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여행기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10(팜플로나2)

이효범 2024. 4. 23. 03:29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10 (팜플로나2)

o 인문학으로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10 (팜플로나2)

 

구녕 이효범

 

어제 팜플로나에 오는 길은 첫날처럼 고난의 행군이었다. 수비리에서 안 떨어지는 발걸음을 끌며 끌며 오다가 언덕에서 쉬고 있는데, 나보다 한 10년쯤 젊어 보이는 우리나라 중년 남자가, 혼자 지나가다가 말을 건다. 요즘 이 순례길에 단체 여행객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그들은 일정한 구간을 걷고 일정한 구간은 차로 이동한다고 한다. 조금 전에 수비리에도 집단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또 이런 여행상품은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일전에 어떤 성당에서 사기꾼들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관광상품을 소개하고 선수금을 받더니 도망친 경우가 있었다고 덧붙이기도 한다. 소문이지 설마 그런 일이 있겠냐고 의구심을 보였더니, 어떤 할아버지는 800만 원을 사기당해, 성당에 따지러 갔더니, 성당에서는 장소만 빌려주었다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런 사기꾼들이 있으면 그런 사람부터 이 길을 가야 하는데 하면서 내가 웃었다. 그는 나보고 숙소가 어디냐고 묻는다. 나도 모른다고 했더니 한심한 눈으로 쳐다본다. 자기는 3km 떨어진 라라소아나에 예약했다고 한다. 거기서 자고, 내일 팜플로나에 입성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그렇게 계획을 잘 짰느냐고 물으니까, 이 카미노 앱이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모든 정보를 알려준다고 보여준다. 나는 15년 된 산타페 고물 자동차에도 내비게이션을 안 달고 다닌다고 말했다.

 

한참을 오니 정말 라라소아나 마을이 나왔다.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서 마을로 들어갔더니 지금이 스페인의 한낮 낮잠 자는 시간(시에스타)인지, 마을은 죽은 듯이 조용하다. 돌아서니까 한국 청년 한 사람이 인사를 한다. 오늘은 국립알베르게는 몰라도 숙소 잡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알려준다. 그러나 여럿이 쓰는 숙소는 싫어, 라라소아나 들어가는 다리에서 귤 2개를 까먹고 일어서는데, 옆에서 나와 같이 쉬던 미국인 부부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예약을 안 했다는 내 이야기에 웬만하면 여기서 묵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한다. 나는 숙소가 없으면 밤새워 팜플로나까지 가겠다고 웃으며 말하니까 놀라워한다. 한참을 오르니 호텔이 나온다. 가족이 쓰는 2 베드 짜리, 120유로, 방 하나만 남았다고 한다. 아무리 국가에서 돈을 지원한다고 해도, 이 시골 바닥에서 이렇게 펑펑 돈을 쓸 수는 없었다. 길을 재촉했다. 이제 아무도 이 길을 걷지 않는다. 나를 앞질러 가는 순례자도 없다. 아르가 강가를 걷는 길은 참으로 아름다웠지만, 조금은 무섭고 조금은 슬펐다. 얼마나 걸었나, 강가에 조그만 마을 하나가 나타난다. 그러나 단 하나 있는 낡은 호스텔도 빈방이 없다고 한다. 역사도 그렇지만 나 같은 바보는 실패를 반복한다. 실망하여 주스 한 잔을 시키고 짐을 챙기는데, 얼마간은 카미노 길이 자동차 길과 함께 가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또 걷는 길도 따로 없고, 자동차들은 레이스 경주를 하는 것처럼 빠르다. 이러다 여기서 죽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순교가 아니라, 객사로 처리되리라. 나는 오래 고뇌하다가 주스 파는 아저씨에게 택시 하나를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잠시 후 예쁜 여자가 모는 택시가 왔다. 나는 올드시티 근처에 있는 싸고 좋은 호스텔을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난감해하더니 연신 전화를 건다. 한 곳은 방이 없고, 다른 한 곳은 하루만 가능하고, 세 번째 가능하다는 곳은 호스텔이 아니고 호텔이었다. 내가 외모는 초라해도 부자인 것을 안 것 같다. 나는 내리면서 당신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하며, 25유로를 주었다. 그런데 그녀가 잡은 호텔은 백인들만 북적이는, 4개짜리, 최상의 숙소였다. 오늘 밤은 88.18유로, 내일은 120유로.

