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존 롤즈를 찾아서3
구녕 이효범
정의(正義, justice)는 고대로부터 늘 문제가 되어 왔다. 이미 그리스의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신화’에도 이 문제가 잘 나와 있다.
“아주 먼 옛날 신들만이 살고 있었다. 땅에는 아직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없었다. 때가 되자 신들이 흙과 불로 이것들을 만들었다. 이 일이 거의 끝나자 신들은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 형제를 보내어 이들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주나 능력을 나누어 주게 하였다. 에피메테우스는 어떤 동물에게는 강한 힘을 주고, 어떤 연약한 동물에게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또 어떤 동물에게는 발톱이나 뿔 같은 무기를 주고, 무기를 받지 못한 동물에게도 그 나름대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그는 이 일을 ‘보상의 원리’에 따라 진행하여 어떤 동물도 멸종되는 일이 없도록 배려하였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에게는 줄 선물이 없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만이 신의 선물을 받지 못한 채 여러 짐승들의 위협 속에서 떨고 있는 가련한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신들이 살고 있는 처소에 몰래 들어가서 불과 지혜를 훔쳐다 주었다. 사람이 함께 사는 데 필요한 ‘정치기술(techne politike)’은 훔쳐 올 수 없었다. 인간은 프로메테우스가 훔쳐 온 지혜로 언어와 이름 그리고 집과 의복과 신발과 처소를 만들고, 불을 이용해 땅에서 얻은 곡물을 음식으로 만들 수 있었다.
몇몇이 떼를 지어 흩어져 살던 인간은 짐승들에게 잡아먹히기 일쑤였다. 그래서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모여 성곽을 건설하고 함께 살았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모여 사는 데 필요한 정치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상처만 줄 뿐이어서 다시 흩어지고 말았다. 또 다시 맹수들의 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인간 종족이 없어질 것을 염려한 제우스가 전령 헤르메스를 보내 인간들이 함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연대를 맺고 하나가 되는데 필요한 ‘정의감’과 ‘타인을 존경하는 마음’을 나누어 주도록 하였다. 그런 뒤에 이 두 가지 덕목을 갖추지 않은 사람은 사형에 처하도록 하였다.“
이 신화에 의하면 정의감은 사람이 사회를 이루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사람이 정의로울 때 서로 연대가 가능하며 연대할 때만이 사회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도둑 사회도 획득한 장물을 서로 공정하게 나눌 때 유지될 수 있다. 어떤 도둑이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이 이득을 착복한다면 다른 도둑들의 분노를 살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남의 물건을 훔치는 이런 비도덕적인 도둑 사회에도 정의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더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정의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여기서 그는 정의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개인의 정의와 국가의 정의를 논하면서, 이상 국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는 먼저 당시에 유행하고 있던 정의에 관한 견해를 비판한다. 당시에 정의는 부채의 반환이라는 견해,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는 견해, 정의는 약자의 이익 혹은 약자에 의한 사회계약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이런 견해들을 비판하면서 플라톤은 정의를 개인을 중심으로 고찰하는 어려운 방식을 취하지 않고, 국가라는 관점에서 고찰한다. 그는 선한 국가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국가의 건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국가의 건전성이 다름 아닌 정의라고 결론했다. 그런 건전성 즉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어떤 국가의 구조와 형태가 이런 정의의 상태에 부합하는가? 이것이 그의 문제이고 탐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플라톤은 개인과 국가가 별개이거나 대립되지 않고 동일한 구조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건강한 개인을 통해서 건강한 국가가 가능하며, 거꾸로 국가가 정의로워야 개인도 정의로울 수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먼저 플라톤은 사람의 인간성을 구성하는 것은 영혼이라고 말한다. 그런 영혼은 본래 이데아의 세계에 살고 있었는데, 지상에 떨어져서 육체라는 무덤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전혀 본질을 달리하는 영혼과 육체라는 이원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런데 영혼도 이데아와 관련되는 죽지 않는 부분과 육체에 관련되는 죽는 부분으로 되어 있다. 불사(不死)의 부분이 이성이며, 가사(可死)의 부분이 기개(의지)와 욕망(정욕)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혼은 이성이라는 마부가 기개와 욕망이라는 두 마리 말이 끄는 마차를 끌고 가는 모습이다.
