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6, 아제르바이잔 여행기)
구녕, 이효범
정년 기념으로 18일 동안 코카서스 지역을 여행하였습니다. 그 여행기를 3편으로 나누어 보내드리겠습니다.
(1) 아제르바이잔
코카사스 산맥에 있는 세 나라는 한 때 소련 연방에 속해 있어서 우리에게는 낯설고 입국이 금지되었던 곳입니다. 나는 소련이 해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러시아의 옛 수도 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한 밤중에 전통극장에 가서 다양한 쇼를 보았는데 코카사스 지방의 노래와 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남자 무용수들의 힘찬 기운과 절제된 율동이 뇌리에 오래 남았습니다.
정년 기념 여행으로 이곳을 택하면서 한편으로는 설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다정한 부부라고 하더라도 여행이 2주일을 넘기면 싸운다고 하는데 18일은 너무나 길지 않을까? 나도 그렇지만 병원에 자주 다니는 아내가 긴 여행을 견딜 수 있을까? 또 정년 기념으로 간 여행에서 참변을 당하는 일이 가끔 뉴스에 나오는데 우리는 괜찮을까? 그러나 우리의 일생에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고 하지 않은가? 오늘 가지 못하면 내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코카사스 3국은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9시간 30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두바이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비행기로 2시간 50분에 걸쳐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로 들어갔습니다. 바쿠로 가는 비행기 밑으로는 이란의 땅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땅, 도시도 집도 거의 없는 불모지 사막의 땅이 인상 깊게 끝없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문명을 가진 페르시아의 땅, 서구 문명에 저항하며 자기 종교와 고유성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땅, 저기도 언젠가는 한 번 가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거대한 카스피 해 위를 가로지르니 그 바닷가에 코카사스 3국의 경제 중심지인 320만 명이 살고 있는 바쿠가 위용을 자랑하며 나타났습니다. 바쿠 주변에는 바다에서도 땅에서도 석유와 천연가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석유를 캐어 내는 메뚜기 같은 조그만 기계가 도로변 밭에 놓여 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오일 머니 덕택에 반사막 지역에 위치한 바쿠는 깨끗하고 멋진 현대 도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산바람이 심하게 부는’이라는 뜻을 가진 바쿠는 올드 타운(이체리셰헤르라는 요새)과 신흥도시가 잘 조화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바쿠를 상징하는 랜드 마크가 불꽃 형상을 한 190m의 불꽃 타워(Flame Tower)이지만 오랫동안은 27m 높이의 둥글고 웅장한 메이든 타워(Maiden’ Tower, 키즈 갈라시 탑, 처녀의 탑)였습니다. 이 탑에는 여러 전설이 내려옵니다. 바쿠의 왕이 자기 딸이 너무 예뻐서 청혼을 하게 되자, 딸은 아버지에게 영토를 다 내려다볼 수 있는 탑을 세워주면 결혼하겠다고 약속하고, 탑이 완성되자 그 위에서 떨어져 자살했다는 기이한 전설입니다. 조금 더 신빙성 있는 것은 이 탑이 한 번도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처녀의 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을 잘 하는 아제르바이잔 가이드도 이 탑은 카스피 해를 지키는 등대로 세워졌다고 설명하였습니다.
도시들은 도시를 상징하는 마크가 있습니다. 파리에는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이 있다면 런던에는 빅벤이 있는 국회의사당과 대영박물관이 있습니다. 시드니가 오페라하우스라면 로마는 콜로세움과 바티칸, 판테온과 트레비분수 등 너무 많아 하나로 고정시키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듯 익숙했던 ‘세계 3대 美港’이나 ‘한국의 3대 천재’ 등과 같은 지칭이, 이제 커서는 ‘누가, 무슨 기준으로, 이렇게 제멋대로 분류하는 거야’라고 불만이 많았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꼽아지는 것은 그리 크게 문제될 것도 없고, 오히려 도시를 널리 알리는데 기여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의 명물은 무엇일까요? 또 이제 시작하는 우리의 행정수도 세종시는 어떻게 될까요?
