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인간에 관한 붓다Buddha 당시의 견해들
불교나 자이나교는 격변하는 시대에 발생한 대표적인 자유 사상적 종교 운동이었다. 그 당시 인도에는 불교나 자이나교 이외에도 많은 자유 사상 운동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불교 경전에서는 62가지, 자이나교 경전에서는 242가지 견해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들은 “종래의 바라문들과는 달리 사문沙門이라는 새로운 형의 종교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사문이란 일정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촌락이나 도시에 유행하면서 걸식에 의해 생계를 유지해 가며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는 출가자들이었다.”
붓다 당시의 인도 사상계에 나타난 수많은 경쟁하는 사상 운동들을 인간에 관한 이론을 중심으로 크게 분류해 본다면, 베다 전통에 입각한 정통 철학의 정신 중심주의(전변설轉變說, 생명전개설生命展開說, 인중유과론因中有果論), 사문 계통의 자유 사상가들의 물질 중심주의(적집설積集說, 인중무과론因中無果論), 그리고 자이나교의 이원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불교는 이들 모두의 입장을 그릇된 견해라고 비판하고, 연기설緣起說에 입각한 새로운 인간론을 주장한다.
고대 인도인은 살아 있는 신체에는 생명의 호흡이 있고 죽으면 호흡이 정지된다는 사실로부터, 호흡이 신체를 살리는 핵심이라고 생각하였다. 또 산 사람의 꿈속에 죽은 자가 나타난다는 경험을 통해서 죽은 자도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으로부터 인간에게는 영혼과 정신이 있어서 이것은 신체와 별개로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것은 신체가 죽은 후에도 살아남으며, 신체의 정수로서 신체를 통제하는 역할을 하고, 영원히 생성하지도 소멸하지도 않으며, 여러 행위의 대가를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원래 호흡한다는 뜻으로부터 유래한 아트만atman이라는 말이 생명, 영혼, 자아, 개체의 정수 등을 의미하는 말로 변화되는 것도 이런 사고와 연관된다.
이처럼 개인의 심리적 기능을 중심으로 생각되었던 아트만이 우파니샤드Upanisad 경전에 이르러서는 우주적인 제1원리인 브라만Brahman(범梵)과 동일하게 여겨지게 된다. 이것이 범아일여梵我一如사상이다. 이로써 아트만은 자아의 영역을 넘어서 세계를 창조해 내는 근본 원리로 위치하게 된다. 인간의 자아(아트만)가 우주를 생성시키고 지배하는 원리와 동일하다고 하는 관념은 아타르바 베다Atharva-Veda에서 시작하여 브라마나Brahmaa 시대에 정착하고, 우파니샤드에 이르러서 완성된다.
인간의 자아와 우주의 본체가 동일하다면 인간의 자아를 통해서 우주의 본체를 아는 일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이전에는 궁극적 실체를 객관적 대상 속에서 찾으려고 하였지만, 우파니샤드의 현자들은 자아를 규명함으로써 찾으려고 하였다. 해탈解脫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의 자아는 곧 절대자이므로 본질적으로 무한하며, 절대적으로 자유롭다. 따라서 자아를 아는 사람은 곧 브라만이 되며, 해탈한다고 말해진다. 내가 아트만이요 아트만이 곧 브라만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자신 이외에 따로 원하거나 두려워할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정신주의는 인간 정신의 우월성을 역설하는 것으로 정신이 인생에 있어서 모든 가치를 좌우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육체는 더러운 것, 고뇌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격렬한 고행苦行(tapas)이나 수정修定(yoga)에 의해 육체를 괴롭힘으로써 정신의 안정을 얻고자 하는 고행주의의 길을 가게 된다.
정신주의가 인간 정신의 절대성을 강조한 데 반해 물질주의는 정반대의 입장에 선다. 물질주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보다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물질인 육체를 중시한다. 이것은 인간 존재가 몇 개의 물질적 원소의 모임으로 성립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이러한 물질주의적 견해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유물론자이며 쾌락주의자였던 아지타 케샤 캄바린Ajita Ksa Kambalin과 노예의 아들이었던 푸라나 카샤파Prana Kyapa의 4요소설(지地, 수水, 화火, 풍風)이 있다. 그리고 파쿠다 카챠아야나Pakuda Kaccyana의 7요소설(4요소+고苦, 락樂, 생명生命(영혼))이 있다. 또한 ‘생활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수행하는 자들’이란 사명외도邪命外道의 마칼리 고살라Makkhali Gosla의 12요소설(7요소+득得, 실失, 생生, 사死, 허공虛空)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영혼을 인정하므로 언뜻 보면 이원론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이들은 영혼을 물체와 같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유물론적이다. 그들의 말하는 영혼이라는 관념은 고대 인도의 원주민 사이에서 막연히 생각되고 있던 물활론적 관념에 근거하고 있지만, 영혼을 원자와 같은 것으로 본 점에서는 이들보다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물질주의는 신체가 생명과 의식의 토대이고, 의식은 신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영혼이 신체와 별개의 것으로 존재할 수 없으므로 신체와 더불어 인간이 완전히 소멸한다고 생각한다. 아지타에 따르면 인간이 죽으면 인간을 구성하고 있던 ‘지’地는 외계의 지의 집합으로 돌아가고, ‘수’水는 수의 집합으로, ‘화’火는 화의 집합으로, ‘풍’風은 풍의 집합으로 돌아가서, 모든 기관의 능력은 허공으로 돌아간다. 인간은 죽음과 더불어 모두 사라진다. 몸 이외에 죽은 뒤에도 독립하여 존재하는 영혼이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내세에 행위의 결과를 누린다는 부질없는 희망 속에서 현세의 삶을 즐기는 기회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존재는 몸이 존재하는 만큼 현세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현세에서 몸의 쾌락을 얻는 것이 인생의 최대 목표라는 것이다.
또 물질주의는 해탈이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이상이므로, 다만 쾌락을 최대화하고 고통을 극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만약 모든 쾌락이 고통과 섞여진다고 하여 자연적 욕구를 억제하는 것은, 마치 가시 때문에 생선을 먹지 않거나, 거지가 구걸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음식을 만들지 않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자의 소행이 된다. 그러므로 물질주의는 신체와 영혼의 동일성을 주장함으로써 현세적 찰나주의, 쾌락주의의 길을 가게 된다.
정신과 육체가 인간을 구성하는 두 가지 실체라고 생각하는 이원론의 입장은, 자이나교가 모든 존재를 영적인 것(jiva, 명命)과 비영적인 것(ajiva, 비명非命)이 결합하여 있다고 보는 것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자이나 교의에 따르면 영혼은 과거의 업으로 인해 육체에 의해 덮여지고 오염됨으로써 고통을 받게 된다. 따라서 영원한 안온함이라는 지극히 행복한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새로운 업이 유입하지 않도록 차단하고, 이미 들어와 있는 업을 소멸해야 한다. 이것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방법은 도덕적 행위와 고행을 통해서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는 일이다. 그럼으로써 영혼은 육체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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