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35, 사과 껍데기)

이효범 2020. 8. 18. 21:58

 

o 사과 껍데기

 

구녕 이효범

 

비가 온다.

울지 마라.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것이다.

죽음이 삶을 살리듯

껍데기가 알맹이를 키웠지만

알맹이가 익으면 껍데기는 버려진다.

이분법적인 세상.

그러나 껍데기가 없으면

배이지 어디 사과이겠는가.

빨강으로 빛나는 껍데기가 아니라면

사과가 익었는지 떫었는지 어찌 알겠는가.

버릴 것은 껍데기가 아니다.

썩은 알맹이가 문제이다.

비바람 막아주던 외롭던 껍데기여

병충해 막아주던 장한 껍데기여

껍데기가 있는 사과는 그림이 되지만

껍데기가 없는 사과는 포크로 찍힐 뿐이다.

껍데기가 찬란이다.

껍데기가 이름이다.

 

후기:

껍데기는 가라. /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이렇게 시작하는 신동엽의 대표 시 <껍데기는 가라>가 있습니다. 아주 훌륭한 시입니다. 민족이 위기에 처하고 독재로 국민들이 희망을 잃을 때, 잡것을 몰아내고 순수성을 살려 내어 다시 한 번 민족이 비상하자는 위대한 외침입니다.

나는 겨울의 의 시대에는 이런 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엄동설한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기를 품어야 하고, 세상과 쉽게 타협하지 않는 自己 決意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어 의 시대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순수성보다는 포용성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물도 산속의 계곡물일 때는 청정성을 유지할 수 있지만, 커다란 강물이 되었을 때는 청정한 물이 흐르는 지류와 흙탕물이 흐르는 지류가 한데 섞여 도도하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여름이 그렇습니다. 뭇 생명들이 함께 어울려 한바탕 질퍽한 잔치를 벌이는 것입니다. 잔치에는 심판과 구별은 의미가 없습니다. 사기꾼도 들어오고 음탕한 자도 들어오고 성직자도 들어와서 한데 어울려 먹고 마셔야 신나는 잔치이지, 선택된 자들만이 정해진 규율에 따라 놀면 그것은 진정한 축제일 수 없습니다.

세상 사태가 본디 그렇습니다. 어디 음과 양이 따로 떨어져 있나요. 음양이 함께 어울려 있지, 100% 正義, 100% 不義가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오늘의 정의가 내일의 불의가 될 수 있고, 낮은 차원의 정의가 높은 차원에서는 얼마든지 불의로 변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 속에는 이성에서 오는 욕망과 감정에서 오는 욕망이 늘 섞여 있습니다. 자선과 질투는 사실 한 짝입니다. 페르소나와 쉐도우는 하나의 실체의 양면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본래부터 평생을 실수 없이 의롭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한 인간을 평가할 때 功過를 같이 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껍데기와 알맹이처럼, 하나의 實體에서 현상과 본체가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령 나누어진다고 해도 알맹이만 중요하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 껍데기 없이 알맹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알맹이만 쏙 빼먹고 껍데기를 아무 생각 없이 아무렇게 버리는 사람을 볼 때마다 화가 납니다. 이제 껍데기의 수고와 눈물을 생각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