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

19-2. 모든 존재의 근거인 한 마음

이효범 2022. 5. 3. 06:41

19-2. 모든 존재의 근거인 한 마음

 

원효의 사상은 그 근본을 일심一心에 두고 있다. 원효가 의상과 함께 당으로 유학가는 길에 해골바가지 물을 마시고 스스로 깨달은 내용이 일심이었다. “마음이 생기면 모든 것이 생기고 마음이 소멸하면 모든 것이 없어진다.(心生故種種法生 心滅故種種法滅)” 불교의 핵심을 파악한 그는 유학을 갈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원효는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서 여래가 설한 바 일체의 교법敎法이 일각一覺의 맛에 들지 않은 것이 없다. 일체 중생이 본래 일각이었지만, 다만 무용無用으로 말미암아 꿈따라 유전하다가, 모두 여래의 일미一味의 말씀에 따라 일심의 원천으로 마침내 돌아오지 않는 자가 없음을 밝히려 한다.”라고 논하고 있다.

마음을 중시하는 이론의 선구는 원시 불교의 심위법본설心爲法本說이다. 이 설은 모든 법 가운데 마음이 가장 중요하여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심위법본설에서부터 불교의 심식心識 이론이 다양하게 전개된다. 그리하여 불교의 모든 이론의 발달은 심식 이론의 발달사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특히 대승 불교에 이르면 반야경般若經, 화엄경華嚴經 등에서 유심 사상唯心思想이 나타나고, 해심밀경解心密經이나 유가경瑜伽經, 섭대승론攝大乘論 등을 중심으로 하여, 모든 것이 식뿐이라는 유식 사상唯識思想도 나타나게 된다.

유식 사상에 따르면 사람의 마음은 팔식八識으로 이루어졌다. 마음의 가장 전면에 드러나는 의식은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으로 이것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감각적 의식을 가리킨다. 이런 전오식前五識은 제6식인 의식意識 의해 총괄된다. 이런 의식들은 한층 더 심층에서 자아 의식이라고 불리는 제7식에 의해 지배된다. 7식은 마나스Manas식인데 생명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을 무의식 중에 나타내는 의식이다. 7식은 아알라야Alaya식이라고 하는 한층 더 심층에 있는 제8식과 연결된다. 8식은 사람의 마음 속 깊이 감추어진 모든 심리 활동의 원천이다. 이 식은 본래 순수하게 맑고 깨끗하며 참되고 고요하고 한결같다. 우리는 이런 마음의 본래 바탕을 진여眞如라고 형용하고, 이라고 부른다. 본래부터 있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그 각은 본각本覺이라고도 한다. 이런 마음이 우리 중생에게는 오랜 옛날부터 물려받은 좋지 못한 버릇의 힘, 즉 무명無明의 습기 때문에 가리어 있다. 이 상태를 불각不覺이라고 하지만, 일단 어느 계기가 되어 순수한 본 바탕이 드러나기 시작할 때에는 시각始覺이라고 불린다. 이런 진여한 마음이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이다. 그래서 유식 사상에서는 제8식을 부처 즉 여래如來의 모태나 여래가 간직된다고 하여 여래장如來藏이라고 부른다.

원효가 말하는 일심은 이런 모든 중생은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如來藏)을 갖고 있다는 여래장 사상과 연결된다. 원효의 일심 사상의 주된 근거인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과 금강삼매경金剛三昧境이 여래장 사상의 핵심을 드러내는 중요한 경전들이라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데에서, 우리는 원효의 일심이 여래장 사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효가 일심을 중요하게 생각한 까닭은 그것이 우리의 이상적인 자리, 곧 돌아가야 할 원초적인 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불교에서 이상으로 삼는 경지인 부처의 경지가 바로 일심으로 돌아간 경지이다. 이것은 또한 증 즉 깨달아 얻은 것에 돌아간 것이라고 한다.

 

이라고 하는 것은 심을 증한 데에 들어간 것이니, 무심無心의 심이 입할 수 없는 곳에 들어간 고로 불사의不思議하다.

 

그리고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인 묘각위妙覺位도 역시 일심의 원천에 돌아가 있는 것이며, 부처가 깨달음의 경지에서 갖는 지혜도 또한 일심뿐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경계가 무한하지만 다 일심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부처의 지혜는 모양을 떠나 마음의 원천으로 돌아가고, 지혜와 일심은 완전히 같아서 둘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본래의 자리는 일심이고 우리의 목적인 이상적 경지는 일심이다. 원효는 이런 일심이 모든 것의 근거가 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일심은 통틀어 일체의 염정제법染淨諸法의 의지依止하는 바 되기 때문에 곧 제법의 근본인 것이다.” “티끌(번뇌)의 통상通相을 완전히 파악하므로 이름하여 심왕心王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본래의 일심이 모든 법의 기본적인 원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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