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군자君子와 소인小人
공자는 인간은 누구나 하늘로부터 인이라는 본성을 부여받았으나 후천적인 영향으로 어리석고 현명함에 차이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사람을 생지生知, 학지學知, 곤지困知, 하우下愚라는 네 등급으로 나누었다. 생지는 태어나면서 총명함으로써 능히 문리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것이고, 학지는 널리 학문을 닦고 언행과 예절을 바르게 하여 이치를 터득하는 것이고, 곤지는 애써 지식을 아는 것이고, 하우는 자포자기하고 공부하지 않는 경우이다. 이와 같은 등급의 차이는 있으나 누구나 자강불식自强不息하여 노력하면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공자의 신념이다.
공자는 자신이 쉼 없이 진리를 탐구하며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데 열중하여 식음을 잊을 정도로, 순수하고 진지한 열정의 소유자라고 자평한다. 이런 공자가 생각한 이상적 인간상은 성인聖人이나 군자君子라는 최고 인격자였다. 그런데 공자는 성인은 요나 순 임금도 이를 어렵게 여겼다고 한 반면에 군자는 보통 사람이라도 누구나 노력하면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군자는 누구인가? 우선 군자는 인이라는 소박한 품성(질質)과 세련된 교양(문文)을 갖춘 사람이다.
질質이 문文을 압도하면 거칠어지고 문이 질을 압도하면 겉만 번지르르해진다. 문과 질이 고루 갖추어진 다음에야 군자라 할 수 있다.
세련된 교양인 문을 갖추기 위해서 공자는 학문學問과 예禮와 예藝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의거하며 인에 의지하여 예에서 즐긴다.
우리는 여기서 공자가 예藝를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그는 시와 음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시를 통해서 감흥이 일어나고 예에 의해서 원만한 행위를 할 수 있게 되며, 음악을 통해서 심성의 조화가 이루어진다.
공자가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인 군자는 소인小人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군자는 덕을 마음에 품고 소인은 땅마지기나 생각한다. 군자는 법도에 맞는 것을 생각하고 소인은 혜택 받기를 기다린다. 군자는 의義에 밝은데 소인은 이利에 밝다. 군자는 서로 친밀하되 패거리를 만들지 않는데, 소인은 패거리를 만들되 진실한 정이 두루 통하지 않는다. 군자는 교만하지 않으면서도 위엄이 있지만, 소인은 위엄이 없으면서 교만하다. 군자는 슬픈 일을 당해도 자제할 줄 알지만 소인은 조그만 슬픈 일에도 자제심을 잃는다.
군자君子는 원래 지배 귀족의 성원(군君)과 자손(자子)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이러한 의미를 새롭게 바꾸었다. “공자의 시대까지 군자라는 말은 거의 보편적으로 ‘신사紳士(gentleman)’라는 낱말의 원의와 흡사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평민층보다 높은 계층에 속했던 조상의 후예인 명문 출신의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러한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군자다. 그렇지 않고는 아무도 군자가 될 수 없다. 군자는 아무리 그의 행동이 비열하더라도 군자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용어를 공자는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는 누구든지 행동이 고귀하고 이기심이 없으며 정의롭고 친절하다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언명하였다. 또 그는 아무도 출신 성분에 따라 군자로 간주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오로지 행위와 인품의 문제라는 것이다.”
공자는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출신 성분에 상관없이 편벽되고, 자기의 이로움만 생각하고, 교만하고, 남을 헐뜯기 좋아하면서, 항상 근심 걱정에 싸여 있어 사회가 극도로 혼란한 것을 보고 그들을 소인이라고 불렀다. 공자가 말하는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분명하다.
공자가 비난한 인물로 소인 이외에 향원鄕原이 있다. 향원이란 시골 사람 중에 근후한 자란 뜻이다. 이들은 세속과 동화하고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여 유독 지방사람 사이에서만 근후하다고 일컬어지는 존재이다. 공자는 향원은 덕이 있는 듯 하지만 그 덕은 진정한 덕이 아니어서 참된 덕을 어지럽힌다고 하여 향원을 미워했다. 향원이 하는 신조도 주견도 없는 사이비 행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위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공자는 중도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을 얻어 같이 할 수 없으면 반드시 뜻이 큰 광자狂者나 절조를 굳게 지키는 견자狷者를 선택하라고 권한다. 광자는 나아가 취하려고 하고, 견자는 하지 않는 바가 있지만, 향원은 사私만 알고 공公을 모르며 통념에 순응할 뿐 진취를 모르기 때문에 덕의 적賊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기존의 ‘군자’라는 개념을 수정하여 군자를 이상적인 사회인상으로 내세워 누구나 스스로 군자가 될 것을 요구하였다. 군자에 대한 이런 의미 전환을 통해 공자는 도덕적 사회 혁명을 기도했던 것이다. 이런 군자는 내적으로는 인간의 공통적인 본질인 인을 체득해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다.
군자가 인을 버린다면 어떻게 군자라고 불릴 수 있겠는가? 군자는 밥을 먹는 동안에도 인을 어김이 없으며, 급한 경우에도 반드시 이에 의하고 위급한 경우에도 반드시 이에 의한다.
인을 체득하기 때문에 군자는 마음가짐이 의연하고 물질적 안락보다는 정신적 풍요함을 추구할 수 있다.
남들이 자기의 능력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화를 내지 않는다면 군자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군자는 식사하는 데 배부르기를 바라지 않고, 거처하는 데 편안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일을 하는 데 민첩하고, 말하는 데 조심스럽고, 인격을 갖춘 사람을 본받아 자신을 바로 잡는다면 그 사람은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군자는 외적으로는 인을 실현하려는 무거운 책임 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예에 따라 의롭게 행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격을 완성하도록 도와준다.
군자가 의를 바탕으로 삼아 예에 따라서 의를 행하고 겸손한 태도로 의를 실천하며 믿음으로 의로운 일을 성취시킨다면 참으로 군자라 할 수 있다.
그대가 선하고자 하면 백성이 저절로 선하게 될 것이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다. 풀 위에 바람이 스치면 풀은 반드시 누울 것이다.
자로가 군자에 대해 묻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군자는 자기를 닦음으로써 삼가는 사람이다.” 그러자 자로가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것뿐입니까 그러자 다시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군자는 자기를 닦음으로써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이에 자로가 다시 한번 이렇게 물었다. 거듭 그것뿐입니까 그러자 공자는 “군자는 자기를 닦음으로써 온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자기를 닦음으로써 온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일은 요 임금이나 순 임금도 하기 어려웠던 일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또한 군자는 역사와 대자연 앞에서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공자가 가진 사명감은 그의 앞선 세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가치 있는 경험과 문화를 발양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군자는 세 가지를 두려워한다. 첫째는 천명을 두려워하고, 둘째는 큰 인물을 두려워하고, 셋째는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한다. 이것이 군자삼외君子三畏이다. 이에 반해 소인은 천명을 몰라서 두려워하지 않고, 큰 인물에게 가까이 굴며 경시하고, 성인의 말씀을 조롱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볼 때 군자는 내적인 어진 마음의 상태와 외적인 행위 더 나아가 교양과 학문을 갖춘 전인全人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군자는 불기不器다.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은 군자가 특정한 지식만 가진 전문가가 아니고, 모든 것에 통달한 인간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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