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환경에 대하여, 12. 캐롤린 머천드)
캐롤린 머천드(Carolyn Merchant)는 진보적 생태여성주의자(ecofeminist)이다. 그의 저서로는 『래디컬 에콜로지』가 있다. ‘생태여성주의(생태여성론)’란 말은 프랑소와즈 드본느(Francoise d'Eaubonne)가 1974년에 처음 사용한 말이다. 그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한 생태혁명을 여성들이 이끌 것을 주장하였다. 1980년에는 “지구상의 여성과 생명: 80년대의 생태여성론”이라는 컨퍼런스가 개최되었다. 그 후 반생명적 핵전쟁과 개발에 항의하는 여성들의 펜타곤 앞에서의 시위가 있은 뒤에 하나의 운동이 되었다. 1980년대에 미국의 생태여성주의자들은 여성과 자연이 함께 해방될 수 있음을 역설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었다. 이들은 생태문제 해결에 다양한 페미니즘 철학을 이용하였다. 그리고 여성의 억압과 자연의 억압 사이에 존재하는 밀접한 연관을 규명하였다. 와렌(Karren Warren)은 지배의 논리는 두 집단(예)남성과 여성)을 몇 가지 특징(남성은 합리적이고 여성은 감정적)과 이러한 특징에 대해 부여하는 가치 위계(이성은 감정보다 우월하다)에 의해 구분한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우월한 특징을 갖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에 의해, 어느 한 집단의 종속을 정당화하는 사고 유형(남성은 여성 보다 더 이성적이고 덜 감정적이기 때문에, 여성을 지배할 위치에 있어야 한다)을 정당화해왔다고 고발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런 부당한 사고 유형을 거부한다.
그런데 머천드에 의하면 여성주의도 더 세분될 수 있다. 자유주의 여성론, 사회주의적(마르크스주의) 여성론, 문화적 여성론, 사회적 여성론이 그것이다. 이들이 주요한 이슈에 있어서 주장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자연에 대하여, 자유주의 여성론은 자연은 원자로 되어 있으며,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을 받아들이고, 인간의 자연의 지배를 인정한다. 사회주의적 여성론은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을 위한 자연의 변형, 인간자유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자연지배, 자연은 생명의 물질적(의식주, 에너지) 기초임을 주장한다. 문화적 여성론은 자연은 영적이며 인격적인데, 서구의 근대적 과학기술은 지배에 강조점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사회적 여성론은 자연은 생명의 물질적 기초이고, 자연은 사회적이고 역사적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생산과 재생산에 의한 자연의 변형을 주장한다.
인간본성에 대해서도, 자유주의 여성론은 인간은 이성적 행위자로 보고, 개인주의와 이기심의 극대화를 인정한다. 사회주의적 여성론은 생산양식과 실천을 통한 인간본성의 창조를 주장하고, 역사적으로 특수하고, 고정되어 있지 않는, 인간의 유적(類的) 본성을 말한다. 문화적 여성론은 인간본성 이해에 생물학이 기본이라고 본다. 인간은 성적 생식기구이며, 생물학에 의해 성(sex)이 나누어지고, 사회에 의해 성별역할gender)이 나누어진다. 사회적 여성론은 생물학과 실천(성, 인종, 계급, 나이)으로 창출된 인간본성은 역사적으로 특수하며,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환경주의에 대한 비판도 차이가 있다. 자유주의 여성론은 남성과 그 환경이 여성을 내버려두었다고 비판한다. 사회주의적 여성론은 자원에 대한 자본주의적 통제 그리고 재화와 이윤 축적에 대하여 비판한다. 문화적 여성론은 자연과 여성에 대한 남성 지배가 연관되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남성의 환경주의에는 여전히 위계가 존재하고, 여성의 생식에 대한 환경적 위협(화학물질, 핵전쟁)에 충분한 관심을 쏟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사회적 여성론은 자연을 수동적이고 반응적으로 보는 것과 여성의 역할을 재생산에 두며, 재생산을 범주화하는 것을 비판한다. 그리고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적 접근법이 변증법적이 아니라 기계론적임을 지적한다.
