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혜능을 찾아서3
구녕 이효범
혜능은 어떤 사미승이 신수가 지은 게송을 읊는 소리를 들었다. 글자를 모르는 혜능은 게송이 적힌 벽으로 가서, 별가 벼슬을 하던 사람에게, 자기가 지은 게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보리(깨달음)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 맑은 거울도 대가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느 곳에 먼지가 붙겠는가?(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矣)” 혜능은 자성이 깨끗하고, 생멸하지 않으며, 완전하며, 흔들림이 없고, 만법을 만드는 존재임을 본 것이다. 홍인은 한밤에 혜능을 불러 인가하고, 달마로부터 전해오던 의발(衣鉢)을 전하며, 6대 조사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진리를 잘 유지하고, 널리 중생을 구원하며, 장래에 잘 퍼트려 단절시키지 말라고 이르셨다. “중생이 찾아와 깨달음의 씨앗을 뿌리니, 씨앗 뿌린 곳에서 깨달은 자가 다시 나온다. 중생심이 없으면 깨달음의 씨앗도 없고, 불성이 없으면 깨달음이 나오지도 않는다.” 이때가 혜능 나이 24세였다. 구름같이 많은(700명) 홍인의 문하생 중에서 남쪽에서 온 한 젊은 오랑캐가 법을 전수받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당연히 많은 제자들이 혜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죽이려고 했다.
혜능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가 다시 모습을 보인 것은 나이 39이 되어서였다. 15년 동안 그의 은둔생활은 신비로 가려져 있다. 단지 알려진 것은 그가 추격하는 악인들을 피해 사냥꾼 무리 속에서 지내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그 무리 속에서 혜능은 때때로 법을 설하기도 하고, 그물에 걸린 짐승을 놓아주기도 하고, 나물을 고기 굽는 냄비에 붙여서 익혀 먹기도 했다. 때가 되었다. 혜능이 광주 법성사를 찾아갔는데, 마침 인종(印宗) 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바람이 불어 깃발이 움직였다. 그것을 보고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라고 하고, 다른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라고 끝없이 논쟁하고 있었다. 혜능이 여기에 끼어들었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스님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혜능의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마치 선문답하는 것 같다. 혜능은 깃발이나 바람의 어느 한쪽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것에 집착하여 끝없이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心)이라는 전혀 다는 것으로 양 극단을 해결하고 있다.
혜능의 논법을 보고 있으면 혜능보다 앞서 살았던 우리나라의 위대한 스님 원효가 생각난다. 원효는 화쟁국사(和諍國師)라고 불렸다. 그는 불교 각각의 종파가 편견을 가지고 자기들이 신봉하는 사상만이 옳고 다른 종파의 입장은 그르다고 하는 잘못된 논쟁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했다. 원효가 살던 시대는 중국으로부터 다양한 종파의 사상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와, 대승과 소승, 중관과 유식, 불성의 유무(有無) 등 서로 다른 이설들이 똑같은 부처님의 교설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었다. “여래가 세상에 있었을 때에는 이미 원음(圓音)에 힘입어 중생들이 (한결같이 이해하였으나) --- 공공(空空)의 이론들이 구름같이 일어나 혹은 자기들의 종파는 옳고 다른 이의 종파는 틀리다고 말하며, 혹은 자기들의 언설은 그러하고 다른 이들의 언설은 그러하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편견으로) 결국에는 황하와 한강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원효는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에서 공(空)과 유(有)의 두 가지 중 하나에 집착하는 견해를 화쟁시킨다. 그리고 모든 중생에게는 불성이 존재하는가(有性), 그렇지 아니한가(無性) 하는 견해를 화쟁시키고 있다. 원효는 그 화쟁의 해결을 일심(一心)에 두고 있다. 원효가 의상과 함께 당으로 유학 가는 길에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스스로 깨달은 내용이 바로 일심이다. “마음이 생기면 모든 것이 생기고, 마음이 소멸하면 모든 것이 없어진다.(心生故種種法生 心滅故種種法滅)” 불교의 핵심을 파악한 그는 유학을 갈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원효는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서 “여래가 설한 바 일체의 교법(敎法)이 일각(一覺)의 맛에 들지 않은 것이 없다. 일체 중생이 본래 일각이었지만, 다만 무용(無用)으로 말미암아 꿈 따라 유전하다가, 모두 여래의 일미(一味)의 말씀에 따라, 일심의 원천으로 마침내 돌아오지 않는 자가 없음을 밝히려 한다.”라고 논하고 있다.
인종법사는 이 범상치 않은 방문객에 놀랐다. 그리고 예를 갖추어 정식으로 6조의 출현을 만인에게 알렸다. 인종이 혜능에게 물었다. “황매산의 오조가 법을 부촉하실 때 어떻게 가르쳐 주셨습니까?” 혜능이 말했다. “가르쳐주신 것은 없습니다. 다만 견성(見性)을 말할 뿐이고, 선정(禪定)과 해탈(解脫)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왜 선정과 해탈을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법(二法)이기 때문에 불법(佛法)이 아닙니다. 불법은 불이법(不二法)입니다.” 혜능은 신수와 다르다. 점수(漸修)나 점오(漸悟)를 말하지 않는다. 결단코 돈오(頓悟)이다. 모름지기 불법을 듣고 단박에 깨달아야 한다. 견성(見性)하면 성불(成佛)한다. 그래서 혜능의 선종은 최상승의 근기를 지닌 자를 위한 돈교(頓敎)이다.
'이효범의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 롤즈의 찾아서1 (1) | 2022.12.29 |
---|---|
혜능을 찾아서4 (1) | 2022.12.26 |
혜능을 찾아서2 (0) | 2022.12.24 |
혜능을 찾아서1 (0) | 2022.12.23 |
스피노자를 찾아서6 (0) | 2022.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