 

아침에 일어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택시 탄 곳까지 가서, 다시 카미노 길을 걸어서 올까? 그것보다는 여기서 역방향으로 돌아가서 적당한 곳에서 되돌아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11시가 되니 우리 순례자들이 제일 먼저 씩씩하게 성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제 만난 중년이 알아보고 깜짝 놀란다. 밤새도록 걸어왔느냐고 묻는다. “달팽이도 다 기어가는 방법이 있답니다.” 나는 웃었다. 1시간 반쯤 가다가 나는 돌아섰다. 이 정도면 야고보 성인도 용서해 주시지 않을까? 되돌아서는 아르가 강가로 왔다. 이곳 주민들이 걷고, 뛰고, 카누 타고, 낚시를 한다. 아마 우리 순례자들은 이 길을 모를 것이다. 우리 인생도 순례자들처럼 이 지구에 와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간다. 어떤 이는 학문의 길을 가고, 어떤 이는 돈의 길을, 다른 이는 권력이나 예술의 길을 간다. 한 길을 갈 수 있을 뿐, 다른 길의 풍경은 감상하기 어렵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팜플로나 성곽은 하늘을 찌를 듯이 까마득하다. 그만큼 여기가 살기 좋은 고장이고, 예부터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격전지였음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이곳이 바로 나바라 왕국의 수도로 번성했던 도시였다. 또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팜플로나는 시저의 경쟁자인 폼페이우스가 세웠으며, 그의 이름을 따서 도시 이름을 지었다고도 한다. 프랑스인과 무어족, 나바로 원주민들이 이 도시를 사이에 두고 여러 차례 충돌이 있었다. 16세기 필립 2세는, 팜플로나를 스페인 북부 지역에서 가장 난공불락의 도시로 만듦으로써 요새화했다.

 

그러나 이런 역사보다는 서강대학교를 나온 내게는, 무엇보다도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Ignatius of Loyola)가 떠오른다. 이냐시오는 예수회를 만들었고, 서강대학교는 예수회에서 세운 대학이기 때문이다. 서강대학교 도서관 옆에는 로욜라 동상이 있다. 나는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다니면서 로욜라 동상을 마주했다. 이냐시오는 1491년 바스코에서 태어났고 처음에는 일가친척들의 집을 돌며 시중드는 일을 하다가, 나중에 기사가 되었다. 그는 많은 전쟁에 참여하고 다양한 외교 경력을 쌓았는데, 1521년 팜플로나에서 프랑스군의 침입을 막은 일에 참전했다. 그해 520, 전투 중에 포탄을 맞아 오른쪽 다리는 심하게 부러지고 왼쪽 다리도 큰 상처를 입었다. 그는 가족들이 있는 로욜라의 성으로 옮겨졌다. 거기서 이냐시오는 처음에 치료한 다리가 잘못되는 바람에 다시 부러뜨리고 붙이는 대수술을 받았다. 부상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서른 살의 기사는 무기력하게 지난날을 회상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읽을거리를 가져 달라고 요청했다. 기독교 전사들만 있는 성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은 그리스도 전기와 몇몇 성인들의 삶을 기록한 책, 딱 두 권뿐이었다. 세속의 삶에 괴로워했던 청년 이냐시오는 이 이야기들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이냐시오는 몸이 회복되어 혼자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검을 차고 카탈로니아의 유명한 성지인 몬세라트로 순례를 떠났다. 거기서 그는 가지고 온 검을 성모상 옆에 매달고, 만레사 근처에 있는 동굴로 가서, 기도와 참회의 생활을 했다. 이냐시오는 동굴에서 살면서, 서구 세계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끼친 영성 수련이라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거기에 자신이 한 기도를 남겼다. “그리스도의 영혼으로 저를 정화하시고, 그리스도의 몸으로 저를 구하고, 그리스도의 피로 제가 취하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 흐르는 물로 저를 씻어 주시고, 그리스도의 열정으로 저를 평안하게 하시고, , 선한 예수여, 제 말을 들어주소서! 당신의 품 안에 저를 숨겨 주시고, 제가 당신과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사악한 악마에게서 저를 보호하시고, 죽음의 시간에 저를 부르시어, 제가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허락하소서. 당신을 찬양하는 성인들과 함께, 영원무궁토록. 아멘.” 1523, 이냐시오는 또 다른 성지로 순례를 떠났다. 이번에는 팔레스타인이었다. 그 뒤 스페인으로 돌아온 이냐시오는 약 12년 동안, 자기보다 훨씬 젊은 청년들과 함께 공부하는 학생이 되었다. 그는 종교재판소에서 이단 혐의로 두 번이나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는 이단에 대한 무죄를 입증하고 풀려날 수 있었다.

 

팜플로나에는 팜플로나 대성당이 있다. 1220분쯤 순례자 여권 도장을 받기 위해 들르니까, 미사가 거행되고 있었다. 성당은 활기차게 살아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지만, 미사는 거룩하고 아름다웠다. 미사 마지막에 울려 퍼지는 파이프오르간 소리는 너무 장엄하여, 나의 영혼까지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나는 비록 성당에는 쉽게 들어왔으나, 그들의 믿음속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보이지 않는 두꺼운 벽이 앞에 놓여 있다.

 

세속적으로 팜플로나는 산 페르민 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매년 76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 하이라이트는 소몰이 행사이다. 헤밍웨이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소개되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헤밍웨이는 내가 하루 묵었던 부흐게테에 파묻혀서 집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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