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서평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고

이효범 2021. 1. 21. 08:12

o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고

 

구녕 이효범

 

이 시대에 1249(1330) 쪽의 책을 읽는 것은 미친 짓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방대한 책에 대해 독후감이 가능한 일일까? 더군다나 저자는 우리가 그의 책을 읽는 것은 한가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19 시대이다. 나는 그렇게 좋아하는 해외여행도 못가고 어쩔 수 없이 집에 머물러 있지 않는가. 또한 금상첨화로 나는 퇴직하지 않았는가. 이렇게 시간이 통째로 주어졌는데도 그리고 얼마 전에는 고등학교 때 우리 반 반장 김대식 친구로부터 격려도 받았는데, 못 읽을 일이 무어란 말인가.

수상록(Les Essais)의 저자 몽테뉴(Michel de Montaigne)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프랑스 철학자이다. 그러나 그가 16세기 프랑스 문학에서는 산봉우리처럼 우뚝 솟았는지 몰라도, 한 권으로 된 서양철학사에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인물이다. 서양철학사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고대철학 그리고 교부철학, 스콜라철학의 중세철학, 그리고 근대철학으로 이어진다. 근대철학은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으로 양분된다. 합리론은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로 이어지고, 경험론은 록크, 버클리, 흄으로 이어진다. 근대철학의 아버지는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를 말한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다. 르네 데카르트는 1596년 투렌 지방에서 출생해서 1650년에 죽었다.

몽테뉴는 데카르트보다 앞선 1533년 남프랑스 페리고르 지방에서 태어나 1592년에 죽었다. 그의 철학에는 중세의 도그마를 무너뜨리고 이성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지식체계를 세우려고 하는, 그 시대의 진정한 철학적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을 궁극적이고 종합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전형적인 철학자 풍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는 일생 동안 자기 자신을 끈질기게 성찰하고 그것을 에세이로 방대하게 서술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의 철학은 대학 강단에서보다는 현실적인 삶의 현장에서 더욱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도 대학의 철학 수업에서는 학문적으로 그를 다룰 기회가 없었다.

그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은 퇴임한 후 공직에서 물러나면서부터이다. 나는 퇴임 전에 퇴임 기념 책으로 죽음의 문제를 다룰 생각이었다. 그런데 게으름 탓으로 연구가 늦어져, 퇴임이 한참 지난 후에서 이 일을 마칠 수 있었다. 그 때 몽테뉴가 죽음에 대해 긴 에세이를 썼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죽음의 문제는 지금까지 서양철학의 중심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 철학사의 거대한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몽테뉴가 이런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것이 고마웠다. 사실 자기 인생을 진지하게 성찰하려는 사람이 죽음의 문제를 비켜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수상록은 죽음의 문제만 다룬 책이 아니다. 수상록1권에는 57개의 주제, 2권에는 37개의 주제, 3권에는 13개의 주제, 그래서 총 107개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가장 짧은 17번째 에세이 한 사람에게만 이로운 것은 다른 사람에게 해롭다1쪽도 안 되는 분량인 반면, 212번째 에세이 레이몽 스몽의 변호는 무려 200쪽 분량이나 된다, 죽음이 주제인 120번째 에세이 철학에 마음을 쏟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18쪽 분량이고, 23번째 에세이 케아 섬의 풍습에 대하여15, 13번째 에세이 타인의 죽음 판단하기7쪽 분량이다. 107개의 에세이다보니 다루는 주제도 각양각색이다. 심지어 식인종에 대하여파르티 인의 무기에 대하여도 있고, ‘엄지손가락이나 기형아라는 주제도 다루고 있다. 백과사전처럼 이런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몽테뉴는 한 가지 주제를 바닥까지 철저하게 천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도 이런 점을 말하고 있다. “나는 사물들에 관해서 완전히 이해하고 싶다. 그러나 너무 값비싼 노력을 들여가면서까지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내 계획은 내게 남은 인생을 순탄하게, 그리고 힘들이지 않고 넘기는 것이다. 학문을 위해서라도, 그 가치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 때문에 머리를 썩여야 할 것은 없다.”(몽테뉴 수상록(손우성역, 동서문화사, 2007, p.432. 앞으로 이 책을 인용함) 그러므로 이 책은 일정한 시간에 무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야 할 책은 아니다. 공자의 논어처럼 책상 가까이에 두고 자기 인생의 어떤 문제에 부닥쳤을 때, 500년 전 몽테뉴라는 賢人은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했을까를 참고하면 좋을 책이다. 그래서 여기서 나는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문제만 제기해볼 것이다.

