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98, 고난)
o 고난
구녕 이효범
하나의 고난이 풀리면
다른 고난이 이어진다.
뱀처럼 자기 꼬리를 물고 똬리를 틀고 있다.
나의 머리를 물어뜯고 있는 질긴 고난이여,
너 때문에 더 큰 고난은 모퉁이에 숨어있다.
그러니 아예 나랑 같이 살자.
한 이불 속에서 살 섞으며 오래 오래 살자.
천하에 몹쓸 병도 아니고
삼대까지 씨 말리는 죽을죄도 아닌데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눈망울은 할리우드 액션이다.
인생은 빨간 카페트 깔린 연회장도 아니고,
바닥까지 보이는 산중의 호수도 아니다.
우리가 목마르게 기다리는 세상은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을 것이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로 대문을 걸어 잠그고
홀로 자기 내면으로 늪처럼 빠져 들어갈 때
우리를 광장으로 불러내는 고난은 눈사람이다.
달려가 반갑게 악수를 청하고 검은 외투를 벗어주면
고난은 켭켭히 엉킨 똬리를 풀고
비어있는 여린 마음을 드러낸다.
고맙다, 나의 친구 고난이여,
너로 인해 나는 두 눈을 바로 뜰 수 있었다.
손바닥에 주어진 햇살도 비로소 만질 수 있었다.
후기:
고난은 인생을 고통스럽게도 하지만 성장하게도 합니다. 고난 없는 인생은 불가능합니다. 존재 자체가 음과 양으로 되어 있듯이 인생 자체는 운명적으로 고난과 기쁨이 서로 엮여서 짜여진 천 조각입니다. 그러니 고난을 피하는 것은 생을 포기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럴 바에는 오히려 고난과 슬픔을 사랑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껴안는 영웅적 태도가 더 현명할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고난은 자연스럽게 극복되고 우리는 고난이 주는 ‘영혼의 성장’이라는 보너스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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