠돌던 내가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지며 세 아이를 보살핀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어려운 일은 먹는 문제였다. 처음 며칠은 아내가 준비해 놓은 밑반찬으로 그럭저럭 꾸려 나갔지만, 방학이라 하루 세끼를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해결한다는 것은 고역 중에 고역이었다. 아침을 먹으면 곧 점심이 다가오고, 마음에 점을 찍는가 하면 곧 저녁이 급습했다. ‘다음에는 무엇을 먹지’ 내 머리는 동물처럼 온통 먹는 생각으로 꽉 찼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아이들도 비상상태를 직감했는지 예전의 개인주의적인 태도를 버리고 매우 협조적으로 나왔다. 한 번만 불러도 모두 식탁에 앉았고, 찬이 없어도 평소보다 더 먹었으며, 자기가 먹은 그릇은 스스로 설거지 그릇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당번을 정해 설거지를 했다. 한 번도 안 하던 설거지를 하다 보니 평소에 보지 못한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그릇들의 쓰임이 놀라웠고 도자기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또 남겨 버리는 음식찌꺼기가 그렇게 많은지 상상을 초월했다.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 한 상자를 사서 아껴먹다 맨 밑줄에 깔려 있던 복숭아들이 모두 썩어 버렸을 때의 그 안타까움과 죄송스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다 같이 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잠도 거실에서 모두 함께 잤다. 그러는 중에 나는 둘째 아이가 한쪽으로만 밥을 씹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유를 물으니, 한쪽이 아파 다른 쪽으로만 씹고 있는데, 치과 가기가 무서워서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싫다는 아이를 당장 동네 치과 병원에 끌고 갔다. 충치였다. 그런데 사실 나도 몇 달 전부터 한쪽 이가 아파 다른 쪽으로만 씹고 있었다. 진단 결과 나도 충치였다. 둘째 아이는 엄마와 꼭 빼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병원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점이 나와 똑같다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느 날 중학교 1학년인 큰 아이가 머뭇머뭇 말을 꺼냈다. 말하다 말고 망설이는 겁이 유난히 많은 아이에게, 나쁜 일만 아니라면 모두 들어주겠다고 안심시켰다. 그랬더니 “대전에 H.O.T가 오는데 공연 보러가도 되요?” 묻는 것이었다. H.O.T의 열성 팬인 아이에게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신나는 소식이겠는가! “어떤 아빠는 에치오티를 핫(hot)이라고 발음한단다. 하하. 나는 그 정도는 아니야. 시간만 있으면 너와 함께 공연갈 수도 있는데 많이 아쉽다.” 나는 통이 크게 승낙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에치오티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가 누군지도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나 현대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 젊은 아빠, 적어도 아이들을 이해하고 있는 아빠이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는 저녁 7시 공연을 앞자리에서 보아야 한다고 오전 11시에 집을 나가 밤 11시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온갖 불길한 망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버스 정류장에서 공포에 쌓여 큰 딸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했던 아빠의 기도를 우리 아이는 아는지 모르겠다.
말은 서로 안했지만 우리의 관심은 내심으로 “엄마가 보고 싶지만 참을 수 있어.” 의젓하게 말하는 5살짜리 늦둥이에게 쏠리고 있었다. 큰 아이하고는 9살 차이가 난다. 딸만 둘이면 말년에 딴 눈을 팔지 않겠느냐고 아내는 침대 속에서 몇 번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다. 그렇잖아도 인생 말년에 집을 떠나 스님처럼 수행한다고 한 나의 말을 아내는 기억하고 있었다. 끝내 아내는 나를 믿지 못하고, 나와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아들을 난 것이다. 예상 밖 선물이었지만 늦둥이 아들을 키우니까 아내가 참 잘 했구나, 고맙기도 했다.
큰 아이는 틈틈이 막둥이에게 한글과 숫자를 가르쳤다. 둘째는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놀아주었다. 우리는 모두 단합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그래도 엄마의 빈자리는 남아 있었다. 방학이라 하루 종일 아파트에만 있는 것이 답답해서 나는 운동 겸 타기 위해 오래 방치했던 자전거를 고쳤다. 스타일은 낡았지만 그런대로 쓸 만했다. 우리는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살았기 때문에 자전거 타기에는 쾌적한 환경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화폐박물관도 가고, 북쪽에 난 문으로 카이스트에 들어가면 넒은 캠퍼스가 환상적이었다. 뒤에 탄 막내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할까. 예상 밖 사건이 터졌다. 내가 없는 동안 큰 아이가 막내를 태우고 슈퍼에 가는 도중 자전거 뒤 바퀴에 아이의 발이 낀 것이다. 결국 하얀 붕대를 퉁퉁 감고 막내는 침대에 눕게 되었다.
참으로 며칠이 아쉬웠다. 아내가 돌아오면 뻐기려고 했다. 나는 비록 먼 하늘의 별을 관찰하다가 발 밑 개천에 빠진 탈레스의 후예이지만, 가정의 작은 일도 잘 할 수 있는 생활인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완벽하게 증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단지 4주라는 짧은 기간에도 해내지 못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항에서부터 아내가 잔소리 할 것이 뻔했다.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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