여성론적 환경주의에 대한 이미지도 다르다. 자유주의 여성론은 자연자원 및 환경과학에서의 여성의 역할이 부각된다. 사회주의적 여성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인 사회주의 사회는 모든 남성과 여성들의 선을 위해 자원이 이용될 것이고, 자원은 노동자들에 의해 통제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노동의 잉여가 없기 때문에 환경오염이 극소화될 것이며, 남성과 여성 모두에 의한 환경 연구가 진행된다고 미화한다. 문화적 여성론은 여성과 자연 모두의 가치가 인정되고 축복된다. 생식의 자유가 존중되고, 여성과 자연에 대한 포르노적 묘사를 반대한다. 사회적 여성론은 자연과 인간의 생산이 모두 능동적임을 주장한다. 생물학적, 사회적 재생산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그리고 생산과 재생산 사이의 변증법, 다층적인 구조적 분석, 기계론적이 아닌 변증법적 시스템이 중시된다.
이런 네 가지 여성론은 환경 문제에 있어서도 조금씩 다른 입장을 견지한다. 우리는 그것을 다시 자유주의 생태여성론, 사회주의 생태여성론, 문화적 생태여성론, 사회적 생태여성론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 여성론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주의 생태여성론은, 사람은 합리적인 행위자로서, 여성이 남성과 다르지 않으며, 교육 및 경제적 기회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에 여성들의 삶 전체 영역에서 자신들의 창조적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시몬느 드 보봐르의 『제2의 성』,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에 의해 고무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의 삶의 충족을 가져올 수 있는 수단인 작업장과 교육기회의 평등성을 요구한다. 환경문제는 자연자원의 급속한 개발, 농약을 비롯한 환경 오염물질을 규제하는데 실패한 결과이다. 사회적 재생산이 환경적으로 건전해진다면, 사회질서가 정부와 법률을 통하여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방식이 완화될 것이라고 믿는다. .
사회주의적 여성론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주의 생태여성론은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세상의 건설에 있어서 생산보다는 재생산 범주를 중심개념으로 삼는다. 그리고 생산과 재생산, 생산과 생태의 변증법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자본주의의 위계구조를 비판한다. 자본주의 발전이론 속에서는 재생산과 생태가 모두 생산에 종속되어 있는데, 사회주의 생태여성론으로 이행하게 되면 생산은 재생산과 생태에 종속하게 된다.
문화적 여성론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적 생태여성론’이라는 말은 프럼우드(Val Plumwood)가 처음 사용하였다. 문화적 생태 여성론은 여성과 자연이 함께 서구 문화 속에서 가치 절하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 점이 세리 오트너(Sherry Ortner)의 논문 <여성은 자연이고 남성은 문화인가(Is Female to Male as Nature is to Culture)>에 잘 분석되고 있다. 오트너에 의하면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은 생리적, 사회적 역할, 심리 때문에 자연과 더 가까운 존재이다. 생리학적으로 남성들은 여행, 사냥, 전쟁수행,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데 있어 더 자유로운 반면, 여성들은 생명을 탄생시키며, 월경, 임신, 출산, 양육과 관련된 즐거움과 고통을 겪는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아이 양육과 집안일은 결혼한 여성을 부엌에 묶어두고 작업장에서 멀어지게 한다. 지금까지 이런 환경 때문에 여성들이 갖는 특수하고 인격적이며 즉흥적인 속성들이 오명의 발단이 되었다. 출산 때문에 여성의 시각은 자연과 유사하다. 그러한 과정에서 여성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체계적으로 억압당한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여성, 자연, 신성(spirituality)은 하나이다. 여신숭배, 달, 동물, 여성의 생식계를 중시하는 고대 의례의 부활을 통해 여성과 자연과의 관계가 찬양되어야 한다. 여신이 자연 안에 영원히 존재하고 자연 세계 속에서 신성함을 드러낸다, 지구는 신성한 존재로 경배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구를 사랑하거나 돌보는 것은 생태적 책임일 뿐만 아니라 영성적인 것이다. 이제 여성, 자연, 육체, 감정 등 가부장적 문화가 폄하해 왔던 것들을 재평가하고, 찬미하고, 옹호하는 것에 기반을 둔 대안적인 여성 문화를 창출함으로써 생태와 여러 환경문제를 치유할 필요가 있다.
