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가을입니다. 시를 지어봅시다. 3
구녕 이효범
1-3. 시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만 아니라, 현실에 대해서 저항하기도 하고 찬양하기도 합니다. 시는 현실에 대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수영의 <풀>은 민중의 저항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노동자 출신 박노해 시인은 1984년 27세의 나이로 『노동의 새벽』을 출간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중에서 <노동의 새벽>은 그 당시 참담했던 노동자들의 실태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 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 가지// 서른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 가지/ 끝내 못 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라/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 처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이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 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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