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3, 범주오류)

이효범 2021. 9. 8. 06:30

2.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3, 문장, 강조, 취지, 범주, 비유의 오류)

 

구녕 이효범

 

2-2. 문장의 애매성(ambiguity of amphibology)이다. 애매한 문장이란 문법적인 구조상 둘 이상의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 문장이다. 예를 들어 나는 당신의 소설을 읽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장은, (1) ‘나는 당신의 소설을 읽지 않음으로써 귀중한 시간을 절약하겠습니다.' (2) ‘나는 당신의 소설을 당장 읽겠습니다.'라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애매한 문장이 된다.

 

2-3. 강조(ambiguity of accent)의 애매성이다. 이것은 단어나 문장이 어떻게 강조되고 있는 지가 불분명할 때 생긴다. 예를 들어 그녀에게는 너무 좋아하는 것이 없다라는 문장은 어느 부분에 엑센트를 넣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모세의 율법에 너희는 이웃에게 거짓증거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이웃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거짓증거해도 좋다고 생각하면 이웃에게를 강조한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이것을 강조의 오류(fallacy of accent)라고도 한다.

 

어빙 코피가 지은 논리학 입문에는 강조의 오류와 관련하여 재미난 일화가 소개되고 있다. “어떤 배가 항해를 시작하는 초장부터 그 배의 선장과 그의 동료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 이 불화는 그 동료의 주벽 때문에 더욱 악화되었는데 선장은 열렬한 금주 운동가였었던 데다가 동료가 술 취해 있는 것을 보면 일장 연설을 늘어놓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였던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장광설은 그의 동료를 더욱 술독에 빠지게 만들 뿐이었다. 어느 날, 계속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더 취해있는 동료를 본 선장은 이 사실을 항해일지에 기록했다. ‘모씨는 오늘 하루 종일 취해 있었음.’ 그 후 그 동료는 자기가 일지를 기록할 차례가 되어 자기의 과실이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매우 두려웠다. 그 일지는 선주에게 보고될 것이고 선주는 그런 사실을 알면 그를 해고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던 것이다. 해고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감봉 감이었다. 그는 선장에게 그 사실을 지워달라고 간청하였으나 선장은 그 청을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른 염려와 궁리 끝에 선장에게 복수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항해일지에 일상 사항을 다 적고 난 후에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넣었다. ‘오늘 선장은 술을 마시지 않았음.’”(pp. 141~142.)

 

2-4. 취지(의의)의 애매성(ambiguity of significance)이다. 이것은 말한 것이 암시하는 내용에 있어서의 애매성이다. 이 애매성은 그 자체로는 참인 진술이 듣는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때 발생한다. 막대한 재산을 가진 리디아(Lydia)의 왕 크로이소스(Croesus)는 페르시아와 전쟁할 생각이 있어 델포이(델피) 신전에 신탁을 청했다. 그는 코로이소스가 만일 싸운다면 왕국을 멸할 것이다.”라는 예언을 얻었다. 그런데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래서 그는 신탁이 틀렸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델포이 신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예언대로 왕국을 멸한 것이다.” 이 예언은 멸망될 왕국이 리디아왕국인지 페르시아 왕국인지 그 취지가 분명하지 않는데, 크로이소스는 아전인수 격으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한 것이다. 사주풀이나 토정비결 같은 예언서에서 이런 일들이 왕왕 발생한다.

 

2-5. 범주의 오류(category mistake)이다. 이것은 영국의 현대 철학자 길버트 라일(Gilbert Ryle)이 말한 오류로서, 다른 범주에 속하는 말들을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사용하는 데에서 빚어지는 오류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옥스퍼드대학교를 방문해서 도서관, 강의실, 사무실, 운동장 등을 두루 돌아본 다음에 그런데 옥스퍼드대학교는 어디 있지요?’라고 묻는다면, 이 사람은 대학교를 도서관이나 강의실과 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범주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라일은 두 가지 용어가 동일한 범주에 속할 경우, 양자를 연결하는 제3의 명제를 구성하는 것은 온당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한 구매자가 왼손 장갑과 오른손 장갑을 샀다고 말한다면 이는 논리적으로 잘못이 없다. 그러나 왼손 장갑과 오른손 장갑 그리고 한 켤레의 장갑을 샀다고 한다면 이는 논리적으로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논리를 초월하는 시에서는 오히려 범주를 벗어날 때 묘미를 줄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내게는 친구가 셋 있다. 철수와 영이와 순자라고 하면 너무나 밋밋하다. 그런데 비록 논리적으로는 범주적 오류를 범하지만 내게는 친구가 셋 있다. 철수와 영이와 하늘그러면 시가 재미있어지고 갑자기 긴장미를 갖게 된다.

 

2-6. 비유의 오류(fallacy of figure of speech)이다. 이것은 비유나 은유를 단어의 일상적 의미와 혼동하는 데서 오는 오류이다. 비유나 은유는 수사적 표현이다. 이것을 사실적 의미로 보면 오류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노자는 도덕경에서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비유하였다. 이것은 최상의 선은 물이 가진 특성 즉 언제나 낮은 곳으로 처하려는 겸손, 막히면 돌아가는 지혜, 무엇이든지 다 받아주는 포용력, 어느 그릇에도 맞추어주는 융통성, 바위도 뚫는 끈기와 인내, 폭포처럼 떨어지는 용기, 작은 물줄기가 큰 강을 이루고 마침내 바다에 이르는 대의(大義)를 아우른다는 뜻이지, 우리가 먹는 물의 일상적 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비유적 의미를 망각하고 물의 물질적 특성에 한정시키면 오류에 빠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