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101, 모순)

이효범 2022. 4. 11. 07:37

o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101, 모순)

 

o 모순

 

구녕 이효범

 

우리가 태어난 게 모순이다.

우리 몸에 마음이 주어진 게 모순이다.

변화하는 세상에

변화하지 않으려는 게 모순이다.

동아줄로 목구멍을 조여 매던

코로나가 물러간 맑은 아침

전지전능한 신도 만들 수 없다는

모순을 생각하는 게

모순이다.

 

o 후기

46일 수요일 저녁, 경로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코로나가 찾아온 듯 했습니다. 머리가 무겁고 몸이 떨렸습니다. 내일 새벽에 고등학교 동기들과 골프를 쳐야 하는데 혹시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질병을 옮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몹시 불안해졌습니다. 급히 약국에서 사온 자가진단키드로 검사를 하니 빨간 두 줄이 나왔습니다. 미안한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아내는 급히 부천에 사는 큰 딸 집에 올려 보냈습니다. 또 금요일 등산모임과 다음 주 월요일 12일로 대학 교수 친구들과 골프를 치기로 한 것도 취소했습니다.

47일 목요일, 동네 병원에 가서 코로나가 확실하다는 진단을 받고 약을 타왔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에 먹는 알약 4개 묶음 16개와 그것과 같이 먹는 진해거담제 시럽 16개 입니다. 몸이 피로한지 안마의자에 앉아 안마를 받는 짧은 시간에도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곤 했습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목의 고통과 기침이었습니다.

8일과 9일에도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었습니다. 식사는 자식들이 휴대폰으로 주문한 음식이 아파트 현관까지 배달되는 바람에 해결하였습니다. 갈비탕을 제일 많이 먹었습니다. 우리의 갈비탕이 이렇게 맛이 있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토요일 오후 2, 채양이 큰 모자를 뒤집어쓰고, 평소에 잘 쓰지 않던 선글라스와 면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하고, 사람을 피해 금강가를 걸었습니다. 약 한 시간 가량 느린 걸음으로 쉬지 않고 걸었는데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410일 일요일 아침, 4시 경에 눈을 떴는데 목의 통증이 사라진 듯 편안해졌습니다. 물을 넘길 때는 아직도 통증이 여전하지만 확실히 호전되었습니다. 어제 밤에는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나는 최근에 거의 생각지도 않았던, 허먼 멜빌(Herman Melvill)백경이라는 소설 밑에 깔린,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의 초기 수도자가 되어, 목공소와 같은 아주 검소하고 경건한 도장에서, 시간을 대패날로 깎으면서,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과 고통과 죽음 같은 것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