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서 보내는 편지(7, 조지아 여행기)/ 구녕 이효범
우리는 한 15분 정도 무거운 가방을 끌고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 사이에 놓여 있는 국경다리를 넘었습니다. 이렇게 쉽게 도보로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넘어갈 수 있다니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조지아의 도로와 집은 아제르바이잔보다 열악했습니다. 예전에 미국에서 자가용으로 캐나다에 들어갈 때나 기차로 프랑스 니스에서 모나코를 걸쳐 이탈리아에 들어갈 때도 두 나라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국력은 일상적인 모습에서도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 같습니다.
국경을 넘어 조지아에 처음 간 곳은 시그나기를 중심으로 하는 카헤티(Kakheti)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서 조지아 와인의 70%가 생산된다고 합니다. 마침 포도의 수확기인지 낡은 트럭에 포도를 가득 실은 차들이 도로 한편에 한 20대 정도 정차되어 있는 모습을 보니 포도의 고장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도로도 ‘와인의 길(wine route)’이라는 팻말이 곳곳에 붙어 있었습니다. 조지아인들은 조지아가 와인이 발생지라고 생각합니다. 8,000년부터 와인을 생산한 증거가 있으며 이것은 프랑스에서도 인정한 바라고 가이드는 강조하였습니다. 그곳에서 한 와이너리를 방문하였습니다. 특이한 것은 우리의 김칫독처럼 생긴 항아리(크레브리, 김칫독보다 주둥이는 작고 크기는 많이 큼)를 땅에 묻어 그 속에서 와인을 숙성시킨다는 점입니다. 그 항아리를 열고 와인을 꺼내서 우리는 시음을 하였습니다. 마치 우리도 옛날 땅속의 김칫독에서 김치를 꺼내 먹은 것과 어떤 면에서 비슷했습니다. 이 동네는 우리의 한산 소곡주처럼 집집이 자체 브랜드로 와인을 생산했습니다.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이 동네를 보면서 김치의 본고장인 우리도 전라도 어느 지역을 중심으로 김치 동네를 만들고, 또 ‘김치의 길’도 만들어서 김치를 전 세계적으로 선전하면 어떨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조지아를 여행하면서 우리는 점심이나 저녁에 매일 다른 와인을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의 일행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샀기 때문입니다. 그 중 몇 사람은 조지아 와인이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을 늘어놓았습니다. 와인의 맛을 전혀 모르는 나는 우리가 언제부터 와인의 문화에 길들여졌다고 이렇게 폼을 잡나, 마음속으로는 그런 사람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그냥 공짜로 얻어먹으니까 어쩔 수 없이 먹었지, 내가 순번이 되어 와인을 사서 돈은 낸 날은 정말로 와인의 맛이 별로였습니다.
조지아의 수도는 트빌리시입니다. 파리 센느강의 반도 안 되는 쿠라강이 중심을 흐르는 그리 넓지 않은 계곡에 오래된 아담한 도시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11일 동안의 조지아 여행 초기와 마지막을 트빌리시에서 보냈습니다. 마지막 날 오후에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나는 내셔널 갤러리에 가서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의 작품을 보고 싶었습니다.
