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세종에서 보내는 편지(부부관계에 대해서5)
구녕 이효범
나이가 들면 우리는 왜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려고 하는가? 결혼은 필수인가 아니면 선택인가? 디시 한번 우리는 결혼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결혼은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종족보존의 본능에 대한 문명화된 의식(儀式)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짝을 찾아, 그와 하나가 되어, 자손을 번성시키라고 명령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성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을 자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사람만이 가진 이성적(理性的)인 방식으로 다시 말한다면, 결혼은 고통이나 외로움 같은 결핍을 극복하여 쾌락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더 나아가 사람은 결혼을 통해 자신을 실현하려고 한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은 행복이나 완전성의 실현이다. 결혼은 그런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예외는 언제나 존재한다) 결혼이 이런 목적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부부가 만든 따뜻한 가정 속에서 고통이나 외로움을 잃는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배우자가 됨으로써 진정으로 배려와 책임감을 키울 수 있고, 아이들의 부모가 됨으로써 어른다워질 수 있다. 사람은 홀로 성숙할 수 있는 독존(獨存)의 존재가 아니라, 남과 함께 성장해야 하는 공존(共存)의 존재이다.
그런데 결혼이 거꾸로 가는 불행한 경우가 생긴다. 자유로운 사람을 도망칠 수 없는 쇠사슬로 묶어버리고 고귀한 영혼까지 파멸시킨다. 결혼이 본래의 목적성을 상실한다면 우리는 병을 치료하듯이 그 원인을 진단하고 치료해야 한다. 꾸준히 참으며 치료한다면 많은 병은 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런 결혼은 당연히 무효이며 응당 거부되어야 한다. 이혼은 최후의 선택이지만 못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혼이 진정으로 서로를 해방시키고 인간적인 삶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올바른 선택일 수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젊은 날 이성(異性)에 빠지게 했던 사랑의 묘약의 효과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사랑할 때 나오는 우리 두뇌의 로맨틱한 화학 작용은 너무나 짧다. 그러니 본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집에 살기 때문에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서로 똑같을 수 없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오해가 갈등을 부르고, 서운함이 증가하면서 사는 것이 재미없게 된다. 인생의 좋은 시절은 다 가고 의무만이 남게 된다. 사르트르가 타인을 지옥이라고 말했지만, 배우자가 원수 가 된다.
그러나 부부 사이가 아무리 냉랭해지더라도 젊었을 때 눈이 멀어 배우자를 선택한 것이 큰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굳게 믿어야 한다. 결혼의 기반을 이루는 최초의 선택을 부정한다면 결혼 전체가 정당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투사(projection)에 의해 상대방을 선택한다고 한다. 어떤 동기에서 상대방을 선택하였던지 간에, 현재의 배우자가 나에게 가장 맞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 다른 점은 상대방의 고유한 특성이지 잘못은 아니다. 다르다는 것이 서로를 나무라는 이유가 된다면,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싸움이 끊이지 않게 될 것이다.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한 후에, 서로 상대방을 탓하기 이전에 자신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 그런 다음 솔직하게 대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진정한 대화는 두 사람을 가깝게 만든다. 대화란 우리의 느낌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사물이나 활동 또는 다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참된 대화가 아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면 마음의 장벽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의견이 다를 수가 있고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신뢰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대화가 유일한 방법이다. 어떤 사람과 아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기 전에 자기 자신한테, 나는 왜 이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가? 그리고 바로 지금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를 물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의 문을 열고 나누는 대화는 인간적으로 또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원천이 된다. 우리는 무(無)나 자기 스스로 혼자서는 성장할 수 없다.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누군가와 함께 나누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아실현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먼저 성(性)에서 오는 근본적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남자는 인류의 탄생 이래 먹이를 쫓는 사냥꾼이었고, 여자는 집과 자식을 돌보는 파수꾼의 역할을 맡아왔다. 이것은 인간의 유전자에도 각인되어 성에 따라 사고체계가 달라졌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마치 전혀 다른 화성과 금성에서 온 사람들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파수꾼 뇌 모드의 여자들은 말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기 보다는 감정을 해소하려고 한다. “내가 왜 당신이랑 결혼했는지 몰라.” “동서는 어떻게 사람이 그래?” “있잖아, 내 친구 아무개, 그 애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라는 아내의 불평은 스트레스 해소용이다. 남편이 정색을 하고 대응할 필요는 없다. “맞아.” “당신이 서운했겠다.” “그래?” 정도가 적절한 반응이다. 또한 파수꾼의 뇌 모드는 상대편이 하고 싶은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다. 따라서 동창모임에 다녀온 아내가 “걔는 아주 명품으로 휘감았더라. 키가 작아서 하나도 안 어울리면서.” “돈 좀 있다고 어찌나 잘난 척하는지 정말 아니꼬워서 못 보겠더라.”고 툴툴거린다면, 남편의 대답은 “당신도 부잣집에 시집갈 수 있었는데 나 만나서 고생만 하네. 그런데 그 친구는 좀 심했다. 당신이 기분 나쁠만 하네.”여야 한다.
반면 남자의 사냥꾼 뇌 모드는 직설적인 표현을 선호하며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지 못한다. 따라서 남편이 가사 분담을 하지 않아 결혼생활이 고달프다면 논리적으로 가사 분담을 요청해야 한다. 남편이 언젠가는 고생하는 것을 알아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또 남자들은 한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 남편이 스포츠 중계를 본다거나 컴퓨터 게임을 할 때 아내가 친정 동생의 결혼식 날짜를 가르쳐 주었다면, 남편은 “그래. 알았어.”라고 대답하지만 전혀 아내의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이 몰두하던 일이 끝난 다음에 “중요한 일이 있어.”라고 주의를 환기시킨 뒤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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