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이 전쟁터에서 돌아와 왕궁에 복명하고 아직 집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백제의 군사가 또 국경에 나타나서 신라를 위협한다는 급보가 들어왔다. 이때 왕은 김유신에게 명령하여 다시 나아가 백제군을 격퇴하라고 당부한다. 이에 김유신은 자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문 앞에 나와 있는 가족을 못 본 체하고 그의 문전을 지나간다. 문전을 지나서 한 50걸음쯤 간 뒤에 말을 멈추고 부하를 시켜서 자기 집 장수(漿水)를 가져오게 하여 갈증을 해소하였다. 또한 당나라와 말갈의 군대가 합세하여 신라를 공격했을 때 그의 아들 원술은 비장이 되어 이에 참전하였다. 전세가 불리하여 수많은 신라군이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원술도 달려 나가 전사하고자 하였으나 그의 부관 담능(淡凌)이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다.’라고 하여 말리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신라군은 많은 사상자를 낸 보람도 없이 전쟁에서 지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때 김유신은 자기 아들 원술이 살아서 돌아온 것을 비겁한 소치로 보고 참형에 처할 것을 대왕에게 진언하였다. 그러나 대왕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하며 원술을 용서한다. 원술은 부끄럽고 두려워 감히 아버지를 뵙지 못하고 시골에 은둔하다가 아버지가 타계한 뒤에 어머니를 만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자에게는 지켜야 할 삼종지도(三從之道)가 있으니 내가 이미 혼자된 몸으로서 마땅히 아들의 뜻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원술은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자식 노릇을 못했으니 내 어찌 그 어미가 될 수 있겠는가?’하고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이에 원술은 탄식하고 태백산으로 들어갔다가 그 뒤 을해년(675)에 당나라 군사가 다시 침공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죽음을 각오하고 전쟁터에 나가기를 자청한다. 그리하여 힘을 다해 용감히 싸워서 큰 공을 세우고 상까지 받았으나 그 전에 부모에게 용납되지 못했음을 자책하여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한평생을 마쳤다. <삼국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