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115, 구멍)

이효범 2022. 10. 5. 07:11

o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115, 구멍)

 

o 구멍

 

구녕 이효범

 

목이 말라 우물을 팠습니다.

큰 구멍이 생겼습니다.

이 구멍을 제가 만들었을까요?

나는 단지 흙과 돌을 파냈을 뿐입니다.

구멍을 만든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구멍은 만들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구멍이 거기 있었을까요?

목이 마를 때는 분명히 없었습니다.

나는 구멍을 파낸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단지 흙과 돌을 파냈을 뿐입니다.

도둑처럼 구멍이 몰래 들어왔습니다.

구멍이 들어오니 우물이 되었습니다. 

 

후기:

어제는 단양에 있는 소백산자연휴양림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정감록에 명당으로 나와 있다는 사자자리 숙소에서 묵었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려 별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소백산 둘레길인 자락길을 걸어보려고 혼자 우산을 들고 나섰지만, 길은 질척거리고 아무도 없는 산길에, 뱀도 나올 듯 무서워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자연휴양림 가까이에는 온달성이 있고, 그 밑에는 온달공원이 있었습니다. 온달공원에는 영화세트장으로 조금 낡기는 했지만 고구려 궁궐이 웅장하게 세워져 있고, 온달동굴과 온달관이 함께 있었습니다. 온달관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평강공주와 바보온달 이야기가 다채로운 방식으로 재미있게 꾸며져 있고, 온달장군과 단양의 관계가 설명되고 있었습니다. 평강공주는 남편 온달에게 시장에 가서 말을 살 때, 개인이 기른 말을 사지 말고, 국가에서 관리하다가 허약해져서 내놓은 군마를 고르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정성스럽게 길러 용맹한 무사가 된 온달이 타게 하였습니다. 그 글을 보고 나는, 평강공주가 얼마나 지혜로운 아내인지. 그리고 얼마나 정성을 들여 남편을 내조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단양 근처에는 고수동굴을 비롯하여 많은 동굴들이 있습니다. 온달동굴은 그리 깊지는 앉았지만 동굴 바닥에 형성된 시내로 쾌 많은 물이 흘렀습니다. 퍽이나 새롭고 신비로웠습니다. 동굴도 그 나름대로 수만 년 동안 만들어지는 스토리가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익숙하지 않아, 동굴을 나오면 동굴을 지나면서 보았던 기기묘묘한 형상들 대부분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자연이 만든 큰 구멍을 들어갔다 나오면서 구멍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