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나이 70에 부르는 인생 노래(4, 길)
o 길
구녕 이효범
되돌아보면
먼 길을 걸어왔다.
내가 선택한 길 같기도 하고
누군가가 등을 떠민 길 같기도 하다.
길 앞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다.
분명한 건 죽음이다.
죽음을 이기려고 길가메시는 길을 떠났다.
길가메시는 마침내 대홍수 이후에도 살아남은
우트나피쉬팀을 만나 소리친다.
“내가 당신을 보니, 오 우트나피쉬팀이여!
당신의 모양이 다르지 않군요. 당신은 나와 같아요.“
사람은 자기에게 돌아가기 위해서 길을 걷는다.
가장 먼 길은 어머니 손을 놓쳐
혼자 울면서 걸었던 산길이었다.
걷고 또 걸었지만 제 자리에 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던 길이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
온통 그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길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다.
두 번 걷는 길은 일상의 생활이고
처음 가는 길만이 가슴 설레는 여행이다.
이국의 낯선 도시에서 안개 속을 걷는 길은
먼 연인에게서 온 편지 봉투를 뜯는 것 같다.
실수한 길에는 뜻밖의 선물이 놓여 있다.
새로 이사 온 도시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알지 못하지만 친절하고 짓궂은 선배에 이끌려
개구멍으로 들어가 시간에 늦지 않았다.
그 덕택으로 늙은 나이에 ‘구녕’이라는 호를 받았다.
깨달은 후에 부처는 왜 안락한 열반에 들지 않고
평생 바람 부는 길을 걷다가 그 길에서 죽었을까?
산길을 걷는 만년의 하이데거의 뒷모습은
존경을 넘어 너무나 사랑스럽다.
이제 샛별이 뜨는 새벽에 걷고 싶은
산티아고 순례길이 남아 있다.
누군가도 갈 수 있지만 누군가만 가는 길
내면으로 내면으로 눈을 감고 걸어가면
심연의 밑바닥에 무엇이 존재할까?
자기의 그림자와 걷는 길도
꽃길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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