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7, 신과 사람과 동물)

이효범 2019. 9. 19. 06:27

o 신과 사람과 동물

 

또박, 이효범

 

1.

 

한 분이시다.

그러면 누구와 사나.

죽을 수도 없고.

그러니 만만한 사람을 괴롭히지.

 

2. 사람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산다.

사랑하는 사람은 멀리 있고

미워하는 사람은 가까이 많다.

그러니 머리가 아프지.

 

3. 동물

 

창문이 없는 본능에 갇혀 산다.

아름다운 꽃을 아름다운 꽃으로 보지 못하고

불편한 환경을 바꿀 머리도 없다.

그러니 그 모양 그대로지.

 

 

o 후기:

정년이 다가와 37년 만에 연구 공간을 공주에 있는 학교에서, 세종시 중앙관청 부근에 있는 에비뉴힐이라는 오피스 건물로 옮겼습니다. 울타리 안 안온한 온실에서 울타리 밖 바람 부는 언덕으로 나온 기분입니다.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니 준비할 일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우선 싱크대를 설치하였습니다. 연구 공간 안에서 찬물과 따뜻한 물이 나오니 여간 편리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옮겨간 책장이 부족하여 몇 개 더 맞추고, 탁자와 의자도 준비하였습니다. 퇴직한 이 늙은이에게 누가 올 것 같지도 않은데 그래도 몰라서 나는 커피를 그리 즐겨하지 않지만 캡슐 형 빨간 커피머신도 샀습니다.

새로운 연구공간은 입구 앞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내부가 보입니다. 스티커를 부쳐 불투명하게 하려고 인테리어 업자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스티커 작업할 때 함께 오피스의 이름을 달면 싸게 해주겠다고, 생각지도 못한 흥정을 해왔습니다. 나는 한때 제 꼬라지도 모르고 옛날 선비처럼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아울러 연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사철연구소로 해볼까 생각했지만 도통 자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인문학연구소로 달면 어떨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은 이제 너무나 흔해져서 그래도 나만의 고유성을 추구하려는 욕심이 아직 남아 있는 내게는 무언가 부족해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철학연구소는 어떨까. 그러자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님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대학을 철학과로 가겠다고 하니까, 철학과가 무엇인지 모르는 어머니는 원동초등학교 옆 대전천변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사주를 보는 사람을 생각하셨던지, 그 어려운 대학을 나와 고작 그런 사람이 되려고 하느냐고 역정을 내셨습니다. ‘철학연구소는 사주나 관상 그리고 성명을 짓는 연구소와 혼동할 가능성이 많아 그런 이름도 선뜻 내기치 않았습니다. 시간이 너무 흐르니 아무 말도 안하고 멀쑥이 서 있는 인테리어 업자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안 하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돌리고 굴려 이효범연구소로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연구의 주된 영역이 결정되면 이효범연구소라는 간판 위에 그 주제를 달면 되겠다고 꾀를 낸 것입니다.

그래서 어렵게 이효범연구소가 외형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흐뭇했습니다. 나는 이 공간에서 호랑이 같은 마누라가 무슨 말을 하든, 토굴에 들어간 수도승처럼 10년을 두문불출하면서 고양이가 쥐 잡듯이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리라 각오도 단단히 다졌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고 휘파람을 낮게 불며 이미 이골이 난 청소를 난생 처음 즐거운 마음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마침 연구소 앞을 지나가던 청소하는 두 아줌마가 문안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이 연구소는 처음인데, 무얼하는 연구소에요?” 웃으며 물었습니다.

나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무엇을 본격적으로 연구할지 나도 아직 모르니 말입니다. 그래서 엉겁결에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이효범입니다. 내가 평생 이 놈을 탐구해 왔지만 이 놈이 어떤 놈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 봐도 정말 알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두 분은 고개를 갸우뚱하고 놀란 듯 급히 나갔습니다. 어디 미친 놈 하나가 들어왔나 오해하면 어쩌지, 입점 첫날부터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