내가 보아 세종시는 중앙관청의 건물들이 이미 명품입니다. 그리고 기네스북에 올라 있듯이 용처럼 이어지는 중앙관청의 옥상에 설치된 그 긴 정원들이 아주 특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에 욕심을 첨가하고 싶습니다. 금강 물을 끌어올려 옥상 정원에 인공적으로 시냇물을 만들고 그 물을 한 곳이나 몇 곳에서 커다란 폭포처럼 낙하시키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 물을 세종시의 중심대로로 신선하게 흐르게 하여, 지금 조성되고 있는 국세청에서부터 문화회관 쪽의 세종광장으로 연결시킨다면, 너무 직선적이고 정태적인 세종시에 곡선의 이름다움과 살아 움직이는 동태적인 모습을 입힐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지금 인기 있는 세종호수 공원과 곧 개원할 국립수목원, 그리고 금강에 설치되고 있는 보행전용 다리도 좋지만, 이것들은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쉽게 볼 수 있어 세종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을 주기에는 너무나 평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여행 이야기를 하다가 흥분하여 다른 쪽으로 빠졌지만 다시 바쿠로 되돌아오면, 우리는 카스피 해를 보통 바다로 알고 있지만 사실 카스피 해는 큰 大洋과 연결되지 않고 육지 속에 고립되어 있는 호수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물은 바다처럼 짭니다. 이것을 바다라고 해야 할까요, 호수라고 해야 할까요. 이 문제로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카스피 해에 인접한 러시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이란의 5개 나라가 빡세게 회의를 하였답니다. 러시아는 호수라고 우겼답니다. 바다라고 하면 외국의 배가 자유롭게 항해하여 자신들이 위협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아제르바이잔은 석유 시추권을 지키기 위하여 기존대로 바다라고 주장하였답니다. 그래서 5개국은 일단 카스피 해를 기본적으로 ‘바다’로 규정하고, 세부조항에서 호수처럼 특수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쉐키(Sheki) 왕의 여름 궁전을 둘러보는 것으로 3일간의 아제르바아잔의 여행을 마쳤습니다. 쉐키는 코카서스 산맥의 남쪽 나지막한 산속에 있는 오래된 조그맣고 한적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이 도시는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도시에는 실크로드 대상들의 숙박 장소인 ‘카라반 사라이’가 웅장하게 남아 있습니다. 중국에서 출발한 실크로드의 교역 상품이 서구로 들어가기 전에 실크로드의 요충지인 이곳에서 활발하게 거래되었다고 합니다. 카라반 사라이 위쪽 산중턱에는 성이 있고 그 안에는 코카서스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쉐키왕의 여름 궁전이 그리 크지 않지만 1797년에 세워진 그 상태로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습니다.
가이드는 웃으며 한국 관광객들에게는 이 도시를 부르기가 겁난다고 농담을 하였습니다. 잘못하면 ‘새끼’라는 욕으로 들린다는 겁니다. 나는 궁전 앞에서 내리면서 우리나라 어느 사찰에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래 전에 올림픽 성화를 채화하는 그리스의 올림피아드에 갔을 때, 이상하게도 속리산 법주사에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풍수사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좌청룡 우백호의 산세로 보아, 혹시 궁전을 지은 쉐키 왕국의 후세인 무스타크 왕이 우리와 먼 조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직감만으로 모든 것을 추정하는 것은 위협한 발상입니다. 그러나 페르시아에 조공을 받쳤다는 이 조그만 왕국도 여름 궁전을 아무 곳에나 짓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풍수도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찾거나, 혹시 자연의 형국으로 그럴 수 없다면 인위적으로 무엇인가를 보완해서 그렇게 만들려는 사상일겁니다. 여기도 우리와 본질에 있어서 동일한 사람이 살고 있다면, 자기 영토에서 여름에 자신들에게 최적의 행복을 제공할 수 있는 산세를 궁전의 터전으로 잡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종시를 현재의 한국적 상황에서 최적의 위치로 선정하였듯이 말입니다.
프랑스의 문호인 알렉산드르 뒤마는 여름 궁전을 둘러보고 “위대한 신이시여! 이 아름답고 역사적인 유적을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해주소서”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그만 쉐키 왕국은 76년간 이곳을 통치하다가 소련에 합병되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친근하고 포근한 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를 늘 보호하시는 하느님이시여, 우리 조국은 운명적으로 세계를 주름잡은 4대 강국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남한은 반만년 역사에 가장 잘 사는 시대가 되어 부족한 제가 이렇게 알지도 못했던 나라를 여행하지만, 지금 나라는 조국이라는 한 사람으로 인해 두 동강이 났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싸우다가 쉐키 왕국처럼 강대국에 잡혀먹지 말게 하소서. 우리 국민에게 혜안을 주시옵고 부디 경제를 부강하게 지속시켜 주옵소서. 우리에게 세계의 모든 인종들이 만나는 이 새로운 시대에 무엇인가를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꼭 주실 것을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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