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에 관한 좋은 문장들

아이들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에 대하여5

이효범 2022. 10. 9. 10:41

이래야 좋을지 저래야 좋을지, 이것은 스콜라 학파가 문제삼을 만한 소재입니다. 그의 앞에서는 모두가 그에게 양보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권위 앞에서 이 헛된 수작을 합니다. 그들은 결코 저항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믿어 줍니다. 그를 두려워합니다. 실컷 그를 존경해 줍니다. 그가 하인을 하나 내쫓으면 그 하인은 짐짝을 꾸리고 나가 버립니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서만 나가는 것입니다. 늙은이의 걸음이란 너무나 느리고 지각은 너무나 흐려서, 그 하인이 같은 집에서 1년 동안 일하며 살아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기가 오면 멀리서 가련한 신세로 용서를 간청하며, 이제부터는 일을 잘하겠다고 잔뜩 약속하는 편지를 써 보내게 해서 용서를 받습니다. 영감님이 그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무슨 흥정이나 편지를 부쳐 본다면요? 그러면 그들은 시치미를 떼고 무시해버리며, 다음에 그럴듯하게 사연을 꾸며서 시킨 대로 하지 않은 일, 또는 편지 답장이 없었던 이유를 변명합니다. 외부에서 오는 어떠한 편지도 먼저 그에게 가져오는 법이 없고, 그는 자기가 알아도 좋게 보이는 편지밖에는 읽지 못합니다. 만일 어쩌다가 편지를 직접 받게 되면, 그가 믿고 습관이 되어 읽어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동일한 편지를 가지고, 그를 모욕하는 내용은 그에게 용서를 청하는 것처럼 그때 그때 꾸며 맞춰 버립니다. 결국 그는 될 수 있는 한 그에게 슬픔을 주지 않고 분노하게 하지 않게 하려고, 그리고 그를 만족시키도록 꾸며놓은 가짜 모습으로밖에는 자기 일을 보지 못합니다. 나는 여러 가지 형태로 꾸준히 지켜 오던 살림이 이처럼 된 예를 상당히 많이 보았습니다.

여자들은 언제나 남편들과는 반대 의견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녀들은 남편에게 반대하기 위해 두 손을 내밀며 모든 구실을 잡습니다. 한 꼬투리라도 변명할 재료가 있으면, 그녀들이 하는 모든 일이 정당하다는 증거가 됩니다. 헌금을 많이 내려고 남편에게서 잔뜩 훔쳐 내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참회사에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런 경건한 헌금의 분배를 말대로 믿어 보세요! 어떠한 행동도 남편의 양보를 얻어서 한 것이라면 충분한 권위가 서지 않습니다. 이런 행동에 우아미(優雅美)와 권위를 세우려면, 농간을 부려서건, 무례한 수작으로건 언제나 부당하게 남편들의 권한을 빼앗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여기서 다루는 문제에서와 같이 가련한 늙은이에 대항해서 아이들 편을 드는 경우에는, 여자들은 이것을 구실로 삼고 영광으로 여기며, 자기들의 성정(性情)을 만족시킵니다. 그리고 모두 같은 노예 상태에 있는 것처럼, 여자들은 아이들과 결탁해서 걸핏하면 그의 지배와 지휘에 반항하려고 음모를 꾸밉니다. 사내아이가 성장해서 기운이 차면 그들을 강제로 매수해서, 요리사, 회계원, 기타의 가족들을 손아귀에 넣어 버립니다.

아내도 자녀도 없는 사람들은 이런 불행에 빠지는 것이 드문 일이지만, 더 잔혹하고 부당한 대접을 받습니다. 대 카토가 말하기를 하인의 수가 많으면 그만큼 적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순결하던 그의 시대와, 지금 이 시대의 차이를 생각해보세요. 그는 아직 아내와 아들과 하인의 수만큼 적이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노쇠한 경우에 일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고 잘 속아 넘어가는 것은 우리가 받는 달콤한 이득입니다. 여기에 악을 쓰며 대들어 보았댔자, 특히 재판관들이 우리의 분쟁을 해결해야 할 때에는 대개 젊은이들과 같은 꿍꿍이속이며, 젊은이의 편을 드는 바에 우리는 어쩌란 말입니까?

이런 속임수를 보지 못하는 경우라도, 적어도 내가 속아 넘어가지 쉽다는 사실은 내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친구 하나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만한 가치이며, 그것이 얼마나 민법상의 결연(結緣)(결혼을 말함)과 다른가는 아무리 주장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짐승들 사이에 보는 순결한 우정의 모습까지도 나는 얼마나 경건하게 존경하는지요! 설사 다른 사람들이 나를 속인다고 해도, 적어도 나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을 평가하기 위해서나 또는 속지 않도록 속을 썩이느라고 내 스스로를 속이지는 않습니다. 나는 남이 하는 일을 알아내려고 안절부절 속이 뒤집히게 하는 심정보다도, 차라리 마음을 바꾸고 내 가슴속에 일어나는 이런 배반 행위를 결단력 있게 그만두게 합니다. 나는 어떤 자의 사정에 관해서 무슨 말을 들으면 그에 대한 생각에 빠지지 않고, 즉시 눈을 내게로 돌리며 내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가를 살펴봅니다. 그에 관한 일은 모두 내 일이 됩니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은 그 방면의 내 처지를 알려주며, 내가 정신을 차리게 합니다. 우리가 생각을 밖으로 뻗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으로 돌릴 줄 안다면, 우리가 날마다 시간마다 자신의 문제로 할 일을 남의 일이라고 말하는 것도 잘 알 것입니다.