 

(1) “나는 무엇을 아는가?(Que Sais Je?)” 몽테뉴는 이 말을 1576년 한 메달에 접시저울과 함께 새겨 놓았다. 말하자면 이것은 그의 좌우명인 셈이다. 사물에 대한 지식이나 도덕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 몽테뉴는 한 마디로 회의론자이다. 懷疑論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우선 고르기아스(Gorgias)같은 절대적 회의론이 있다. 그는 세 가지 논제를 통해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인식능력에 대해 회의를 나타낸다. 존재란 있을 수 없다. 설령 존재가 있어도 그것을 지각할 수 없다. 설령 존재를 지각할 수 있어도 그것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없다.’가 그것이다. 이에 비해 데카르트가 행한 것은 方法論的 회의이다. 그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진리를 찾기 위해 방법론적으로 회의를 하였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의심하여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모두 버려서, 더 이상 의심할래야 의심할 수 없는 명석판명(clear and distinct)한 판단인 진리에 도달하였다. 이와 달리 피론(Pyrrhon)과 섹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 같은 회의론도 있다. 고대 그리스 회의학파들인 그들은 모든 인식을 단념하고 판단을 유보하는 것(epoche)에서 행복의 조건인 마음의 안정(ataraxia)를 얻으려고 하였다. 인식을 단념함으로써 불안의 원천인 오류로부터 벗어나면 마음의 안정이 얻어진다는 것이다.

몽테뉴의 회의론은 그리스 회의학파의 새로운 형태이다. 그는 진리(지식)라고 하면 하나의 똑같은 보편적인 모습을 가져야 한다.”(p.635) 주장한다. 그러나 지식의 한 예들인 도덕이나 법률은 시대마다 또 국가마다 달라진다. “무슨 이 어제는 신용을 얻더니 내일은 신용을 잃고, 냇물 한 줄기만 건너면 범죄가 된단 말인가?”(p.636) 진리에 대한 절대론자가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이고 영구적인 自然法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몽테뉴는 이것을 비웃는다. “그들이 자연법이라고 부르는 견고하고 영구적이고 부동불변의 법률이 있어서, 그것은 본질적 조건으로 온 인류에게 판박혀져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보면 참 가관이다.”(p.636) 왜 가관인가? 몽테뉴는 2가지 이유를 댄다. 하나는 사람들이 막상 자연법의 내용에 있어서 서로 불일치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떤 법을 자연법이라는 이름으로 추론할 수 있는 유일한 표징은 보편적 승인뿐이다. 왜냐하면 자연이 진실로 우리에게 명령한 것은 공통의 동의를 가지고 추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 국민뿐 아니라 모든 개인은 이 법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밀어내려고 하는 자로부터는 강제로 폭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은 내게 이런 조건의 하나라도 좀 보여 줬어야 한다.”(p.636) 나는 이런 몽테뉴의 강변에는 억지가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무고한 사람을 죽여도 좋다.’라는 법이 어디 인간 세상에 가능하겠는가? 무고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법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법이지 않을까? 그러나 몽테뉴는 결국 인간은 지식(진리)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결론한다. “나는 결국 인간이 찾고 있는 것을 발견할 힘이 그의 역량에 있는 것인가, 또는 그렇게 오랜 세기를 두고 찾아본 결과가 어떤 새로운 힘과 견고한 진리로 인간을 부유하게 만들어주었는가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양심적으로 말하는 것이라면, 그가 그 오랜 추구에서 끌어 낸 모든 소득이라는 것은 그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pp.537~538)

