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14 (비아나)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14 (비아나)
구녕 이효범
아침에 순례길에 들어서면 재미있다. 마을에 산재하여 머물던 순례자들이, 도랑물이 모여 냇물을 이루듯이, 다 같이 쏟아져 들어와 한 무리가 되어 걷는다.
어제 마지막 행운으로 묵은 알베르게는 알고 보니 관립으로 운영되는 ‘이삭 산티아고 알베르게’였다. 8유로를 냈다. 꽤 큰 시설이었다. 나는 본관이 있는 홀에 들어갔는데, 2층에 여러 홀이 서로 개방되어 연결되어 있었다. 마지막 조그만 홀에 들어가니 2층 침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각각의 침대마다 짐은 놓여 있는데 사람들은 없다. 나는 절뚝거리는 다리를 끌고 성안으로 다시 들어가 간단히 샌드위치로 저녁을 때웠다. 들어오는 발길에 옆을 보니까 도서관이 있다. 이들은 점심에 낮잠을 자서 그런지 관공서가 늦게까지 운영된다. 도서관 직원은 순례자를 친절하게 맞이한다. 아무래도 알베르게는 불편할 것 같아서 오늘 일기를 수기로 다 썼다. 한 7시 정도쯤 글씨는 보이지만, 약간 어두운데도 도서관은 불을 켜지 않는다. 저쪽에 대여섯 남녀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어도 그렇다. 알베르게의 침대에 들어오니 뜻밖에 3명이 전부 여자이다. 내 침대 아래 칸을 쓰는 여자는 50대 중반으로 깔끔하고 신앙심이 돈독해 보였다. 여자는 아래층이 누워 쳐다보고, 이층으로 오르는 순간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올라가고 있습니다.”라고 크게 말했다. 그녀가 웃었다. 다행히 코 고는 사람은 없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좁은 화장실과 샤워실을 공용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어지지 않는다. 나는 아예 화장을 미리 하고, 또 오늘은 커피를 덜 마셨기 때문에, 아침까지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새벽 6시쯤 되니 부스럭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6시 30분쯤에 두 여자가 순례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순례길에서 언제나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한참을 오니 앞에 가던 외국인 세 사람이 대화하는 것이 들린다. 한 사람이 “작은 벤치”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예”라고 답한다. 나는 생각한다. ‘작은 벤치’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사실 그대로 옆에 있는 나무로 만든 작은 벤치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 말을 들은 친구도, 그 말이 참임을 동조한 것이리라. 그런데 그 말은 ‘예쁘다’는 뜻도 있는 것이 아닐까? 또 ‘앉고 싶다’는 뜻도 있고, ‘만들어 놓은 사람 고마워요’라는 뜻도 있고, 그러나 그것에서 이 이상의 뜻을 유추할 수는 없을까? 말하자면 신과 인간과 순례길과 문화를 연결하는 어떤 그 무엇을.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깊은 사유를 펴나갈 수 없었다. 나의 천박한 지식이여!
하나의 코스를 같이 걸으니 만났던 사람을 또 만나게 된다. 나는 독일에서 온 잘 생간 중년 남자와 캐나다에서 온 다리를 조금 저는 남자를 몇 번째 만나고 있다. 그러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몇 마디 인사를 주고받은 뒤 헤어진다. 한 시간쯤 왔을까 ‘산솔(sansol)’ 마을에 오면서, 이름을 저렇게 지어야 외국인에게 좋지, 원 스페인 이름은 들어도 금방 잊으니 생각하면서 쉬고 있는데, 두 자매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팜플로나 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숙소를 예약하지 못해, 가다가 못 잡으면 밤새워 팜플로나에 가겠다고 했더니 걱정을 해주던 자매가, 그날 정말 걸어가셨냐고 묻는다. 창피하지만 택시를 타고 갔다고 고백했다. 동생이 가게에 들어간 사이에, 나는 언니에게 몇 살 차이가 나냐고 물었다. 3살 차이가 나고, 동생이 학교를 퇴직하는 바람에 순례길에 오게 되었다고 덧붙여 말하는데, 말이 느리고 친근했다. 어디서 교직생활을 했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홍성”이라고 한다. “어, 내 고향이 홍성인데.” 하니까 놀란다. “나도 교직에 있다가 퇴직했어요. 공주사대에 있었지요.” 하니까, 언니는 더욱 놀라며, “저는 상업교육과를 나왔고, 동생은 국어교육과를 나왔어요.” 그런다. 그 사이에 동생이 왔다. 85학번이라고 했다. 내가 “그러면 나한테 수업을 들었을지도 모르는데, 내가 교양과정으로 ‘철학’을 가르쳤는데, 많은 학생들이 들었거든.” 하니까, 동생이 빤히 쳐다보더니 “교수님, 제가 교수님 수업을 들었어요. 그때 교수님은 얼굴도 하얗고 조용하셨던 분으로 기억해요.” 그러면서 너무나 반가워한다. 언니도 나의 강의를 들었다고 기뻐한다. 세상의 인연이란, 이런 곳에 와서 이렇게 만나다니, 나도 놀랐다. “교수님 아시죠, 윤리과 안증자와는 동기에요. 지금 홍성 근처에서 근무하는 우리 사대 친구들과, 수덕사 근처에 공동으로 집을 짓고 살고 있어요” 새로운 소식도 전한다. “그럼 초기 제자들은 많이 기억하고 있지. 안증자는 공부도 잘하고, 공자의 손자 증자처럼 예의가 밝았지.” 그러나 한국의 고집이 센 성씨가 안, 강, 최라고 하는데, 그 제자가 고집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늙은 제자들은 더 늙은 스승이 끝내 걱정이 되었는지, 오늘 먼 길을 가야 하는데도, 구글플레이에 들어가 ‘카미노 닌자’라는 앱도 깔아주고, 몇 번 복습도 시켜주었다. 또 친구들에게 보내게 사진을 찍자고 권한다. 이제 이렇게 쪼그라들었는데 창피하기도 했다.
헤어지면서 나는 속으로 우리 제자들에게 학점을 잘 주었나 은근히 걱정되었다. 그때는 젊었을 때라 학점을 박하게 주었기 때문이다. 또 제자가 ‘그때는 얼굴이 하얗다’라고 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이 말이 과연 무슨 뜻일까? 제자는 반가운 나머지 떠오는 사실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말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멋쩍어서 “순례자의 고통스런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싶어 선크림을 바르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선글라스를 가지고 왔는데 한 번도 쓰지않았다. 나는 배낭 바닥에 잊혀진 채로 있던 선글라스를 끼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202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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