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10) 존 스튜어드 밀을 찾아서 5

이효범 2023. 5. 7. 08:38

o (10) 존 스튜어트 밀을 찾아서 5

 

구녕 이효범

 

밀의 자유사상은 그의 원자적 개인주의와 연합한다. 국가의 법이 도달할 수 없는 사적인 영역이 있다. 아담 스미스와 리카도는 이 영역을 상업적 기업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다. 벤담은 종교의 위협 때문에 법이 도덕적 자유에 개입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러나 밀은 그것을 소박한 실용적 원리(자유의 원리)로 환원시키려고 했다. “권력이, 문명화된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 대해, 그들의 의지에 반하여 정당하게 행사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밀은 자기 관계적 행위와 타인 관계적 행위를 구별한다. 그리고 단지 자신에게만 관심을 갖는 부분에 있어서, 그의 독립성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옳다. 그 자신 즉 그의 신체와 정신에 대해 개인은 군주이다.” 그래서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사적 이익을 간섭해서는 안 된다. 이슬람교도의 돼지고기 혐오, 가톨릭의 성직자 결혼 금지, 미국 메인주의 금주법, 사회주의의 부의 균등화 요구, 영국의 금주 운동, 안식일 엄수주의, 그리고 모르몬교도의 일부다처제 등이 간섭의 예들이다. 이것은 오랜 기간 자연스럽게 형성된 관습과 전통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관습이라는 것은 어떤 정치적 집단에 의해서 형성되거나 말소되는 것이 아니고, 또 어느 특정한 정치 세력에 의해서 가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간성의 고양을 위해서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된다. 무비판적으로 그것을 따른다면 소극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르나, 선택할 수 있는 적극적 자유는 포기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세계 즉 그 자신이 그것의 일부인 세계로 하여금, 그를 위한 삶의 계획을 선택하도록 내버려 두는 사람은, 원숭이 같은 모방 능력 외의 다른 어떤 능력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류의 진보는 관습을 자유롭게 타파한 사람 즉 깨인 사람 또는 개척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이 시대는 단지 순응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단지 관습에 무릎 꿇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 자체로 도와주는 것이다. 여론의 폭정은 바로 별난 행동을 비난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그것은 저 폭정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별나지는 것은 바람직하다. 별난 행동은 개성의 힘이 풍부했을 때와 장소에서 항상 풍부했다. 그리고 사회 속 별난 행동의 양은 일반적으로 그 사회가 품을 수 있는 특별한 재능, 정신적 활력 그리고 도덕적 용기의 양에 비례했다. 이제 별나질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이 시대의 주된 위험을 나타낸다.”

 

선택이라는 표현은 밀의 경우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삶의 질과 인간의 유형을 결정하는 실존적 결단의 성격을 띨 뿐만 아니라, 인간의 이념을 구현하는 실질적 방안이 되기 때문이다. 이 선택이야말로 개체성(individuality)을 형성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밀에 있어서 개체성의 한 부분은 이런 신념들과 삶의 양식들 사이에서 심사숙고하는 선택을 마련할 용의, 또 다른 부분은 그러한 선택의 방향과 내용으로 구성되는 것으로서, 여기에 개인의 자유와 상황의 다양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조건이 된다.

 

밀은 각자가 자기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규정하는지 밝혀주지 않았다. 이것은 사실 그 누구도 밝혀줄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개발과 사회의 진보를 위한 어떤 힘이 작용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목적론적 인간관과 세계관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발과 진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고, 교육과 예술 등 도덕적 교훈과 그 영향력을 통한 인위적 수단의 지원이 요청된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이러한 지원에 개인의 능동성과 자발성, 그리고 자율성이 최대한으로 발휘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고, 여기에 전제가 되는 것이 곧 자유이다.

 

여기서 우리가 새삼스럽게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자유론 전반에 걸쳐서 개성 혹은 개체성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개인에 대한 개성의 존중은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다양성을 포용함으로써 사회를 더욱 역동적으로 만들고, 그 사회를 더욱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비록 고전적인 사회계약설이 개인의 자유를 자연적으로 해석하여 자유주의의 성립과 민주주의의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개성이 존중되고 개인의 내면세계가 보장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유라는 이름을 듣기에 합당한 유일한 자유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는 한, 또 행복을 얻으려는 그들의 노력을 낭비하려고 하지 않는 한, 우리 자신의 방법으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유이다.” 민주주의가 확대됨에 따라 소수 특권층의 횡포는 많이 줄어들었으나, 그 대신 다수자가 여론을 형성하여 소수자의 권익을 짓밟고, 개인의 내면생활을 억압하는, 이른바 다수자의 전제(the tyranny of majority)를 허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심각한 결함이며, 자유에 대한 새로운 도전임을 지적하고, 참다운 의미의 개인적 자유를 보장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 밀의 자유론의 중심사상이다.

 

이런 밀의 자유론은 자유주의 이론의 중요한 고전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후대의 영미 철학자들인 버트런드 러셀, 이사야 벌린, 존 롤스 등과 수많은 정치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유럽 대륙에 마르크스가 있다면, 영미권에는 밀이 있다고 할 정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