몽테뉴가 결론한 회의론은 결국 不可知論과 연결된다. 나는 솔직히 신이 존재하는지’, ‘우주가 무한한지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몽테뉴처럼 회의론자이고 불가지론자이다. 몽테뉴 뒤에 오는 칸트는 이런 문제는 인간 이성이 인식할 수 있는 한계를 넘기 때문에, 어떻게 말해도 이율배반에 빠진다고 주장한다. 부처는 이런 질문에 아예 독화살의 비유을 들어 회피한다. 19세기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우리가 아는 진짜 지식은 수학과 논리학 같은 분석판단으로 된 지식과 경험에 기초한 종합판단으로 된 지식뿐이라고 한정한다. ‘신은 존재한다와 같은 신학적인 지식이나 거짓말을 나쁘다같은 윤리적 지식은 경험적으로 검증이 되지 않기 때문에, 모두 무의미한(meaningless) 언명에 불과하고, 이런 문장으로 구성된 학문은 모두 사이비지식이라고 배격한다.

그런데 실증주의자처럼 우리가 인식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세계(사물)에 대해서 정말로 우리는 확실한 지식을 가질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지금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코로나19의 정체를 우리는, 아니 우리 과학은 완전히 파악할 수 있을까? 진리 이론 중에 가장 오래되고 널리 알려진 對應論(Correspondence theory of truth)이 있다. 진리(지식)란 명제와 명제로 표현되는 객관적 사실의 대응관계로부터 도출된다는 이론이다. 소의 다리는 넷이다라는 명제(지식)은 실재로 들판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소의 다리가 넷이라는 사실과 대응되기 때문에 진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소의 다리가 넷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우리의 의식이 눈으로 보는 경험을 통해서 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의 의식은 의식 밖에 實在하는 소라는 대상으로 직접 나가서 세어봐야 하는데, 어떻게 주관적인 의식이 자기의식 밖으로 나갈 수 있는가? 우리 의식이 고작 직접 접하는 것은 의식에 주어진 어떤 소라는 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러면 의식에 주어진 소라는 상이 의식 밖에 존재하는 소라는 실재하고 같은지 우리는 또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의식을 거울이라고 가정한다면, 거울에 비친 상과 거울 밖에 실재하는 대상이 과연 같은가? 하는 문제이다.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진리 이론에는 대응론 이외에 정합론과 실용론이 있고, 그런 이론들에도 문제가 많기 때문에 수많은 현대 철학자들의 진리론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몽테뉴가 회의론을 말한다고 해서, 물론 철학의 主流는 회의론이나 상대주의나 불가지론은 아니지만, 그것이 그의 철학에 커다란 결점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몽테뉴는 주류철학에서 거부하는 회의론을 주장했는가? 그것은 독단을 피하기 위함이다. 사실 인간은 확실한 지식에 도달할 수 없는데,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확실하다고 믿게 되면, 자기와 다른 입장은 틀리게 된다. 틀린 지식은 허용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가지고, 알지 못한다는 일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독단론이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p.542) 이렇게 견해가 서로 충돌할 때는 격렬한 감정을 가지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이것은 불행한 일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일체의 감정에서 해방되어 자신을 즐길 수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몽테뉴는 권한다. “다른 자들이 구속받고 있는 필요성에서 자기가 면제되어 있는 것만도 장점이 아니겠는가? 인간의 환상이 만들어 낸 하고많은 잘못 속에 얽혀 가기보다는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고 있는 편이 더 좋은 일이 아닌가? 이렇게 소란스레 싸움을 거는 분열 속에 섞여드는 것보다는 확신을 갖는 일을 미뤄두는 것이 더 낫지 않는가?”(p.542) 우리는 이런 몽테뉴의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가 살던 시대의 신교와 구교의 치열한 투쟁 속에서는 이런 행동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십자군 전쟁 같은 나름대로 명분 있는 전쟁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얼마나 우매했는지, 그런 역사적 오류는 아예 발생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선한 일임을 우리는 알게 된다. 지금 우리도 친구 간에 종교와 정치 문제로 대가리 터지게 싸움하여 좋은 관계를 망치는 경우를 왕왕 볼 수 있다. 그런 우매한 행동을 가급적 피하는 것이 현명하게 사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가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전력을 쏟아 연구하는 피나는 노력은 혹시 본인의 삶에는 어떤 고통이 올지 몰라도, 인류에게는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이런 점과 관련해서 몽테뉴와 같이 회의주자였던 피론에게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 피론이 어느 날 산책을 나갔다가 어떤 노인이 물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피론은 자기 철학처럼 그 노인을 구해주는 것이 좋을지 어떨지를 판단할 수가 없어서 그냥 지나쳤다. 이것을 안 사람이 그의 냉혹한 처사를 비난하고 달려와서 그 노인을 구해주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노인은 피론에게 회의주의를 가르쳐준 그의 스승이었다. 다행히 몽테뉴는 길게 회의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는 실제 생활에 있어서는 현재 세계 최고의 포도주 생산지로 알려져 있는 보르도의 市長을 두 번이나 연임하였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 몽테뉴가 살던 시대는 종교적으로 신교와 구교가 한창 전쟁 중이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전염병 페스트가 유행하였다.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고 몽테뉴는 죽음을 실감하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몽테뉴가 구교도인데도 자살을 허용한다는 점이다.

