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범의 시

재미난 후기가 달린 시(47, 여행)

이효범 2020. 11. 9. 07:10

o 여행

 

구녕 이효범

 

 

길을 떠난 자는 알리라.

따뜻한 밥의 고마움을.

일상의 말들의 위로를.

침대에 머무는 안락함을.

집을 떠남이 결국 고난으로 가는 길임을.

고난으로 가는 꼬부라진 길의 낯선 풍경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의 당혹감을.

머무는 바닥의 차디참을.

지워지는 자기 이름을.

떠오르는 돈의 위력을.

내일이 없는 시간을.

그러나 길을 떠난 자는 알리라.

길은 길로 길게 이어짐을.

저녁마다 흘리는 눈물이 닦아내는 눈을.

몸에 부딪치는 이웃의 온기를.

바람이 몰고 오는 꽃들의 향기를.

고난이 고난을 스스로 지우는 신비를.

집에 머무름이 결국 죽음으로 가는 길임을.

 

후기:

호모 사피엔스는 15만 년 전 동부 아프리카에서 출현하였습니다. 그들은 약 7만 년 전 고향을 떠나 아라비아 반도로 퍼져나갔고, 이후 전 대륙으로 이주하여, 자연의 정복자가 되었습니다. 현생 인류는 그들의 후손입니다.

또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의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약속만을 믿고, 온 일족을 이끌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했습니다. 아버지 데라와 다른 친척들은 중간지점인 하란에 남고, 아브라함과 롯의 가족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공통 조상이 되었습니다.

집을 떠나는 일은 위기입니다. 그러나 환인의 아들 환웅이 신단수 밑에 내려와 신시를 열었듯이,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사는 방식은 다릅니다. 머물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역마살이 끼었는지 좀처럼 한 곳에 머물러 있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코로나로 발이 묶이자 미칠 지경입니다. 우리 땅이 왜 이렇게 좁은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북한과 통일되면 조금 숨통이 트일지 모르겠습니다. 한때 고구려 땅이었던 광활한 만주가 우리 땅으로 편입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해란강가에서 말을 달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