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은 영화로운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구약성경, 잠언, 16:31>
남성과 여성은 번식을 목적으로 하는 장기간의 부부관계를 맺는다. 남성과 여성은 오랜 동안 자식을 보살피는 등 가족생활에 몰입한다. 이렇게 가족생활에 몰입하는 게 인간행동 방식의 중심적인 특징을 이룬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침팬지와 보노보 등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를 비롯한 포유류의 행동 방식에 비춰보면 이런 인간의 행동 방식은 무척 독특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아마도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류학 데이터나 수렵채집 부족 데이터 등 최대한 이용 가능한 데이터로 추정을 해보면, 인간이 일부일처제의 틀로 장기적인 번식관계를 맺은 것은 약 2백만 년 전의 일로 짐작된다. 또 노동의 성적분화가 이루어지는 등 좀 더 현대와 가까운 모습으로 가족생활이 시작된 것은 15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현생인류가 등장하면서부터라는 게 일반적인 학설이다.
자식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아버지는 정말 필요한가? --- 인간의 어머니가 자식을 성공적으로 길러내기 위해서는 제3자의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어미 혼자 새끼를 보살피는 게 원칙인 대부분의 포유류와는 다르다. 특히 인간의 가까운 친척인 오랑우탄의 경우 암컷 혼자 새끼를 보살피느라 애쓰다가 평균 6년에서 7년이 지나면 손을 떼고 어린 새끼를 야생에 내놓는다. 이와 달리 인간의 경우에는 주변의 다양한 사람이나 기관이 어머니를 도와 자식을 보살핀다. 할머니, 이모, 손위 형제자매, 이웃 사람, 심지어 정부 기관 등이 어머니의 보조자 역할을 한다. 아버지도 그 중 일부일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주변에서 어머니를 돕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역할은 시간이 지나면 끝나지만, 아버지만큼은 언제나 일관되게 어머니를 돕는다. 할머니가 옆에 있을 경우 아버지가 직접적인 보살핌을 제공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해도 그 대신에 안정적인 의식주를 확보하기 위해서, 혹은 자식이 경쟁의 사다리를 딛고 올라설 발판을 다져주기 위해서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한다. ---
아버지의 보살핌은 각 사회마다, 그리고 한 사회 내에서도 편차가 대단히 크다. 이런 편차는 당연히 아버지의 보살핌에서 중심축의 역할을 하는 무수한 변수에 좌우된다. 우선 인간은 장기적인 부부관계 속에서 번식을 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아버지의 보살핌은 자식의 어머니 혹은 자식 그 자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간단히 말해서 아버지는 자식의 어머니가 마음에 들거나 하다못해 자식이 귀여워야 그 자식에게 더 투자를 하는 법이다. 이것은 시대와 사회에 상관없이 통용되는 진리이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산후우울증에 시달릴 때 아버지도 덩달아 산후우울증을 앓을 만큼 사이가 좋다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자식 양육에 힘쓰게 될 것이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가급적 합리적으로 활용하려는 게 인간의 속성이다. 따라서 각 사회의 구체적인 경제 사정에 따라 아버지의 보살핌은 다소 다양한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수렵채집 부족의 아버지는 유목 부족의 아버지에 비해 어린 자식에게 직접적인 보살핌을 베푸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아마 일부다처제 비율이 낮고 정서적으로 밀착된 결혼생활을 하며 자원을 지킬 목적으로 남성끼리 똘똘 뭉칠 필요가 없어서 그럴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아버지는 주로 물질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자식을 직접적으로 보살피는 데 시간을 많이 쏟아 붓기보다는 자식의 학비나 가정의 생활비를 벌어다 주고, 때로는 아들의 신부대를 내주는 등의 방식으로 기여를 하는 것이다. 한편 보호자이자 도덕적 행위자로서 아버지의 역할은 과거에는 대단히 중요했으나, 국가나 언론 등 가정 외부의 각종 제도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그런 역할을 할 여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피터 그레이, 커미트 앤더슨, 아버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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