기독교가 지배한 서양에서는 자살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전통이었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주신 것으로 인간이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칸트는 절대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자살을 예로 들었다. 가장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쇼펜하우어마저 자살을 악한 것으로 단정했다.

그래도 죽음을 긍정적으로 보고 실천한 사람은 대부분 스토아 사상가들이다. 몽테뉴가 많이 인용한 세네카도 자살한 스토아 철학자이다. “네로 황제는 어머니인 아그리피나를 죽인 뒤 세네카와 부루스의 조언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62년에 부루스마저 병인지 독살인지 모르게 사망하자 세네카는 황궁에서 보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직감했다. 세네카는 건강 악화와 연로한 나이를 들어 정계에서 물러나려고 수차례 노력한 끝에 마침내 네로 황제의 허락을 얻어냈지만, 그의 은퇴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세네카를 대신해 조언자 자리에 오른 정적들이 세네카를 제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65, 네로 황제는 세네카에게 자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세네카가 자살하는 자리에 참석했던 친구들은 그의 비운을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으나 세네카는 이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우리가 평생 추구했던 스토아 철학의 신념은 어찌하고 이런 약한 모습을 보이느냐고 반문했다. 그런 다음 아내를 안아주고는 팔의 경동맥을 칼로 그었다. 하지만 노쇠한 탓에 출혈이 너무 늦어지자 급기야 다리와 무릎의 동맥마저 잘랐다. 그래도 여전히 숨이 끊어지지 않자 그는 친구에게 독약을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독약을 마신 뒤에도 죽지 않자 결국 욕실로 옮겨가서 온수에서 나오는 증기로 질식사했다.”(이효범, 사람은 왜 죽는가, 렛츠북, 2020, pp. 22~23) 세네카는 말한다. “자기가 탈 배를 선택하거나 자기가 살 집을 선택하는 것처럼 나는 내 삶을 위해서 죽음을 선택한다.”

