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112, 가을, 서점에서)
o 가을, 서점에서
구녕 이효범
남의 말이 들리지 않는 나이
병원은 가깝고 서점은 멀다.
사각형 문장을 마구 씹던
이가 빠진지도 오래이다.
태풍이 지난 가을 하늘
눈부신 구름을 따라가면
거기 그 자리에 들국화처럼
낯익은 서점 하나
시집을 사며 설렜던 마음
부치지 못한 가여운 편지 뭉치들
마지막 편지는 무엇이어야 하나.
어두운 마음으로 책속을 서성이면
당신은 가깝고 길은 멀다.
후기:
서점에 간지 오래 되었습니다. 이미 사놓고 보지 못한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또 새 책들을 사려고 하는 것은 대단한 허영인 듯합니다. 그리고 눈도 시원찮고 남의 말도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 이 나이에, 새 책들을 사서 도대체 무엇을 하자고 하는 건지 대책이 서지 않습니다.
그러나 버릇처럼 이따금씩 서점이 궁금해집니다. 오래 안 가면 인생에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빼놓고 사는 것 같아 불안해집니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모든 문제를 쉽게 해결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서점에서 어렵게 했습니다. 발로 뛰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이효범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114, 계룡산4) (0) | 2022.09.30 |
---|---|
아마 술버릇이었을 것이다 (0) | 2022.09.14 |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111, 나무와 매미) (0) | 2022.08.20 |
재마난 후기가 달린 시(110, 남자 나이 69) (0) | 2022.08.04 |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109, 잡고 싶은 말) (0) | 2022.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