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1. 오류란 무엇인가)
안녕하셨습니까? 잘 지내고 계시죠. 이제 가을이 시작되었습니다. 밤에는 창문을 닫고 제법 두꺼운 이불을 덮어야 잠을 들 수 있습니다. 하늘이 높아지고 날씨가 청명하여 산보를 나가면 넓은 들판에 노랗게 벼가 익는 모습이 황홀하기까지 합니다. 한낮에 내려쬐는 따가운 햇살은 과일을 익게 하고, 얼마 후면 이런 풍성한 수확들이 한가위 상 위에 가득 올려 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조상과 천지신명께 감사드리며, 가족과 함께 살아있는 기쁨을 만끽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물질의 세상도 변화무쌍하고 다채롭지만 이런 세상을 인식하는 의식(정신)의 세계나 물질이나 의식을 묘사하는 언어의 세계도 복잡하고 그 나름의 질서가 있습니다. 이런 질서를 이해하고 그런 질서를 잘 지키는 것이, 정신을 똑바로 하고,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합니다. 우리가 보거나 만질 수는 없지만, 이런 의식이나 언어의 세계를 지탱하는 질서를 어기게 되면 우리는 오류(잘못)에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이나 전문적인 영역에서 잘못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앞으로 다양한 논리학자들이 찾아낸 오류들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오류란 무엇인가
구녕 이효범
일상적으로 오류는 상궤를 벗어난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두루 쓰이고 있다. 그래서 어떤 진술이 참이 아니고 거짓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오류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 어떤 행위가 올바르지 못하고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도 오류라는 말을 쓴다. 이러한 일상적 의미에서의 오류는 진리론과 윤리학에서 다루어질 성질의 것으로, 논리학에서 다루어질 것은 아니다.
논리학에서의 오류는 주로 추리에 적용된다. (추리나 추론 혹은 논증이나 논변은 이미 알려진 지식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지식을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보통 이미 알려진 지식을 전제(前提, premiss)라고 부르고 도출된 새로운 지식을 결론(結論, conclusion)이라고 부른다. 추리를 영어로는 ‘inference’ 또는 ‘reasoning’이라고 한다. 그러나 inference와 reasoning에는 그 의미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전자가 심리적 사고의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전제로부터 결론을 추적하는 논리적 사고로 한정하는 경향이 있다. 추리를 언어적으로 표현한 ‘논증(argument, 논변)'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추론 상에서 한 사람이 이기고 또 다른 사람이 지는 논쟁(dispute, debate) 또는 싸움(contest)을 의미한다. 논증할 때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르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의 논증은 자주 ‘토론(discussion)'과 대조되는데, 토론에서 당사자들의 생각은 승리나 패배에 대한 어떠한 기대도 없이 단지 서로 교환된다. 전통적으로 추리는 연역추리와 귀납추리로 나누어진다,)
오류 추리는 거짓된 주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추리는 항상 두 개 이상의 주장들 간의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반면, 어떤 주장의 거짓됨은(진리론 중에서 진리대응설에 따르면) 그 주장과 그 주장이 지칭하는 사태가 적절하게 대응되지 않아 생기기 때문이다.
오류 추리는 원칙적으로 부당한 논증이다. 일상적으로 부당한 논증은 수많은 이유로 해서 다양한 형태로 발생한다. 이런 헤아릴 수 없는 부당한 논증들을 논리학에서 모두 열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논리학에서는 부당한 논증이지만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범하는 일정한 유형을 오류라는 딱지를 붙혀 특히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어떤 논증이 부당하면서도 우리의 일상 속에서 늘 접할 수 있는 유형으로 굳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그런 유형의 논증은 겉보기에 그럴듯할 뿐만 아니라 일종의 호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유형의 논증은 부당한 논증이면서도 그 부당성을 교묘하게 위장하고 있다. 그리고 위장용으로 사용된 가면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오류라는 함정에 빠지도록 유도할 만한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오류의 이와 같은 성질들 때문에, 우리는 흔히 부지불식간에 원하지 않는 오류에 빠진다. 이런 오류에 대비하는 방법은 없을까? 기계적인 방법은 없다. 그러나 일찍이 쇼펜하우어가 술회한 바와 같이, “만일 속임수마다 어떤 짧고 적당한 이름을 붙여서, 사람들이 속임수를 사용할 때 즉시 꾸짖어 줄 수 있다면 대단히 좋을 것이다.” 즉 오류의 유형별로 딱지를 붙여 익혀 두면 오류의 식별에 큰 도움이 되어 잘못된 논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형식논리학(formal logic)을 정리한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류의 종류를 언어적인 것과 비언어적인 것으로 양분하였다. 그러나 많은 오류가 새로이 등장함에 따라, 아리스토텔레스의 양분법으로는 이 모든 오류들을 다루기에는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그 후 오류를 분류하는 여러 노력들이 있었다. 그러나 많은 논리학자들을 만족시킬 만한 충분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드모르간(De Morgan) 같은 논리학자는 오류를 정확하게 분류하려는 노력 자체에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오류를 효율적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이러한 분류가 흡족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오류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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