문화적 생태여성론자들은 직관, 보살핌의 윤리, 인간과 자연과 거미줄같이 엮인 긴밀한 관계를 포옹한다. 또한 세계를 경험하고, 이해하고, 가치 평가하는 여성 특유의 신뢰할만한 방식이 있다는 관점을 취한다. 그러면서 가부장제를 비판하면서 여성과 자연 모두를 해방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즉 이들은 여성이 갖는 돌봄과 관계성을 중시하는 특성에 기반하여 생태윤리를 모색한다. 지금까지는 남성이 고안하고 생산한 기술인 방사능, 농약, 유해폐기물, 가정의 화학물질이 여성의 생식기관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했다. 방사성 폐기물의 방사능, 발전소, 폭탄이 기형아와 암 발생, 지구상의 생명을 말살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학교와 가정 근처의 유해 폐기물 부지에서 나오는 폐기물이 토양과 음용수에 침투하여 유산, 기형아, 결핵을 발생시켰다. 작물과 숲에 뿌려지는 농약과 제초제가 근처에 사는 어린이와 임산부에 잠재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농약살포와 발전소의 입지에 반대하는 지역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단결하여 독성물질 정화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이런 역할은 환경문제를 야기한 남성보다는 아이들을 낳고 보살핀(돌본) 여성들이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들은 환경 문제에 돌봄의 윤리를 적용한다. 인간의 도덕성 발달 이론에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 학자가 콜버그(Lawrence Kohlberg)이다. 그는 도덕성의 발달이 인습이전의 단계에서 인습의 단계 그리고 인습이후의 단계로 발전한다고 크게는 3단계, 적게는 6단계를 제시한다. 그러나 그의 여성 제자인 길리건(Carol Gilligan)은 그의 스승의 이론이 여성들의 다른 목소리(different voice)를 놓쳤다고 보완한다. 남성과 여성은 전형적으로 기본적인 삶의 정향에서 서로 다르며, 다른 통로를 따라 도덕성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즉 남성은 도덕성이 정의와 옮음 지향(justice · right orientation,)이지만, 여성은 돌봄과 책임 지향(care · response orientation)이다. 그래서 여성은 개인적 생존지향-(이기주의에서 책임감으로) - 자기희생적 선(善) 지향 -(착함에서 진실로) - 비폭력의 도덕성 지향으로 도덕성이 발달한다. 여성은 남성이 중시하는 개인의 자율, 간섭으로부터의 자유 같은 추상적 원리 대신에, 모정과 우정이 도덕적 이념으로 기능하는 그런 도덕적 세계를 더 중시한다. 여성의 강점인 이런 돌봄의 윤리학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어머니와 자식 간의 관계로 본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이 자연의 이익에 대한 최적의 대변자인 셈이다.
사회적 여성론에 기반하는 사회적 생태여성론은 북친의 사회 생태론을 바탕으로 한다. 이 입장은 결혼, 핵가족, 낭만적인 사랑, 자본주의 국가, 가부장적 종교가 여성들에게 가하는 억압을 재구성하려고 시도한, 초창기 급진적 여성론적 분석으로 시작하였다. 이제 이들은 삶의 모든 측면들을 시장 사회로 바꾸어 버리면서 심지어 여성의 자궁에까지 침입하는 경제적, 사회적 위계의 전복을 통한 여성해방을 옹호한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적 생산과 관료제적 국가에 필수적인 공공과 민간이라는 이분법을 초월하는 분권화되고 인간적인 공동체 사회를 구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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