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105, 역설)
o 역설
구녕 이효범
세상에
말 중의 말은,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고 있는
침묵.
세상에
옷 중의 옷은,
입지 않으면서
입고 있는
나체.
침묵으로 말하고
나체로 옷을 입어라.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고 있는
하늘에 오르리라.
후기:
逆說(paradox)은 “부정하기 힘든 추론 과정을 거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결론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유명한 역설로는 ‘제논의 역설’이 있습니다. 엘레아학파의 창설자 파르메니데스의 제자인 제논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은 흐른다’라는 이론을 반대하기 위해 몇 가지 역설을 만들었습니다. 그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아킬레우스와 거북이의 역설’입니다. 전문은 이렇습니다. “아킬레우스가 100m 가는 동안 거북이가 10m 간다고 가정하고, 거북이가 아킬레우스보다 100m 앞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상태에서 아킬레우스가 거북이를 따라잡기 위해 100m 앞으로 갔다고 하면, 동시에 거북이는 10m를 나아간다. 그러면 거북이와 아킬레우스는 10m만큼 떨어져 있는데, 이 때 아킬레우스가 다시 10m를 더 나아가면, 거북이는 1m를 이동하여 거북이가 다시 1m를 앞서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킬레우스가 다시 1m를 가면, 거북이는 0.1m를 더 나아간다. 따라서 아킬레우스는 아주 미세한 거리만큼은 항상 뒤처지게 되므로, 아무리 가까워져도, 거북이를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 제논이 살았던 그리스 당시에는 보통 사람이 이 힘든 추론과정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아내는 것은 아마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결론을 또한 받아들이기는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역설은 그 후 쉽게 극복되었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쟁이의 역설’ 같은 것은 참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역설입니다. “크레타 섬 사람인 에피메니데스는 모든 크레타 섬 사람은 거짓말쟁이어서, 그들이 말한 모든 말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이 말이 참말(true)이라면, 모든 크레타 섬 사람은 거짓말쟁이어서, 그들이 말한 말은 모두 거짓말(false)입니다. 그리고 에피메니데스도 그레타 섬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말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고, 따라서 이 말은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이 거짓말이라면, 모든 크레타 섬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아니어서, 그들이 말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에피메니데스도 크레타 섬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말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 아니고, 따라서 이 말은 참말입니다. 즉 이 말이 참말이면 그리고 그런 경우에만 이 말은 거짓말이 됩니다. 이것은 어떤 명제가 참이면 거짓이 될 수 없고, 거짓이면 참이 될 수 없는 그런 논리적 기본 원칙에 위배되는 일입니다. 이런 역설을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그러나 詩的 역설은 논리를 넘어섭니다. 세상의 사실이나 진리가 모두 인간 理性의 논리에 갇힐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오히려 ‘강철로 된 무지개’처럼 역설을 사용하여, 事態 그 자체에 온전히 접근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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