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o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91, 금샘탕)

이효범 2021. 12. 18. 09:04

o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91, 금샘탕)

 

o 금샘탕

 

구녕 이효범

 

잊혀진 사람처럼

낯선 곳에서 만난 금샘 목욕탕

다 때가 있다.”

나무 입간판 위에 유혹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옆구리에 때가 덕지덕지 끼어 있어도

나는 들어가지 않는다.

목욕합니다.”

입구 유리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돈이 있어도 나는 들어가지 않는다.

영업중.”

문 잡이 옆에 조그만 팻말까지 붙어 있다.

그래도 나는 들어가지 않는다.

 

명절이 한 참 남은

지금은 씻을 때가 아니다.

 

 

후기:

아파트가 전국을 짓누르고 있어도 아직도 간간이 목욕탕이 보입니다. 한 때는 우리 생활의 필수 시설로서 호황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명절을 앞두고는 너무 많은 손님들이 몰려들어 줄을 서서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호황이었던 목욕탕은 언젠가부터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찾는 발길이 거의 끊겼습니다. 부산 금정구를 걷다 보니 마치 골동품처럼 목욕탕이 눈에 들어와, 옛날 애인을 만난 듯 퍽이나 반가웠습니다. 목욕탕 문 옆 나무 입간판에 쓰여져 있는 또렷한 글씨가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다 때가 있다.”

그렇지요 사람은 다 때가 있습니다. 이제 백발이 된 나는 좋은 때가 다 지났습니다. 나 자체가 하나의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서글픈 마음으로 목욕탕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그냥 음식점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