피로스마니는 심수봉이 불러 유명한 ‘백만 송이 장미’의 본래 주인공입니다. 그는 조지아의 시골 미르자아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미치도록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무명화가였습니다. 그는 철도원 관리들의 뒷수발을 해주면서 생계를 유지했고 토속음식 부렉을 맘껏 먹어보는 것이 유일한 꿈일 정도로 가족을 다 잃고 홀로 사는 외로운 작가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43세 되던 어느 날 ‘마르가리타’라는 프랑스 여배우가 공연차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녀를 본 순간 피로스마니는 온 몸이 얼어붙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마르가리타는 자기 삶의 전부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 심지어 피까지 뽑아, 그녀가 좋아한다는 장미꽃을 샀습니다. 그 무한한 백만 송이 장미를 바쳤으나 아름다운 여배우는 손 한번 잡지 않고 그냥 떠나버렸습니다. 무명화가는 56세에 영양실조와 간 기능 부전증으로 사망하였습니다. 죽는 순간 그의 손에는 장미꽃이 들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제 조지아의 국민화가가 되어 화폐에도 나오고 그의 작품이 이곳 갤러리에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불행하게도 이 먼 곳에 와서도 그 그림들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어느 틈에 가이드에게 트빌리시에서 살만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물었던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이번의 긴 여행에는 아이들이 걸렸겠지요. 이곳에서는 은제품이 가격도 괜찮고 질도 좋은 편이라고 분명히 그 앙칼진 가이드가 꼬였을 것입니다. 아내는 길치인데도 어느새 가게 이름까지 알아내 막무가내입니다. 기회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 이 먼 곳까지 어렵게 와서 평생 고생만 한 아내의 어려운 청을 안 들어주면 내가 집에 가서 어떻게 밥을 얻어먹나. 언제나 상부구조인 예술은 멀고 하부구조인 경제는 가까운 거야. 아내가 지목하는 가게에 들려 은 목걸이 3개를 사고, 길을 잃으며 힘들게 미술관을 찾아 갔지만 표를 사고 들어가 감상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늦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화가 많이 났습니다. 하지만 피로스마니의 절대 사랑을 생각하며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날이 여행 14일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조지아의 종교는 조지아 정교입니다. 조지아에서 우리가 가는 여행지의 대부분은 수도원이나 성당이었습니다. 이제 몇 개를 보니 서유럽 여행에서 성당을 보듯, 그게 그것인 것 같아 별로 감동이 일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나는 다비드가레자 동굴 수도원과 카즈베기에 있는 게르게티 ‘성 삼위일체 성당(츠민다 사메바 성당)’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비드가레지 동굴 수도원을 가는 길은 풀만 난 멋진 구릉지여서 언젠가는 다시 와서 수도자처럼 깊은 묵상을 하며 걷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동굴 수도원은 예전에 우루무치 여행길의 고비 사막지역에서 보았던, 현장법사가 손오공과 지나갔다는 불타는 산인 ‘화염산’과 비슷한 지형의 동굴 속에 성스럽게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평생 수도하는 사람들은 왜 수도를 할까요. 그리고 그 수도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평생 철학을 한 나로서도 이런 수도자의 고행은 한편으로는 우리 삶의 등대인 것 같아 참으로 의미 있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언제나 善惡의 파도가 득실댄다는 점에서 아주 바보스러운 것 같아, 제대로 정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조지아의 여행 책자에 간판 사진으로 나오는 게르게티 성당은 결코 虛名이 아니었습니다. 트빌리시에서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러시아 가스관이 묻힌 러시아-그루지야(조지아) 군용도로를 따라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야 합니다. 산맥 2000m 위에 있는 소비에트 100주년 기념 전망대에 오르니 여기의 산세는 스위스에서 본 알프스와도 다르고 중국의 장가계와도 다른,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하고 오묘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2600m의 고개 정상을 지나 러시아 쪽으로 1750m의 스테판츠민다 마을 쪽으로 내려가니 오른 쪽으로는 지금까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바위산들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고, 멀리 왼쪽으로는 2170m 산 위에 까마득하게 조그만 성당이 감탄 속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 저 교회 뒤 구름에 가린 설산이 바로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훔쳐 주어 3000년 동안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형벌을 받은, 5047m의 카즈베기 돌산이란 말인가. 다음 날 아침 사륜구동을 타고 성당에 올랐지만 흥분과 울림은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카즈베기 설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이곳에서 며칠씩 묶으면서 자기 몸만한 배낭을 메고 트레킹하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습니다. 그래 나는 이곳에 잠깐 머물면서 웃으며 사진이나 찍고 지극히 세속적인 감탄과 대화나 나누면서, 내면이나 영원으로는 한발도 들어가지 못한 채 되돌아가도 된다 말인가. 오늘도 이 동네 사람들은 깊은 신심으로 이 높은 성당에 와서 촛불을 밝혀놓고 경건하게 묵상하고 돌아가는데 그런 사람들 뒷모습이나 보고 좋아하는 내가 과연 철학자인가.
