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참외
구녕 이효범
참외를 먹은 다음 날은
들판에 나가 똥을 누고 싶다.
똥 속에서 빼꼼히 눈을 뜨고
싱싱하게 살고 싶어 하는
참외씨의 노란 꿈을 이루어 주고 싶은 것이다.
그 많은 씨들이
대지에 뿌리박고
들판 가득 주렁주렁
푸른 파도처럼 넘실댈 수는 없겠지만
한 여름의 왕자님,
목마름을 채워주고
집안 대대로 귀여움 받던 어린 것
그 조그만 하얀 종자를
아파트 변기통에 쑤셔 넣을 수는 없지.
임자 없는 강변에 나가
새들에게 들킬까 봐
수줍게 흰 볼기짝 들어내고
부디 번성하거라 간절히 주문 외우며
참외씨 박힌 똥 위에
호박잎도 몇 장 덮어주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