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오늘(시집)

어금니

이효범 2020. 8. 30. 07:45

o 어금니

 

구녕  이효범

 

 

어금니가 빠졌다.

남자가 사라졌다.

갈비를 뜯어본 자는 알리라.

밀림을 호령하는 사자처럼

산다는 것은 어금니로 먹이를

갈갈이 찢어놓는 일.

쩝쩝 피맛을 즐기고

씨익 웃으며

흙묻은 손으로 입가를 슬쩍 닦아내는 짓.

또 이 생에 무엇이 남았다고

죄수처럼 치과에 끌려가는가?

견딜 수 없을 때는 왼손을 드세요.

왼손을 드세요?

키스해 주세요.

어금니가 쏙빠지도록.

차라리 벌어진 입으로 백기를 들어라.

어금니를 깨물어야

앞으로 질주할 수 있다.

질주하여 먹이를 단 번에 잡지 못하면

그것은 사자가 아니다.

그것은 남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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