조지아 여행 중에 나에게 의미 있었던 곳을 더 꼽으라면 흑해에 접한 바투미나 바르지아 동굴도시도 좋았지만, 스탈린 고향 고리와 동화 같은 마을 우쉬굴리가 아닐까 합니다. 고리는 몇 배 크지만 충남 논산 같은 지형을 가졌습니다. 멀리 아스라이 코카서스 산맥이 지나고 광활한 평야의 그리 크지 않은 강가에 고리가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조지아의 대부분 도시가 그렇듯이 여기도 발코니가 있는 소련식 낡은 건물들이 모여 있고 그 중심지에는 스탈린 박물관이 쾌 큰 모습으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박물관 한편에는 스탈린이 타고 다녔다는 그 유명한 낡은 초록색 기차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아직도 여기는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이층 전시관에 올라가니 여러 형태의 스탈린 동상들이 곳곳에 있고 벽은 온통 낡은 사진들로 빽빽했습니다. 우리 여행은 이곳은 그냥 잠시 들릴 뿐 다음 목적지가 중요했든지 가이드는 설명도 자세하게 하지 않고 급히 서둘렀습니다. 그러나 나는 궁금하고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우리 부부만 일행에서 뒤쳐졌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다시 스탈린의 어느 흉상을 만났습니다. 갑자기 몇 달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본 우리 고려인들의 참상이 떠올랐습니다. 스탈린이 극동에 사는 우리 동포들을 강제로 중앙아시아에 이주시켜 수만 명이 추위와 기아와 질병으로 죽었습니다. 이 인간 백정, 나는 흥분하여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주먹으로 동상을 한 때 때렸습니다. 아내가 깜작 놀랐습니다. 스탈린은 제화공이었던 술주정뱅이 아버지로부터 어릴 때 학대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심 깊은 어머니는 아들을 성직자가 되기를 희망하여 신학교에 보냈습니다. 키도 반에서 가장 작고 합장 단원으로 노래도 불렀던 이 시골 소년이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소련의 서기장이 되어 한 세기를 주름잡을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고리는 뿌리도 없는 만만한 시골의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강가 언덕에는 허물어진 오래된 성도 남아 있고, 아마 어릴 적 스탈린이 소풍갔음직한 그리 멀리 않은 강 옆 돌산에는 ‘신의 요새’라는 우플리스치케 동굴도시가 자리해 있었습니다. 이곳은 기원전 6세기부터 1세기까지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였다고 합니다. 고리와 스탈린은 그냥 우연일까요.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몇몇 대통령 생가를 가 보았지만 인물과 지리의 관계는 무언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쉬굴리(Ushguli)는 지리산에 있는 우리의 청학동처럼 조지아의 영봉, 코카서스 산맥에서는 세 번째로 높은 5068m의 쉬카라 설산 속에 위치한 해발 2100m의 산속 마을입니다. 이곳은 험준한 코카서스산맥 때문에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코카서스의 속살을 볼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끝없이 구불구불하고 천길 낭떠러지의 아찔한 길은 숨 막히기도 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조지아에서는 이런 길을 ‘시어머니 혀’ 같은 길이라고 한다는 가이드 말에 우리는 폭소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여행간 시기는 마침 단풍이 들기 시작한 때라 고운 빛깔을 내는 선명한 산골은, 집은 비록 초라했지만 때 묻지 않은 알프스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온 듯 했습니다. 그러나 우쉬굴리는 알프스와는 다른 자기만의 독특한 풍경을 나타냈습니다. 우선 마을 곳곳에 세워진 높고 튼튼한 돌탑들이 이국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것들은 산 넘어 러시아의 도둑들이 이 산골마을을 약탈할 때 대피하기 위해 세운 피난처라는 것입니다. 조그만 우쉬굴리 골목을 걷다 보면 갖가지 동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조지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개가 여기서도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제멋대로 놀고 자고 있고, 양이나 소도 고삐나 울타리 없이 어슬렁거리며 풀을 뜯어 먹고 있으며, 심지어 돼지 새끼들이 먹이를 찾아 엄마와 몰려다녀도 누구 하나 놀라지 않습니다. 높고 깊은 자연 속에서 동식물과 경계 없이 사는 이 고장이 우리와 같이 밀려오는 관광객들로 과연 얼마나 존속될 수 있을까요.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조지아는 참으로 매력적인 나라입니다. 모든 음식은 대체로 아주 짰지만 신이 밥상을 들고 가다 코카서스 산맥에 걸려 여기 조지아에 엎었다고 할 정도로 풍성했고, 치안은 매우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소련시절에 세워진 큰 공장들은 이제 경쟁력을 잃고 가동을 멈추어 나라는 비록 가난했지만 조지아 와인처럼 사람을 끌어당겼습니다. 비자 없이 360일을 머무를 수 있다고 하니 언젠가 다시 혼자 와서 낙타같이 예쁜 눈을 가진 조지아 처녀들과 대화도 해보고, 어디 가나 인간의 일이 시들해지면 설산 속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가, 모든 욕망을 끊고 수도승처럼 순수와 절대를 추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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