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여행기

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9)

이효범 2022. 7. 29. 07:02

o 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9)

 

구녕 이효범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 하느님, 트레킹 내내 우리에게 이런 멋진 날씨를 허하시다니 너무나 고맙습니다. 재문 단장을 비롯한 우리 대원의 많은 아내들이 남편의 알프스 트레킹을 위해, 험한 날씨를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새벽마다 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지상의 사람들이 간청하는 다양한 날씨야말로 얼마나 당신을 곤혹스럽게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여행의 시작부터 마지막 날까지 이런 쾌청한 날씨의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의 마지막 일정인 몽땅베르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우선 샤모니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3842m의 프랑스 최고 전망대, 에귀 디 미디(Aiguille Du Midi)에 올랐다. 오랫동안 말로만 듣던 전망대에 내가 직접 두발로 오르다니 꿈만 같았다. 케이블카 앞과 밑으로, 90도를 이루며 하늘을 찌르는 바위들의 조각을 선명하게 보니 몸에서 소름이 돋았다. 전망대는 손으로 돌을 던지면 몽블랑에 닿을 것 같은 가까운 바위산 위에 높이 솟아 있었다. 그런데도 여기서 막상 몽블랑 등정을 시작하면 12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내가 지금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산악인들이 등정하는 모습이 개미처럼 보였다. 후덕한 모습의 몽블랑과는 달리 눈을 반대편으로 돌리면 바늘 같은 침봉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 사이로 멀리 이제 우리에게 친근한 마태호른이 보였다. 새끼손가락 같았지만 모습이 아주 뚜렷했다.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로 갈라지는 고봉들도 보였다. 알프스가 이 나라들의 경계를 긋고 웅장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 이래서 에귀디미디라고 하는구나. 어떤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세계의 전망대 중의 전망대를 나는 느꼈다. 그러나 홀로 그 진수를 오래 감상하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서둘러 케이블카를 타고 2317m의 플랑데레귀로 하산하였다.

그 역 조금 밑에 산장 식당이 있었다.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멀리 밑으로 샤모니가 보이고 꽃들로 울타리를 친 매력적인 곳이었다. 우리는 목이 말라 먼저 맥주를 신청했다. 이곳에서 만든다는 몽블랑맥주였다. 맥주를 즐겨하지 않는 나는 사실 맥주 맛을 잘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맥주 맛이 가능할까. 나는 처음으로 천상의 맥주를 마시는 것 같았다. 보균은 에귀디미디에 놀랐는지, 아니면 맥주 맛에 취했는지 흔쾌히 거금을 지불했다.

배불리 점심을 먹고 담소를 나눈 후에 우리 친구들은 다시 플랑데레귀에 올라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샤모니역으로 하산하겠다고 한다. 모두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결국 영철, 윤성, 효범만 남았다. 서울과 대전과 세종의 대표들이다. 그곳에서 몽땅베르역까지 6km3시간 동안 걸었다. 나는 걸으면서 에귀디미디에 대한 시를 생각했다. 5년 전 우리가 지금 하는 트레킹을 그대로 먼저 한 동기들이 있었다. 그 때 춘천법원장을 한 기문 친구가 에귀디미디에 올라 절규하는 시를 썼다. 나도 그런 시를 쓰고 싶었다. 걷는 동안 내내 시상을 생각해보았으나 나는 단 한 줄도 나갈 수 없었다. 그 때 고려 시대 해동제일(海東第一)’의 시인이라고 칭송받았던 김황원(金黃元,1045~1117)이 생각났다.

그는 평양 부벽루에 올라, 부벽루 벽에 현판으로 붙어 있는 모든 제영(題詠)들을 떼어버렸다. 그런 시시한 시들을 버리고 본인이 아주 멋진 시를 지어 다시 붙이려고 했다. 그는 호기 있게 시작하였다. “장성일면용용수(長城一面溶溶水, 긴 성벽 한쪽 면에는 늠실늠실 강물이 흐르고), 대야동두점점산(大野東頭點點山, 큰 들판 동쪽머리에는 띄엄띄엄 산일세.)” 딱 두 줄이었다. 그 다음 글이 막혔다. 적어도 두 줄은 더 써야 최소한의 칠언절구를 맞출 수 있었다. 그는 해가 저물 때까지 노력했으나 끝내 더는 쓰지 못하고 울면서 부벽루를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에귀디미디 앞에서 김황원이었다. 나는 왜 시를 쓰지 못하는가? 나의 재주가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풍경이 너무 뛰어나서인가? 끙끙거리는데 어느새 우리는 몽땅베르역에 도착했다. 위쪽으로 알프스 3대 북벽인 그랑조라스가 보이고, 바로 앞에는 엄청난 빙하가 휩쓸고 가 만들어진 메르데글라스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놀랄만한 새로운 풍경에도 나의 내면은 우울했다. 친구들은 이런 나의 심정을 모를 것이다. 마지막 트레킹을 완수한 우리 셋은 영철이 산 몽블랑맥주로 축제의 잔을 높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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