서양철학사의 시각에서 보면 스토아철학은 어떤 면에서는 동양적인 특징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는 말할 것도 없고 근대 철학자 중에서도 자살을 권하는 철학자는 거의 없다. 현대에 와서 비로소 세상을 부조리하다고 보는 無神論的 실존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가 본격적으로 자살을 죄악시 하지 않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을 만든 창조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먼저 이 세상에 던져지고 그 후에 자신을 만들어 가는 존재자이다. 사르트르의 유명한 말로는 실존의 본질에 선행한다.” 자신을 만들어 가는 주체가 인간의 자유의지이다. 그런데 이 자유의지는 절대적이기 때문에 인간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살도 선택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런 서양의 풍조 속에서 몽테뉴가 스토아사상을 이어받아 자살을 허용했다는 것은 특이한 사실이다. 그는 고통을 참고 살아감은 용기가 아니고 용서될 수 없는 치욕이요 비굴이라고 보았다. “비참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생명에 집착한다는 것은 미친 자의 할 짓”(p.371)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은 모든 고통에 대한 처방이다. 그것은 결코 두려워할 것이 아니며, 가끔 찾아가 볼만한 아주 확실한 항구이다.”(p.370)라고 미화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몽테뉴는 사는 것이 차라리 죽기보다 나쁜 상태에 있을 때에는 그만하면 하느님도 우리를 방면시켜 주는 것이다.”(p.371)라고 하여 자살에 하느님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인생을 버리는 것은 자포자기가 절대 아니다. 자연은 인생에 들어가는 길(탄생)은 하나밖에 주지 않았지만, 나가는 길(죽음)은 수없이 많이 마련하였다. 세상이 우리를 붙잡지 않으니, 굳이 세상에 불평하지 말고 자유롭게 나가면 그뿐이다. “가장 자진해서 받은 죽음이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다. 인생은 남의 의지에 매여 있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 의지에 달렸다. 무슨 일에도 이 죽음에 관한 일만큼 우리 기분을 맞춰가서는 안 된다. 평판이라는 것도 이런 기도 앞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일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미친 수작이다. 죽음에 대한 자유가 없다면, 삶이란 노예가 되는 일이다.”(p.370)

자살률 세계 1위인 국가에서 나는 한가하게 자살을 도덕적으로 논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얼마나 삶이 고통스럽고 억울하면 사람이 세상보다 귀한 자기 생명을 버리겠는가? 사회의 최하 빈민층이나 삶의 실패자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에 몰리지 않도록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살의 도덕성을 굳이 말하라면, 나는 무조건적인 허용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금지자도 아니다. 자살은 더 큰 생명을 위해서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自由가 더 큰 자유를 위해 일정한 한도 내에서 제한될 수 있듯이 말이다.

나는 자기의 현재 삶이 고통스럽고 미래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자살하는 것은 신성한 삶의 도피이고, 무책임한,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죽을 각오로 일하면 미래가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기 암 환자처럼 치유는 전혀 불가능하고, 고통만이 점증되며, 품위 있는 인간적인 삶은 기대할 수 없고, 주위 사람들에게 고통만 안겨 준다면, 자살은 가능하고, 그것을 도덕적으로 비난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또 적극적으로 大義를 위해서도 자살할 수 있다고 본다. 조선말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황현은 책임을 통감하고 자결하였다. 그의 자결로 국민들이 자극을 받고, 전체 공동체에 선을 가져왔다면, 자살은 허용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몽테뉴의 수상록중에서 2가지 주제를 논의하였다. 몽테뉴가 쓴 107개 주제 중에 고작 2개라니, 이러다가는 며칠 낮 며칠 밤을 새워도 부족할 것이고, 그러면 나의 글은 몽테뉴의 글보다 더 길어질 것이다. 몽테뉴 글이라면 몰라도 나의 보잘 것 없는 글을 누가 읽기나 한단 말인가. (소크라)테스형의 말처럼 나 자신을 알아서, 이쯤해서 글을 끝내야겠다.

몽테뉴가 37세에 공직을 퇴임하고 자기 성곽에 은거하면서 열심히 독서하고 사색하면서 썼던, 자신에 대한 보고서인 수상록에는 분명히 조각조각 빛나는 지혜들이 숨어있다. 우리가 보물찾기하는 아이처럼 열심히 그런 지혜들을 찾아 우리의 일상에 적용시킨다면, 우리는 몽테뉴의 의도대로, 조금 더 불행을 멀리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조심스럽게(회의적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이런 방대한 저작 속에서 몽테뉴라는 賢人이 자기도 모르게 툭 던진 말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새로 발견하고, 그것을 끈질기게 붙잡고 비판적으로 발전시켜, 우리 시대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가 그의 방대한 저술 때문에 받은 커다란 고통과 땀의 대가를 어느 정도는 상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남은 그런 기대로, 이 책을 서재 깊은 곳에 처넣지 않고 손 가까이에 놓아두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