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33, 산1)

이효범 2020. 8. 14. 06:32

 

 

o 1

 

구녕 이효범

 

 

산 너머

.

 

그 너머는

무엇이 있을까?

 

두 발로 오른 사람만이

비로소 볼 수 있는,

 

산 너머

너머 산.

 

후기:

내 마음속에는 두 개의 산이 있다. 하나는 烏棲山이고 다른 하나는 鷄龍山이다.

오서산 동쪽기슭에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 때는 서편에 있는 광천에서 살았다. 광천 읍내에서 보면 오서산은 작은 산 너머에 중간 산이 있고 그 너머에 우뚝 솟아 있다. 나는 그 때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오서산의 정기로 태어났다. 아마 내 인생은 저 오서산처럼 거주지를 크게 세 번 옮기면서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 후 초등학교를 마치고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 장항선에서 사는 학생들은 주로 서울로 공부하러 가거나 인천으로 가는데 나는 드물게, 청양 칠갑산의 대치 큰 고개를 넘고, 공주의 금강과 마티 고개를 넘어, 23만 명이 사는 충남도청 소재지 대전으로 와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중고등학교 때 버스를 타고 계룡산에 자주 놀러갔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불교학생회를 다녔기 때문에 계룡산에 있는 갑사, 신원사, 동학사와 그 주변의 암자를 자주 찾았다. 1969년 고등학교 1학년 여름 방학 때 갑사에서 수련대회를 했는데, 새벽 4시에 일어나 참선하면서 반쯤 감긴 눈으로 본 푸른 산과 흘러가는 흰 구름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거기에서 갑사의 명초나 대선 같은 위대한 큰 스님을 만난 것이 내게는 커다란 행운이었다.

또 겨울방학에는 신도안의 조그만 절, 지금은 계룡대 군인시설들이 들어차 있어 사라진 그곳에서 수행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때 나는 몇몇 선배들과 함께 진지하게 참선수행을 했는데, 매일 이상한 복장과 모습을 한 도사들이 찾아와 자기들이 평생 동안 수행하여 깨친 진리라며 입에 거품을 품고 전파하였다. 우리 민족의 종교 1번지 신도안 곳곳에서 수행하던 그 많던 도사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겨울 끝내 견성하지 못하고 천황봉 아래 눈덮힌 계룡산을 미끄러지면서 넘어 와, 동학사 앞에서 버스를 타고 하산한 아픔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두 산과 평생을 살았다. 잘 모르겠다. 앞으로의 인생에 오서산과 계룡산과 같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 제 3의 산이 내게 나타날지는. 그런데 산은 내게 무엇일까? 왜 나는 산에 가는 걸까? 그것은 아마 인간은 무엇일까? 왜 인간은 사는 걸까? 와 같은 물음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