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부모의 은혜에 대하여1
구녕 이효범
우리가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기적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청혼했는데 어머니가 거절했다면, 내가 태어나기 10개월 전 어머니와 아버지가 합방을 하지 않았다면, 더 나아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계 중에 무엇 하나가 삐끗하였다면 나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태어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일까? 0에 가깝다. 오히려 내가 존재하지 않는 일이 더 당연하고 자연스런 일이다. 그런데 나는 결과적으로 부자연스럽게 존재한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기적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들의 유전자를 공동으로 물려받았다. 그들의 분신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면 할수록 부모님의 은혜가 끝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시경』에 유명한 시가 나온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애닯구나, 부모님이여, 나를 낳아 기르시느라 고생도 많으셨도다. 그 은덕에 보답하려니, 하늘처럼 끝이 없구나.(父兮生我 母兮鞠我 哀哀父母 生我劬勞 欲報之德 昊天罔極)”(이 시경의 구절은 그 자체로 완결편 같으나, 실은 소아(蓼莪)편의 부분들을 적절한 문맥에 따라 재구성한 것으로, 원래의 시와는 차이가 있다.)
불교의 『부모은중경』에도 부모님의 10가지 은혜가 묘사된다. “여러 겁에 인연이 지중해서/ 금생에도 모태에 의탁했네./ 달이 차서 오장이 생겨나고/ 일곱 달 이레에는 육정이 완성된다./ 몸은 둔해 산같이 무거우니/ 앉고 설 땐 풍재(風災)인양 아찔하다./ 비단옷은 걸쳐볼 생각조차 없고/ 경대에는 먼지만 자욱하였네. (뱃속에 품고 지켜주신 은혜) 잉태한 지 열 달이 차고 나면/ 그 고통은 저승의 문턱이라./ 아침마다 중병을 치룬 듯 하고/ 매일같이 까무라친 사람 같네./ 두려움은 기억조차 할 수 없고/ 근심은 눈물되어 옷깃을 적시도다./ 시름에 겨워 친척에게 이르는 말이/ 살아남지 못할까 걱정이라네. (낳을실 때 고생하신 은혜) 어머니가 그대 낳던 날/ 오장은 온통 찢기었나니/ 몸도 마음도 까무라치고/ 흘러내린 피는 도살장 같았다./ 그러고도 아기 건강탄 말 듣고/ 기뻐함이 평시의 곱이나 된다./ 기쁨은 잠시요 슬픔이 다시 오니/ 산후의 고통이 간장을 에운다. (해산한 뒤에 근심을 놓으신 은혜) 부모의 은혜는 깊고도 무거워서/ 보살펴 주는 일 때를 잃지 않는다./ 단 것은 뱉어서 자시지 않고/ 쓴 것은 삼키되 찡그리지 않는다./ 애정은 무거워 숨길 수 없고/ 은혜는 깊어서 차라리 서럽다./ 아기 배부르기만 바랄 뿐/ 당신의 시장함은 사양치 않는다. (쓴 것은 삼키시고 단 것은 뱉어서 먹여주신 은혜) 어머니 자신은 온통 젖었어도/ 아기는 마른 데로 골라 누인다./ 두 젖으로는 아기 배를 채우고/ 고운 옷소매로는 찬바람 가려준다./ 아기 보살피기에 단잠을 설쳤어도/ 귀여운 재롱에 기쁨으로 변한다./ 언제나 아기의 편안함만 바랄 뿐/ 자신의 고달픔은 생각지 않는다. (젖은 데로 누으시고 마른 데로 뉘여주신 은혜) 어머니의 사랑은 땅에 견주고/ 아버지의 은혜는 하늘에 비기니/ 하늘 땅의 은공이 균등하듯이/ 부모님의 은혜도 그러하여라./ 두 눈이 멀었어도 개의치 않고/ 팔다리 절더라도 싫어하지 않나니/ 내 속에서 태어난 자식이기에/ 종일토록 아끼시고 귀여워하네. (젖을 먹여 길러주신 은혜) 지난날 예뻤던 몸매/ 퍽이나 풍만했으니/ 눈썹은 버들잎 같고/ 두 뺨은 연꽃보다 붉었는데/ 깊은 애정으로 얼굴엔 주름살 늘고/ 잦은 빨래로 손거울 녹슬건만/ 오로지 아들딸 사랑하는 정성으로/ 어머니는 비로소 매무새를 추스르네. (더러운 것을 씻어주는 은혜) 죽어서 이별함도 잊을 길 없지만/ 살아서 헤어짐은 더욱 슬픈 일이니/ 자식이 집을 떠나 타관에 있으며/ 어머니의 마음도 타향에 가 있다./ 낮이나 밤이나 마음에 되씹으며/ 흘리는 눈물은 천 줄긴가 만 줄긴가./ 원숭이가 새끼 찾아 슬피 울듯이/ 자식 생각 굽이굽이 애가 끊는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걱정하신 은혜) 부모의 은혜는 강산보다 중하니/ 깊으신 그 은혜 보답키 어려워라./ 아들의 괴로움을 대신 받기 원하고/ 아들이 괴로우면 부모 마음 편치 않네./ 멀리 집 떠난단 말 들으면/ 집 나간 밤부터 단잠을 설치나니/ 자식들의 수고는 대수롭지 않아도/ 어머니의 마음은 오래도록 쓰리네. (자식들을 위하여 궂은일을 하신 은혜) 부모의 은혜는 깊고도 무거울사/ 예뻐해 주시는 정 잠시도 끊임없네./ 않았거나 섰거나 마음에서 안 떠나고/ 가깝거나 멀거나 생각 항상 따라가네./ 부모 연세 백 살이 넘어도/ 여든 살의 자식을 걱정하나니/ 간절한 그 애정 언제나 끝날꼬./ 두 눈을 감아야 비로소 다하려나. (끝까지 사랑하신 은혜)”
부모로부터 은혜를 입었으면, 적어도 그가 사람다운 사람이라면, 부모님의 은혜를 고마워하고 보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찍이 공자는 재아(宰我)가 3년 상이 너무 긴 것 같다고 하자 그것을 꾸짖었다. “그는 인(仁)하지 못하다. 그도 태어난 지 3년이 지나서야 부모의 보살핌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 아니냐. 무릇 3년 상은 천하의 보편적인 상례가 아니냐. 그도 부모로부터 3년 간 사랑을 받았을 것이 아니냐.”(논어, 양화편) 부모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갚을 줄 모른다면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불교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제왕으로 알려진 인도의 아쇼카(Asoka) 왕은 자신의 정치 이념과 불교 신앙을 새긴 석주를 인도의 곳곳에 세웠다. 그는 석주에 새겨진 자신의 칙명에서 “아무리 광대한 보시를 행하더라도 극기, 마음의 청정, 보은에 대한 견고하고 깊은 믿음이 없다면 그는 천한 사람이다.”라고 선포했다. 은혜를 안다는 것은 불교에서 강조하는 대자대비를 생기게 하는 근본이고, 선한 업(業)을 쌓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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