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에 나타난 효사상 2
구녕 이효범
나의 존재는 가장 가까이는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의 결합으로 내가 탄생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너무나 큰 신비이다. 수정란이 세포 분열하여 어떤 부분이 눈, 손, 피부 , 그리고 두뇌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사람이 형체가 갖추어지는데, 새롭게 형성되는 심장, 폐, 두뇌, 그 밖의 소화기관들은 마치 모선에서 떨어져 나올 순간이 정확히 언제인지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 때가 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성된다. 그래서 김소월은 노래한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 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김소월, ‘부모’ 전문)
탄생의 신비로 내가 태어났지만, 내가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눈물의 힘 때문이다.
“어머니는/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그 동그란 광택(光澤)의 씨를/ 아들들의 가슴에/ 심어 주신다.// 씨앗은/ 아들의 가슴 속에서/ 벅찬 사랑/ 젖어드는 그리움/ 때로는 저린 아픔으로 자라나/ 드디어 눈이 부신/ 진주가 된다/ 태양이 된다.// 검은 손이여/ 암흑이 광명을 몰아내듯이/눈부신 태양을/ 빛을 잃은 진주로/ 눈물을 아예 맹물로 만들려는/ 검은 손이여 사라져라.// 어머니는/ 오늘도/ 어둠 속에서/ 조용히/ 눈물로/ 진주를 만드신다. (정한모, ‘어머니6’ 전문)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나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해가 지도록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애타는 마음으로 동네 입구 밖에 있는 나무 위에 올라서서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멀리서 오는 아들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을까 해서이다. 자녀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나무(木) 위에 올라서서(立), 아들을 기다리며 바라보는(見), 어머니의 모습. 이 형상을 본떠서 만들어진 한자가 바로 어버이 ‘친(親)’이다. 그런 어머니의 품은 조국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머님은 속삭이는 조국/ 속삭이는 고향/ 속삭이는 안방/ 가득히 이끌어 주시는/ 속삭이는 종교// 험난한 바람에도/ 눈보라에도/ 천둥번개 치는/ 천지개벽에도// 어머니는 속삭이는 우주/ 속삭이는 사랑/ 속삭이는 말씀/ 속삭이는 생(生)// 아득히, 가득히/ 속삭이는 눈물/ 속삭이는 기쁨. (조병화, ‘어머니’ 전문)
그런 어머니의 사랑은 아내의 사랑과는 다르다. 말하지 않아도 어머니와 자식의 마음은 깊이 교감된다. 어머니의 헌신적인사랑 때문이다.
“음식을 권했다가 내가 안 먹는다고 하면 아내는 그냥 치워버리지만 어머니는 몇 번이고 내가 먹을 때까지 성가시게 조르신다. 어머니께서 내가 먹기를 권하면 나는 언제나 버릇처럼 싫다며 고개를 도리질한다. 정말로 싫은 것은 아닌데도 투정을 하는 것이다. 끝내 어머니는 내가 먹는 것을 보고서야 흐뭇해하시고 나는 당신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이라도 한 양 흐뭇해한다. 아내는 나와 어머니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웃지만 어찌 오랫동안 길들여진 사랑의 교감을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사랑은 끈기 있게 주는 것이며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이라는 것을.” (김상현, ‘교감’ 전문)
그래서 우리는 어머니에게 이런 노래를 드릴 수 있고, 당연히 드려야만 한다.
“어머니/ 넓은 들판을 갉아먹고 사는 들쥐처럼/ 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어머니 당신의 허리를 갉아먹으며// 그래도 당신은 웃기만 하십니다./ 자식 얼굴에 웃음짓는 걸로/ 허리를 대신하겠다고 하시며/ 당신은 그저 웃기만 하십니다.// 자식들 때문에 죄인으로/ 목을 매며 사시면서도/ 자식들 입에 밥술이라도 넣어줄 수 있어/ 행복했다며 당신은 그저 웃기만 하십니다.// 철이 들어가는 자식들을 보며/ 설움도 웃어넘길 수 있었다는 / 당신은 가녀린 허리를 더/ 자식들에게 떼어주지 못하는게/ 늘 안타깝다고 하십니다./ 어머니/ 이제는 그 가녀린 허리를 대신해/ 제가 당신의 허리가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어디에 계시든 사랑으로 흘러/ 우리에겐 고향의 강의 되는 푸른 어머니.// 제 앞길만 가리며 바삐 사는/ 자식들에게 더러 잊혀지면서도/ 보이지 않게 함께 있는 바람처럼/ 끝없는 용서로 우리를 감싸안은 어머니.// 당신의 고통속에 생명을 받아/ 이만큼 자라 온 날들을/ 깊이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의 무례함을 용서하십시오.// 기쁨보다는 근심이/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많은/ 어머니의 언덕길에선/ 하얗게 머리 푼 억세 풀처럼/ 흔들리는 슬픔도 모두 기도가 됩니다.// 삶이 고단하고 괴로울 때/ 눈물 속에서 불러보는/ 가장 따뜻한 이름, 어머니// 집은 있어도 사랑이 없어 울고 있는/ 이 시대의 방황하는 자식들에게/ 영원한 그리움으로 다시 오십시오, 어머니.// 아름답게 열려 있는 사랑을 하고 싶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어제의 기억을 묻고/ 우리도 이제는 어머니처럼/ 살아있는 강이 되겠습니다.// 목마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푸른 어머니가 되겠습니다.” (이해인, ‘어머니께 드리는 노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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