여러 작자들은 이 모양으로 자기들이 공격하는 사연을 당돌하게 찾으러 나갔다가 적에게 던지는 화살이 도리어 자신에게 튀어 돌아오게 하여 자기들의 주장을 해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드 몽뤼크 원수는 그 아들이 마데이라 섬에서 죽었을 때에, 그가 진실로 용감하고 장래성이 컸던 귀인이었기 때문에, 다른 슬픔보다도 자기 마음을 죽은 아들에게 털어 놓은 일이 없엇던 것을 통탄하였습니다. 자기가 아비로서 늘 엄하게 꾸짖는 얼굴만 보였고, 비록 아들을 잘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아들을 지극히 사랑했다는 것과 아들의 도덕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들에게 알려 주지 못했다고 하며 슬퍼하는 것을 보고, 나는 그의 인격을 대단히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이 가련한 아이는, 내가 늘 상을 찌푸리며 경멸하는 얼굴만 보였기 때문에, 그 아이는 내가 사랑하지도, 알아주지도 않는다고 믿어 버리고 말았소. 내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이 특별한 애정을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간직하고 있는 거요? 그 아이가 알아주어서 기뻐하고 고맙게 여겨 주어야 할 일이 아니었소? 나는 이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기가 거북하고 괴로웠소. 그러다가 그 아이와 같이 지내는 재미와 그 애의 애정조차 잃어버렸소. 그리고 그 아이는 내게서 모질고 엄한 취급밖에 받지 못했고 나는 그저 폭군의 모습으로만 비쳐졌으니, 나를 아주 냉정한 아버지로밖에 못 보았을 것이오.” 나는 이렇게 한탄하는 것을 진실되고 올바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경험으로 확실하게 알고 있는 일이지만, 우리가 친구를 잃었을 때에 가장 위한이 되는 것은, 그들과의 사이에 서로 모르는 일이 없었고, 완전히 그들과 마음이 통하여 지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내 기족에게(될 수 있는 대로) 내 속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주 기꺼이 내 마음과 내가 그들에 관해서 판단한 것을 누구에게나 알려줍니다. 나는 내 마음을 알려주고 네 속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나는 좋건 그르건 사람이 나를 잘못 이해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옛날 우리 골르 족이 가졌던 특이한 습관들 중에 카이사르가 말하는 것 가운데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부친들 앞에 못 나가고, 그들이 무기를 들기 전에는 부친과 함께 다른 사람들 앞에 나오지 못하며, 무기를 들 때에야 비로소 부친들은 아이들과 친하게 지낼 시기가 된 것을 말하려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나는 우리 시대의 어느 부친들이 잘못하는 일로, 오랜 생애 동안 그 아들들이 당연히 가져야 할 재산을 이용하여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해서, 그들이 죽은 다음에 아내에게 그 재산에 관한 권한을 넘겨주며, 마음대로 처리하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귀족은 우리 왕실의 으뜸가는 무신으로부터 권리를 바랄 수 있는 연금이 5만 에퀴나 있었는데, 50세가 지나서 궁하게 빚에 몰려 지내다가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모친이 부친의 명령으로 노령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전 재산을 향유하며, 여든 살 가까이 살았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내게는 결코 옳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번성하는 집안의 남자가 많은 지참금을 짊어지고 들어올 아내를 찾아다니는 꼴은 그렇게 잘하는 일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부채 가운데 이보다 더 집안에 파멸을 가져오는 것을 없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충실하게 이 의견을 좇는 것을 잘한 일이고, 나도 역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나 부잣집 딸들은 다루기가 힘들고, 고맙게도 여겨 주지 않을 우려가 있으니, 그런데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고 권하는 사람들은 그런 경솔한 추측 때문에 실질적인 이익을 잃는 수가 있습니다. 지각없는 여자는 이런 이치를 눈감아 주거나 저런 이치를 눈감아 주거나, 싹수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여자들에겐 그녀들의 가장 못된 점이 가장 자랑거리가 됩니다. 그녀들은 옳지 못한 일에 이끌립니다. 그것은 마치 착한 여자들이 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명예에 이끌리는 식입니다. 마음이 착하면, 신세가 부유할수록 마음이 더 너그럽고, 얼굴이 예쁠수록 더 영광스럽게 정숙한 몸가짐을 즐깁니다.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2, 8, 아이들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에 대하여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