이성의 덕은 지혜인데 그것은 정신이 지닌 사유의 능력을 완전히 사용하는 것이다. 기개의 덕은 용기인데 그것은 전투적인 용기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행위에 필요한 용기이다. 욕망의 덕은 절제인데 무한한 욕망을 자제하고 통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영혼의 이 세 부분이 각각 맡은 바 역할과 임무를 다하고, 서로 조화와 통일을 유지하는 일이다. 마치 이성이라는 마부는 마부의 말을 잘 듣는 기개라는 말과 말을 잘 안 듣는 욕망이라는 말을 적절히 조절하여, 마차가 부서지거나 쓰러지지 않고 목적지에 잘 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과 같다. 이것이 정의의 덕이다.
플라톤에 있어서 이런 지혜, 용기, 절제, 정의는 인간에게 네 가지 가장 중요한 덕(四主德)이다. 이런 덕들은 영혼의 지배적인 부분인 이성이 피지배적인 부분인 기개와 욕망을 잘 통제하고 지배할 때 성립한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덕은 지혜이며, 가장 포괄적인 덕은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개인에 대한 분석은 그대로 국가에 적용된다. 플라톤은 국가는 인간의 자연적인 본성의 요구에서 탄생한 것이지, 홉스가 말하는 것처럼 결코 인위적인 계약의 결과는 아니라고 보았다. 인간은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를 자력으로 모두 충족시킬 수 없다. 본능적으로 서로 의지하고 서로 결합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국가의 목적은 인간의 공동체적 생활을 조직적으로 향상시켜 덕 중에 최고의 덕인 선(善)의 이데아를 실현하는데 있다.
이런 국가는 개인의 영혼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세 계층으로 조직되어 있다. 국가를 통치하는 통치 계층, 국방을 담당하는 무인 계층, 의식주의 생산을 담당하는 생산 계층이 그것이다. 인간의 영혼처럼 국가의 이성적인 부분은 지배자 계층이고, 기개적인 부분은 무인 계층이며, 정욕적인 부분은 생산 계층이다. 이와 같이 세 계층에 의해 구성된 국가가 이상국가(理想國家)가 되기 위해서는 각각의 계층은 각각의 덕이 필요하다. 그것이 영혼이 경우처럼 지혜, 용기, 절제이다. 플라톤은 이 세 계층이 지배자의 지혜에 의해서 통합적인 기능을 완전히 이룰 수 있을 때 국가의 정의가 실현된다고 보았다. 반면에 생산자가 그의 부의 힘이나 폭력 또는 다수를 근거로 하여 지배 계층에 도전하거나, 무인(武人)이 치자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본분을 이탈한다면, 그것에 의해 생기는 혼란은 국가를 파멸로 이끈다. 이것은 국가의 최대 불행이다. 플라톤은 이것이 부정의(不正義)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플라톤의 정의는 개인에 있어서나 국가에 있어서 지혜, 용기, 절제의 삼덕을 근본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덕이다. 오히려 정의는 그들의 관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플라톤의 정의관은 전체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혹은 혁명사상가로 오해 받기도 하고, 심지어 그를 가리켜 ‘그리스도 이전의 크리스천’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특히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플라톤의 정의관에는 인도주의적 발판(humanitarian basis)이 상실되었다고 비판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만일 지배자가 지배하고, 노동자는 일하고, 노예는 노예로 있으면 그 국가는 정의의 나라이다’라고 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계층 사이에 엄격한 구분이 있으며, 국가의 운명과 지배자의 운명이 동일시되고 있으며, 그의 『국가』에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것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포퍼는 인도주의적 정의론에는 평등 원칙, 개인 존중, 시민의 자유에 대한 국가의 보호라는 3요소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생래적 특권의 원칙, 전체주의 일반원칙, 국가의 안정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 개인의 임무 내지 목적이어야 한다는 원칙들이 있기 때문에, 전체주의의 저의가 있다고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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