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에 관한 좋은 문장들

상사승무노인곡

이효범 2021. 8. 18. 08:53

조선 제9대 성종은 인정이 많고 마음씨가 착하여 나라를 잘 다스려 나갔다. 성종은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항상 궁금히 여겼다. 가난에 시달리는 불쌍한 백성은 없는지, 백성들이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어느 날 성종은 내가 좋은 정치를 했는지, 아니면 그릇된 정치를 했는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 대궐에만 있어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으니 시골에 한 번 가 봐야지!’라고 생각하고 신하를 불렀다.

얼마 동안 시골에 내려갔다 올 터인즉 내가 성문 밖에 나간 사실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아라.” 성종은 신하에게 이른 후 가장 아끼는 신하 한 명을 데리고 성문을 나섰다. 성종은 보통 선비처럼 수수하게 차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이 사람이 임금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느 날, 성종은 시골의 주막집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성종은 그 노인과 우연히 술을 주고받게 되었다. 성종은 궁금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이것저것을 물어 보았다.

무슨 일을 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노인은 대답했다.

산 아래서 벌을 치고 있습죠.”

벌은 몇 마리나 치고 계십니까?”

한 십만 마리 정도는 될 겁니다.”

임금님과 노인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한가로운 시골에 살면서 십만 마리나 되는 벌들의 왕이 되는 것도 괜찮은 일일 거야. 어쩌면 그 노인이 나보다 더 행복할지도 모르지.’

성종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웃 마을로 들어섰다. 밤이 되어 묵을 곳을 정해 놓자, 성종은 신하를 남겨두고 혼자 산책을 나섰다. 달빛은 환하고 마을은 아주 고요했다. 성종이 생각에 잠겨 걷고 있노라니 어디선가 가느다란 노랫소리가 들려 왔다. 성종은 무심코 노랫소리를 따라 걷다가 조그마한 오두막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 몸을 숨기고 가느다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틈으로 집 안을 엿보았다. 그러자 그 안에 깔끔하게 차려 놓은 상이 보이는데 그 옆에 어떤 노인이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뒤에서는 젊은 남자가 만수가(萬壽歌)를 부르고 있고, 그 노래에 맞추어 비구니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성종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직접 물어 봐야 할지 어떨지를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마침내 그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 있던 세 사람은 낯선 사람이 들어오자, 깜짝 놀랐다. 그러자 성종은 정중하게 말했다.

이 앞을 지나가다 보니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 같아 들어와 보았습니다. 무례함을 용서해 주십시오. 무슨 일이 있으신지 한번 듣고 싶으니 얘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노인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길 가던 분께서 이상히 여겨 물으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별로 대수로운 일은 아니지만 내 얘기하겠습니다.”하고 말문을 열었다. 그 노인의 말로는, 노래하던 젊은 남자는 아들이고 춤을 추고 있던 비구니는 며느리였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병을 앓다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 남은 세 식구는 아주 어렵고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젊은 부부는 둘 다 마음씨가 곱고 효심이 지극하여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더욱더 아버지를 잘 모셔 왔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이 바로 아버지의 회갑 날이었다. 이 부부는 아버지께 고기 한 근 사 드릴 능력도 없던 터라, 며칠 전부터 몹시 걱정을 하였다. 부잣집이라면 그 즐거운 날 소라도 한 마리 잡고, 큰 잔치를 벌일 것이지만 가난한 살림에 도저히 어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생각다 못한 며느리가 자기의 긴 머리를 잘라 팔아서 시아버지를 위해 정성스럽게 음식을 준비해 놓았다. 하지만 그 적은 음식을 가지고는 이웃을 부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평생 한 번밖에 없는 회갑날 아버지를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 그의 아들은 노래를 하고 며느리는 머리 위에 수건을 쓴 채 춤을 추었던 것이다. 이것을 안 아버지는 며느리의 효성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느라고 음식이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아들은 그 즐거운 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기 위해 더욱더 신나는 노래를 불러 드리고 며느리도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또다시 소리 내어 울면서 말했다.

이토록 듣기 쑥스러운 말을 늘어놓아서 죄송합니다. 못 들은 것으로 생각하시고 잊어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난 성종은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토록 착하고 효성이 지극한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성종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아들을 향해 물었다.

댁은 어떤 글을 배우셨소?”

그러자 아들은 계속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저는 사서삼경까지는 다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과거를 본 적이 있소?”

아닙니다.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합니다만 뜻대로 되지가 않았습니다. 서울까지 가려면 많은 노자가 있어야 하고 힘들여 두 세 번 시험을 치른다 하더라도 저같이 천한 몸으로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 말을 들은 성종은 젊은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비록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처지이긴 하지만 얼굴에 티 없이 착한 마음씨가 엿보이는 잘생긴 용모였다. 성종은 급박한 상황이 생기면 쓰려고 지니고 다녔던 돈에 생각이 미쳤다.

올 가을에 한양에서 과거가 있다고 하니 꼭 한 번 시험을 쳐 보도록 하세요.”

이렇게 말하며 성종은 주머니에서 은전과 금전을 꺼내 주었다. 젊은이는 방바닥에 놓은 돈을 보자 어리둥절했다. 성종은 흡족한 듯이 빙그레 웃으며 젊은이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이것을 노자 삼아 꼭 과거를 보러 오시오.”

이러시면 안 되십니다.”

성종은 젊은이가 한사코 사양하며 밀어 내는 것을 억지로 받아 두게 하고는 그 집을 나왔다. 가을이 되자, 성종은 과거를 치르도록 명령을 내렸다. 아직 과거를 치를 때가 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과거를 치르라는 성종의 명에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했다. 그러나 더욱더 이상한 것은 그 시험 문제였다. 그 문제는 상가승무노인곡(喪歌僧舞老人哭)’이라는 것이었다. ‘상주는 노래하고, 여승은 춤을 추고, 노인은 운다.’ 시험을 보러 온 수많은 젊은이들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도 이 이상한 글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 효성스런 한 젊은이만이 그 글로써 명문장을 만들어 낼 수가 있었다.

인가의 가장 흥겨운 경사는 회갑연이라/ 집은 가난하나 아들며느리 어질었네/ 쪽머리 팔아 잔칫상 앞에 노래하고 춤추니/ 그 효성 천년토록 본받을 만하구나.(吉慶人家最壽筵 家貧猶有兒娘賢 髮供旨歌兼舞 誠孝千秋堪可傳)’

원래 글공부를 많이 한데다가 자신이 직접 겪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젊은이는 아버지 회갑날 자기 집에 들어와 과거를 보라고 했던 분이 바로 성종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몹시 놀랐다. 과거에 합격한 젊은이(이효달; 李孝達이라고 전함)는 성종의 그 인정어린 마음에 눈물을 흘리면서 감사의 글을 올렸다. 성종은 젊은이에게 높은 벼슬자리를 주었다. 그리하여 젊은이는 늙은 아버지께 못다 한 효도를 다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가난한 두 부부의 착한 마음씨가 성종의 은총으로 행복한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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