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에 관한 좋은 문장들

양사언의 어머니

이효범 2020. 11. 4. 07:08

양사언의 어머니는 함남 안변에서 농민의 딸로 태어났다. 비록 시골 평민의 태생이나 현숙하고 현명함이 사대부집 여자보다 뛰어났다. 양사언의 아버지 양피수는 유람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말을 타고 유람을 하다가 우연히 안변 땅을 지나치게 되었다. 배도 고프고 말에게 먹이도 줄 겸 해서 집집이 대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도 없었다. 마침내 양피수는 어느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동리 곗날이 되어 어른들은 모두 그것에 가고 열서너 살 된 소녀가 집을 보고 있었다. 양피수는 자기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말에게 먹이를 좀 줄 것과 잠깐 쉬어 가기를 청했다.

그 소녀가 제가 말에게 줄 죽을 쑤어 드리지요.”하고는 손님을 편안한 곳에 쉬게 하였다. 잠시 후 말죽 한 통을 쑤어 내온 뒤, 밥 한 상을 얌전히 차려 왔다. 양피수는 그 소녀의 법도 있는 공대와 착한 마음씨를 속으로 칭찬하면서 자기에게도 밥을 주는 연유를 물었다. “말이 지쳤으면 손님도 시장하실 것 아니겠습니까?” 양피수는 이 소녀의 영리함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양피수는 폐를 끼쳤다는 인사를 하고 말죽 값과 밥값을 계산해 주려 하자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그 집의 예의이온데, 값을 받는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옵니다.” 양피수는 그대로 돌아서기가 미안하여 행장 속에 넣어 두었던 청, 홍선자 두 자루를 꺼내어 이것을 예물로 주겠다.”하고 다시 한 번 소녀의 현숙함을 칭찬하고 길을 떠났다.

그 뒤 양피수가 서울에 있을 때 한 시골 사람이 찾아와 얼마 전에 안변을 지나가다 어느 촌가에서 말죽을 먹이고 소녀에게 청, 홍선자 두 자루를 주고 간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양피수가 그러한 일이 있었다고 하자 저는 그 소녀의 아비이온데, 딸이 나이 열다섯 살이 되어 혼사를 정하려 하니, 어떤 사람에게 예물을 받았으므로 다른 곳으로 출가하지 않겠다고 끝까지 고집을 피우고 있습니다. 꾸짖고 타일러도 도저히 고집을 꺾지 못하여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예물이라고 한 것은 장난으로 한 말이오. 그것을 신표로 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일 뿐 아니라 내 나이 오십이니 다른 배필을 맞이하게 해주시오.” 이렇게 말하고 양피수는 그 남자를 돌려보냈다.

십여 일 후 이 소녀의 아버지가 다시 와서 말하였다. “여아가 죽기로 맹세하옵기에 데려다 드리겠으니 시중이나 들게 하십시오.” 양피수는 더 사양할 수 없어서 그 소녀를 소실로 삼았다. 그러나 양피수는 상처한 지 10년이 되어도 후처를 얻지 않고 여색을 멀리하며 오직 책과 유람을 낙으로 삼았던 탓에 그녀를 소실로 맞이하였으나 한 번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양피수가 내당에 들어갔다가 집안이 몹시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으므로 집안 식구에게 물어 보았다. “안변 서모는 현숙하고 덕이 있어 치가법백이 놀랍고, 새벽에 일어나 종일 부지런히 일해 가계가 넉넉하여진 것도 서모의 공이 큽니다.” 양피수는 감탄하여 그녀와 동거를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얼마 후 양사언이 태어났다.

사언은 용모가 단정하고 총명과 재주가 놀라웠다. 양피수는 그를 애지중지 키웠다. 어머니는 아들 훈육에 힘을 기울여서 어른 공경하는 법, 동기간에 우애 있는 도리, 예법 등을 가르쳤다. 그러나 안타가운 것은 사언이가 저렇게 총명하지만 서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후일 벼슬할 때 차별을 받게 될 일이었다. 이를 예견한 그녀는 남편에게 새집을 마련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사언이 8,9세 때 어머니의 소청대로 경치 좋은 지하 골에 대문을 크고 높게 세워 새 집을 지어 모자만 따로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성종 임금이 봄 경치를 보러 그 근방에 거동하였다가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정결한 뜰에 백화가 난만하고 맑은 향기가 풍기는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방 안에 있던 이목이 청수한 동자가 나오더니 임금께 절을 하였다. 성종은 그 집안이 승지 양피수의 부실이 사는 집임을 알았다. 그 아이는 학문에 통하고 시재와 필치가 아울러 뛰어날 뿐만 아니라, 수랏상에 올린 진수성찬의 솜씨가 절묘하므로 왕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동자를 데리고 환궁하였다. “이 아이는 풍채가 도도하고 재질이 비범하니, 장래 너를 보필할 신하로 삼고자 한다. 자라거든 크게 써라.” 성종은 동궁에게 이렇게 말하고 오래 대궐에 머물게 하였다.

수년 후 승지 양피수가 병으로 임종하였을 때 사언의 어머니가 사흘을 물 한 모금 안 마시다가 성복날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 나와서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나라 법이 서자는 종당의 반열에 참가하지 못하고 벼슬이 청환에 이르지 못한다 하니, 제가 살아 있는 동안은 여러분이 사언을 사랑해서 적서의 차가 없을 수 있겠으나, 제가 죽으면 서모의 복을 입을 것이므로 사언의 처세에 흠이 될 것인즉, 제가 이 자리에서 자결하는 것이 영감의 장례에 어울릴 뿐 아니라 사언이의 앞날에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그리고 작은 칼을 꺼내어 영감의 관 앞에서 자결하였다.

그 후 사언에게는 적서의 차별이 없어졌고 과거에 등제하여 안변부사를 지냈다. 그이 시,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신연식, 훌륭한 어머니가 큰 지도자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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