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10) 존 스튜어트 밀을 찾아서 4

이효범 2023. 5. 6. 06:42

o (10) 존 스튜어트 밀을 찾아서 4

 

구녕 이효범

 

밀은 벤담을 잇는 공리주의자로 유명하지만, 자유론의 저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밀은 자신의 수많은 저술 중에 이 책이 가장 생명력이 길고 영향력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는데, 그 판단은 적중했다. 오늘날 이 책은 사상과 언론의 자유에 대한 최고의 고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밀이 이 책에서 관심을 갖는 것은 대중여론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개인에 대해 가하는 불법적 통제에 관한 것이다. 사회는 지배적인 여론과 감정을, 사법적 제재 이외의 방법으로 강제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하여 사회는 다양한 종류의 정치적 억압보다 더 강력한 사회적 횡포를 개인에게 행사한다. 밀은 이러한 사회적 압력을 개인의 발달에 대한 굴레로서, 또 지배적 관습에 대한 굴종을 강요하는 것으로서 묘사한다.

 

이에 대해 밀은 단호하게 집단 여론이 개인에게 행사할 수 있는 통제의 정도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한계를 발견하고, 침해에 대항해서,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사의 좋은 조건을 형성하는 데에, 정치적 독재에 대한 견제와 마찬가지 정도로, 불가결한 것이다.”그래서 밀은 개인의 행위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한계를 설정하기 위해, 일정한 원칙(원리)을 제시한다. 그 원칙은 다른 사람에게 가해지는 해를 방지하게 위해서만, 그리고 그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 해를 끼칠 경우에 국한해서, 사회는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든지, 아니면 그 행위자가 보여준 예시로 인해서든지, 행위자를 통하여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행위 등은 사회적 간섭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밀의 자유의 원리(the liberty principle)’는 단순하고 행하기 쉽다. 이것을 분석하면 (a)판단력이 있는 성인이라면, (b)자신의 생명, 신체, 재산 등 모든 자신의 것에 관하여, (c) 타인에게 위해(危害)가 미치지 않는 한, (d) 비록 그 결정이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더라도, (e)자기가 결정할 권한을 갖는다 는 것이다. 이 원리는 타인에게 해악을 주지 않는 한계 내에서의 최대한의 자유를 의미한다. 이것은 다시 해악금지의 원리(the principle of nonmaleficence, 타인에게 해를 주지 말라)와 자율성 존중의 원리(the principle of respect for autonomy,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라)가 결합된 원리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위험한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발견할 때, 우리가 그 사람들을 멈추게 한 뒤, 다리 붕괴의 위험성을 알릴 수는 있겠지만, 만약 그들이 계속 가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비켜서서 그들을 통과시켜야만 한다. 왜냐하면 오직 다리를 건너는 그들만이, 자신의 행동의 중요성과 위험의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의 원리에 기초한 밀의 공리주의는,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최저한도의 타자 위해(危害)의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는, 최저한도의 윤리학(minimum moral)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최대 도덕(maximum moral)이라고 할 수 있는 칸트의 윤리학과 비교하면, 밀의 윤리학이 얼마나 자유스러운 윤리학인지 잘 알 수 있다. 칸트는 우리가 정언적 무상명령(명법)을 조건 없이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무상명령을 몇 가지로 정식화(定式化)할 수 있다. “너의 준칙이 보편법칙이 될 것을, 그 준칙을 통하여 네가 동시에 의욕 할 수 있는 그러한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보편법칙의 정식), “너 자신의 인격에 있어서나 모든 타인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단순히 수단으로서만 사용하지 말고, 동시에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행위하라.”(목적자체의 정식), “너의 의지가 자신의 준칙을 통하여, 동시에 자기 자신을 보편법칙을 세우는 존재로 간주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자율의 정식) 우리는 칸트의 요구대로 모든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칸트는 생전에 이런 도덕률을 실천하지 못했다면, 영혼은 불멸하므로, 사후에라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참으로 엄격하고 어려운 윤리학이다.

 

밀은 자유론2장에서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말한다. 이 자유는 진리의 발견과 인류의 정신적 행복의 기초를 이루는 자유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다수자의 사상에 대한 소수자의 싸움을 의미한다. 그런데 흔히 다수자가 어떤 수단에 의해서 소수자의 사상을 박해한다는 것은 그 자신의 절대적 무오류(無誤謬)를 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심판에서 보듯이 큰 오류이다. 박해를 받는 소수자의 사상이 완전히 진리이고, 현실의 다수자의 지배적 사상이 틀린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또 가장 흔한 경우는 현실의 다수자의 지배적인 사상도 그리고 소수자의 사상도 다 같이 일부의 진리를 포함하는 경우이다. 이때에는 쌍방의 사상이 토론의 장에 놓여짐으로써 보다 높은 차원에서의 진리의 출현이 기대될 수 있다.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적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또 다수자의 지배적 사상이 완전한 진리이고, 소수자의 사상이 틀린 경우에도, 후자에 대한 전자의 박해는 옳은 것이 못된다. 하나의 사상은 비록 그것이 정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오랜 시일이 경과하게 되면 죽은 독단이 되고, 생기 있는 진리일 수가 없게 된다. 그것은 다만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하나의 인습이며, 정신이 결여된 형체에 지나지 않는다. 형체로서는 옳지만 정신이 결여된 사상에 대해서, 그 내부 깊숙이 간직되어 있는 진리성을 다시금 환기시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 위해서는 반대설과의 토론에 의거할 수밖에 없다. 비록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반대설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주자의 반대설에 의해서 비판되어야만 다수자의 진리도 생명을 견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상과 언론의 자유는 인류의 발전에 필수불가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