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에 관한 좋은 문장들

홍장의 효도

이효범 2020. 8. 27. 16:36

백제 때 대응현(현재 충남 예산군 대흥면)에 원량(元良)이라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일찍 부인을 잃고 홍장이라는 열여섯 살 된 딸과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인근 절에 있는 성공(性空)대사가 원량을 만나 말했다.

저는 지금 금강불을 조성하려 합니다. 부디 저에게 큰 보시를 베풀어주십시오.”

스님의 말을 들은 원량이 말했다. “저는 보다시피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입니다. 더구나 본래 가난하여 끼니조차 때우지 못하는 처지인데 어떻게 보시를 베풀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스님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소승이 어젯밤 꿈에 부처님을 뵈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저에게 내일 기도를 마치고 길을 나서면 장님 한 사람을 만날 것인즉 이번 불사에 큰 시주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꿈에까지 나타나 말씀하신 것을 보면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원량은 피식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제게는 시주할 돈은커녕 끼니를 때울 곡식도 없습니다. 제가 가진 것이라곤 효심 깊은 딸밖에 없습니다.”

저녁이 되자 들에 나갔던 홍장이 들어왔다. 홍장은 아버지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마루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오늘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요?”

글쎄 아주 이상한 일이 있었단다. 길을 가는데 웬 중이 다가와서는 나한테 시주를 하라고 하더구나. 부처님께서 나를 만나게 하는 꿈을 꾸었다면서, 내가 절을 짓는데 큰 시주를 할 사람이라지 뭐냐?”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어요?”

내가 가진 재산이라곤 딸 하나밖에 없다고 했지.”

그 말을 들은 홍장은 문득 가슴이 아려왔다.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 때문에 늘 노심초사했던 홍장이었다. 홍장은 혹시 부처님께 시주하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홍장은 이튿날 인근 절을 찾아가 성공대사에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가진 게 없습니다. 만일 저를 팔아 부처님께 시주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성공대사는 첫눈에 보통 소녀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마침 서해안에는 중국 상인들이 백제를 오가며 무역을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성공대사는 상인들에게 홍장을 팔기로 하고, 그녀를 데리고 상인들의 배가 오는 소랑포로 향했다.

한참을 기다리자 문득 커다란 배 두 척이 나타났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홍장을 발견하고 말했다. “저희는 진나라 혜제께서 보낸 사자들입니다. 얼마 전 진나라의 황후께서 돌아가셨는데, 그때부터 성상께서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상의 꿈에 신인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새 황후 되실 분이 이미 백제에서 탄생하였으니 모시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성공대사는 그 말을 듣고 부처님의 도움이라 여겼다. 그리하여 그는 중국의 사신들에게 엄청난 보물을 받고 홍장을 넘겨주었다.

진나라로 건너간 홍장은 단아한 품성과 자애로운 모습으로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고향에 두고 온 아버지를 생각하느라 한시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녀는 궁궐 안에 관음상을 만들어놓고 아침저녁으로 고향에 계신 아버지의 건강을 빌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홍장은 고향 백제에 대한 그리움을 잊지 못하고 자신이 모시던 관음상을 배에 실어 바다에 띄우도록 하였다. 그 관음상을 모신 곳이 지금의 전남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에 있는 관음사이다.

한편 성공대사는 홍장을 판돈으로 금강불을 조성했는데, 이 때 원량도 눈을 떠 아흔다섯까지 편안히 살았다고 한다.

<백매선사(白梅禪師), 옥과성덕산관음사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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