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25, 모두 어디 갔는가)

이효범 2020. 4. 4. 12:17

 

o 모두 어디 갔는가

 

구녕 이효범

 

월요일, 학교에 학생이 없다.

화요일, 거리에 통행인이 없다.

수요일, 식당에 직장인이 없다.

목요일, 관광지에 관광객이 없다.

금요일, 백화점에 손님이 없다.

토요일, 경기장에 선수가 없다.

일요일, 성당에 신자가 없다.

모두 어디 갔는가.

 

그래도 어김없이 봄이 온다.

봄이 오니 나무 더욱 푸르다.

나무 더욱 푸르니 새소리 더욱 곱다.

새소리 더욱 고우니 하늘 더욱 높다.

 

그런데 모두 어디 갔는가.

내 머리 속엔 공포만 가득하다.

 

후기:

현재 세계의 인구는 78억 명이다. 지구라는 밀폐된 작은 우주선에 너무 많은 인원이 탑승하고 있다. 홀로 무한한 허공을 비행해야 할 외로운 비행선에 기름은 바닥나고 머지않아 식량도 고갈될 형편이다.

이런 우주선에도 일등석과 이등석이 나누어져 있다. 일등석은 여유가 있고 기내식은 먹고 남을 정도로 풍족한 편이다. 그러나 이등석은 아우성이다. 먹을 것은 모자라고, 앉을 자리는 좁고, 화장실은 언제나 만원이다.

그런데 인구가 너무 빽빽하여 더러운 이등석의 어느 구석에서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지금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간다. 칸막이도 없어 막을 방법이 없다. 일등석과 이등석을 나누는 커튼도 속수무책이다. 우주선을 몰고 가는 기장도 전염병에 감염되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이다.

이제는 머리를 맞대야 한다. 너 죽고 나만 살 형편이 아니다. 모든 국가는 문을 닫아걸고 고립으로 가서는 안 된다. 트럼프, 아베, 시진핑, 푸틴 등 세계 지도자들이여! 자국에만 눈을 돌리지 말고, 멀리 보고, 깊게 생각하고, 전체적으로 살펴서 이 이 지구라는 우주선을 살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환경도 우리 못지않은 소중한 동반자이다. 인간이라는 자연을 구성하는 하나의 종은 그들을 너무 무시하고 마구 대해왔다. 우리가 일등석과 이등석을 나누어 너무나 다른 삶을 산 것이 잘못이듯이, 자연과의 관계도 너무나 왜곡되어 있었다.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시급한 과제이다.

자연과의 왜곡으로 생긴 전염병으로 인해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고 우주선이 급락하고 있다.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철학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변화만이 이 재앙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